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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14)
대통령 탄핵 주장 갑론을박 ... 사유 넘친다 vs 가소롭다
유독 권력자에서 성글은 법 ... 법은 과연 누굴 위한 것인가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은 자신의 조금 덜 떨어진 아들을 백악관 비서실장에 앉힌다. 정부 요직은 경매에 부치듯 나사(NASA) 국장직을 최고액의 정치후원금을 기부한 여자 의사에게 준다. 내연남인 시골 파출소장을 대법원 판사에 지명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사(人事) 만행도 저지른다. 미국에도 대통령 탄핵 제도가 있다 하니 백번 탄핵당해야 마땅할 것 같다.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가 ▲헌법에 명시된 의무를 위반하거나, ▲법률에 반하는 행위를 하거나, ▲직무 수행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국익에 중대한 피해를 줬을 때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관객들의 생각일 뿐, 올린 대통령은 건재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자기 아들을 백악관 비서실장에 앉히고 시골 파출소장을 대법원 판사로 지명했다는 것이 ‘중대하고 명백한 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그래서 ‘국익’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는지 증명하기 참으로 애매하다. 국익이 무엇인지, ‘중대하고 명백’하다는 것이 얼마나 중대하고 명백해야 하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을 참으로 무책임한 법조문이다. 

혹시 의회에서 탄핵소추를 해도 헌법재판소(미국의 경우에는 상원)에서 기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민들은 그 위반이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생각하지만 판사들(상원의원들)이 중대하고 명백하지 않다고 하면 그만이다. 올린 대통령도 그 애매한 법 조항을 믿고 만행에 거침이 없는 모양이다. 

아무리 법조문을 읽어봐야 탄핵 요건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막연하기 짝이 없다. 법 규정만 읽어보면 세상 모든 대통령이 탄핵당할 수도 있고, 대통령이란 무슨 짓을 해도 탄핵을 피해갈 수도 있겠다. 

우리의 현실도 그렇다. 누군가는 지금 대통령에게 탄핵 사유가 차고 넘친다고 분기탱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도 않다며 가소롭다고 맞받아친다. 더구나 정책의 잘못이나 무능은 실정법상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법조문만 보면 누구 말이 맞는지 알 길이 없다.

81개 지혜의 장(章)으로 이뤄진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대부분은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73장은 독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유난히 갸우뚱하게 된다. 하늘의 뜻은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다(천지도 불소이자래, 天之道 不召而自來). 그 하늘의 그물은 너무 크고 또 성글어 보인다. 그러나 무엇 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천망회회 소이불실, 天網恢恢 疎而不失). 

정말 그런가. 우리는 ‘하늘도 무심하시지’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늘의 그물이 잘못된 것인지 하늘도 무심하다고 땅을 치는 우리네들 생각이 잘못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같은 73장에서 ‘하늘이 싫어하는 것은 성인(聖人)도 모른다(천지소오 시이성인유난지, 天之所惡 是以聖人猶難之)’라고 뒤섞어 적어놓으니 노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무척이나 헷갈린다.
 

 

「도덕경」식으로 말하면 하늘의 뜻을 대신해야 할 법도 ‘법이 싫어하는 일은 판사도 모른다’쯤으로 새기면 될까. ‘법의 그물(法網)은 크고도 성글어 보이지만 무엇 하나 놓치는 법이 없다’가 돼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법망이라는 것이 그토록 크고 성글어서 고래도 빠져나가고 당연히 새우도 빠져나간다면 그나마 참아줄 만한데, 참 어이없게도 고래는 빠져나가는 그물코를 새우는 빠져나가지 못하는 신비한 그물이 ‘법망’이다. 

올린 대통령과 같은 대왕고래는 유유히 헤엄쳐 빠져나가는데, 대학원생 ‘새우’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교청까지 덮친 무장경찰들에 의해 끌려간다. 올린 대통령이 법망에 걸려 탄핵당했다면 지구종말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법을 두고 다양한 ‘정의(定義)’가 존재하지만, 왠지 모두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고 유독 “법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니 기분이 고약하다. 이미 3000년 전 ‘정의란 권력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던 그리스의 궤변론자(sophist) 트라시마코스(Thrasymachus)의 정의론에 입각한 법철학이다.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에 등장해서 소크라테스와 열띤 토론을 벌인 것으로 기록된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도덕적으로나 보편적으로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소크라테스를 ‘촌놈’이라고 비웃는다. 

트라시마코스는 법이 강자의 편에 서야 하는 이유로 법이란 원래 강자들이 만든 것이며, 강자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사회가 안정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사고치고 온 재벌회장을 재판정에서 열렬히 변호하는 대형로펌 법기술자들과 같다. 

‘소피스트(sophist)’는 ‘지혜를 아는 자’라는 뜻이고 ‘철학자(philosopher)’는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 한끗 차이지만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말재주로 돈 많은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면서 거부가 됐다. 반면, 지혜를 사랑하기만 하고 팔아먹을 재주가 없었던 철학자들은 끼니도 챙기기 어려웠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그 유명한 40년 연하의 ‘악처(惡妻)’ 크산티페(Xanthippe)의 구박과 바가지에 시달린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법조인’와 ‘법기술자’의 차이도 비슷한 듯하다. 도덕과 보편적인 정의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내려 죽이고 트라시마코스 같은 소피스트들이 활개를 치면서 결국 아테네가 타락하고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아테네의 몰락을 지켜본 로마는 그래서인지 유난히 도덕을 강조했던 모양이다. 로마의 ‘국민 시인’이자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았던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BC. 65~12년)의 시 ‘로마 찬가(Roman Ode)’ 는 로마의 학교 교과서가 되고 로마 젊은이들에게 우리나라 ‘국민교육헌장’처럼 암송됐다고 한다. 

그의 ‘로마 찬가’에 나오는 한 구절이 특히 마음에 와닿는 요즘이다. “Quid leges sine moribus vanae(법이 도덕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1000년 왕국 로마의 보이지 않는 힘이었을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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