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서사 초반과 후반에 걸쳐 '제주 설화'가 핵심 배경으로 등장하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2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제주의 고유한 무속신앙과 여신 설화가 콘텐츠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된 이번 작품은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초자연적 악령과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이들이 신의 계시를 받아 데몬 헌터로 각성하는 첫 장면과, 주인공이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는 결심의 장소가 모두 제주로 묘사된다. 작품 초반 주인공들이 신비로운 존재로부터 능력을 부여받는 장면에서는 제주의 전통 묘역인 '산담' 형태의 돌담이 배경으로 그려진다. 이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매장 문화다. 방목 중인 말이나 야생동물이 묘소를 훼손하지 않도록 무덤 주위를 돌로 둘러싼 구조물이다. 후반부에도 이 장소는 반복 등장한다. 돌하르방들이 서 있는 모습과 함께 루미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결단을 내리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작품은 여신 설화의 땅인 제주를 '헌트릭스'의 시작점으로 설정하면서 설문대 할망, 자청비, 금백조 등 제주의 창조와 풍요의 여신들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전통 설화는 K-팝과 결합해 무당, 저승사자, 도깨비 등 다양한 민속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기반이 됐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전 세계 41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태국 등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 중이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뜨거운 것으로 나타났다.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전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한편 최근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제주를 배경으로 한 글로벌 콘텐츠가 연이어 주목을 받으면서 제주 고유의 신화와 문화, 생활양식이 콘텐츠 경쟁력의 원천으로 부각되고 있다. 문화계 안팎에서는 "제주는 설화와 신앙이 살아 있는 지역으로 K-콘텐츠의 새로운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최적의 소재지"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롯데면세점 제주점 직원들이 긴급 상황에서 고객의 생명을 구한 사실이 알려지며 눈길을 끌고 있다. 3일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제주점을 방문한 한 중국인 고객이 주차장에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김동진 사원이 신속하게 기도 확보 조치를 시행했고, 김정우 대리는 심폐소생술(CPR)을 진행해 초기 응급 대응에 나섰다. 약 3분 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가 확인했을 때 고객은 이미 맥박과 호흡을 되찾은 상태였다. 이보다 앞선 지난 5월 28일에는 제주공항 국제선 출발 대합실에서 70대 여성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목격한 윤남호 롯데면세점 제주공항점 점장이 곧바로 응급처치에 나섰고,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약 10여분 동안 환자의 의식 회복을 도왔다. 윤 점장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공항공사 고객서비스 최우수상, 제주관광공사 감사패,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하트세이버 인증서를 수여받았다. 롯데면세점은 2018년부터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민 안전 파수꾼' 교육을 운영해왔다. 이 교육은 재난 대피 훈련과 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AED) 사용법 등을 포함하며, 실제 상황에 대비한 현장 중심의 대응 능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박상호 롯데면세점 경영지원 부문장은 "체계적인 교육과 현장 훈련을 통해 응급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나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안전 문화를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한국 프로야구의 산증인이자 제주 야구 발전의 숨은 주역이었던 이광환 전 감독이 2일 별세했다. 향년 77세. 2일 유족에 따르면 이 전 감독은 평소 폐섬유증을 앓아왔다. 이날 오후 제주도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생전 제주 야구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인물로 서귀포시 강창학구장을 제주도 '야구 교육의 현장'으로 만들어낸 상징적인 존재였다. 2005년 강창학체육공원 내 야구장 조성 당시 자문을 맡아 사실상 산파 역할을 한 이 전 감독은 2008년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의 첫 전지훈련지로 강창학구장을 택했다. 이후 서울대 야구부 감독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매년 이곳을 전지훈련지로 활용하며 "강창학구장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자주 남겼다. 야구인생 43년을 관통한 그는 1982년 OB 베어스 타격코치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OB, 이후 LG 트윈스 감독을 맡아 1994년 '신바람 야구'로 LG를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이승엽, 김용수, 유지현 등 수많은 스타 선수들과 함께 했고, 이후 한화, 우리 히어로즈 사령탑과 서울대 야구부 지도자, KBO 육성위원장 등을 지내며 '야구 교육자'로 존경을 받았다. 제주에 남긴 발자취는 지도자로서의 족적을 넘어선다. 그는 사비를 들여 야구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고, 실제로 제주시 애월읍 가문동에 '한국야구명예의전당'이란 작은 사설박물관의 문을 열기도 했다. 아울러 리틀야구와 티볼 육성에도 적극 나섰다. 제주 리틀야구단을 찾은 뒤에는 "이 아이들 안에 미래가 있다"며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올해 3월에는 잠실야구장에서 LG 트윈스 창단 30주년 기념 개막전에 시구자로 등장해 건재한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제주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제주도체육회 관계자는 "이광환 감독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제주 야구의 큰 어른이었다"며 "제주 야구가 지금의 틀을 갖추는 데 있어 그분의 헌신이 컸다. 애도의 뜻을 깊이 표한다"고 말했다. 고인의 빈소와 장례 절차는 유족 뜻에 따라 조율될 예정이다. 고인의 야구 인생만큼이나 성실하고 진중했던 삶은 제주 그라운드 위에 조용한 유산으로 남게 됐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에 불볕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며 온열질환자도 속출하고 있다. 2일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기준 제주도 동부지역인 제주시 구좌읍 일 최고기온이 36도를 기록했다. 그외 지점별 일 최고기온은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4.4도, 제주시 한림읍 33.4도,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 32.5,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송당리 각 32.3도, 서귀포시 표선면 32.2도 등이다. 현재 제주도 동부지역에 폭염경보, 동부와 산지·추자도를 제외한 제주도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제주도 동부지역은 지난달 28일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이튿날 폭염경보로 강화된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북부와 중산간지역은 지난달 29일, 남부와 서부지역은 지난달 30일부터 각각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날 오후 4시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7명이다. 이날 오후 1시 7분께 제주시 애월읍 상가리에서 밭일을 하던 20대 남성이 의식 저하 증세로 응급처치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1일 오전 10시 52분께는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서 야외작업을 하던 60대 남성이, 지난달 30일 오후 2시 24분께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에서 공공근로를 마친 50대 여성이 각각 열탈진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기상청은 당분간 제주지역 낮 최고기온이 29∼32도로 평년(25∼28도)보다 높겠다고 예보했다. 특히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지역을 중심으로 뜨겁고 습한 남풍류가 유입되고, 낮 동안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서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내외로 올라 매우 덥겠다고 예보했다. 밤에는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있겠다. 기상청은 "무더운 날씨로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은 만큼 수분과 염분을 자주 섭취하고 야외활동과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제주도가 유네스코 5대 분야 유산을 모두 보유한 '유네스코 5관왕'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내년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 유치에 실패했다. 개최지는 세계유산이 전무한 부산으로 결정됐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유치 실패에 이어 연속된 낙마에 대해 선정 과정의 정무적 판단 개입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2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후보 도시 선정위원회는 지난 30일 부산을 제48차 회의의 한국 측 유치 후보지로 최종 선정했다. 앞서 제주, 서울, 부산, 경주 4곳이 공모에 참여했고, 제주와 부산이 1차 평가를 통과해 최종 경합을 벌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는 세계유산협약(1972년)에 따라 매년 열리는 최고 수준의 국제 회의다. 세계유산센터 사무총장, 자문기구, 유네스코 협약국 196개국 대표단과 전문가 등 2500명 이상이 참석한다. 등재 심사와 보존·관리 정책을 결정한다. 도는 한라산·성산일출봉·용암동굴을 포함한 세계자연유산과 함께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등 유네스코 5대 분야 유산을 모두 갖춘 국내 유일 지역이다. 국제회의장(ICC JEJU), 5성급 숙박시설, 국제공항 등 회의 인프라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도는 내부적으로 개최지 선정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분위기까지 형성했으나 결과는 부산이었다. 부산은 세계유산을 보유하지 않은 대신 벡스코(BEXCO) 회의장, 해운대 숙박·쇼핑 인프라 등을 내세웠다. 울산 울주군의 반구천 암각화 등재 추진을 인근 자산으로 소개했으나 이는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종석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유네스코의 취지를 고려하면 세계유산이 있는 지역에서 회의를 여는 것이 상식"이라며 "제주는 회의와 함께 유산축전을 동시 개최할 계획까지 준비했지만 개최지는 유산 없는 지역으로 정해졌다"고 밝혔다. 정계 일각에서는 "부산이 세계유산이 없음에도 선정된 배경에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특히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맡고 있는 부산 지역 여당 의원의 '막판 지원설'도 회자되고 있다. 유치 실패의 허탈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제주도는 APEC 정상회의 유치에 나섰지만 경주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도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2009년), 한·중·일 정상회의(2010년) 등 국제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을 강조하며 "의전과 숙박, 회의 운영 측면에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홍보해왔지만 결국 낙마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30년 가까이 제주에서 열렸던 경제계 주요 포럼 'KMA 최고경영자 하계 세미나'도 올해부터 부산으로 개최지를 옮겼다. 이 같은 사례들이 잇달면서 제주 내부에서는 "중앙과의 정책 조율력, 정무적 대응력이 부족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내년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개최지는 이달 중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제47차 위원회에서 공식 확정될 예정이다. 유치 도시가 공식 발표되면 해당 국가는 개최 준비를 위한 공식적인 국제 일정에 돌입하게 된다. 한편 도는 이번 유치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과 후속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다. 도 차원의 국제행사 유치 전략과 중앙정부와의 협력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민선 8기 제주도정이 출범 4년 차에 접어든 상황에서 제주산하 주요 기관장 교체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제주도는 경제통상진흥원을 시작으로 제주신용보증재단, 제주에너지공사, 제주한의약연구원,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등 5개 기관에서 차기 기관장 인선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고 1일 밝혔다. 우선 임기가 가장 먼저 만료되는 곳은 제주경제통상진흥원이다. 오재윤 제주경제통상진흥원 원장의 임기는 오는 8월 15일 종료된다. 오 원장은 과거 제주도개발공사 사장을 지낸 뒤 오영훈 캠프를 거쳐 2022년 원장으로 선임됐다. 진흥원은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달 10일까지 차기 원장의 공개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이달 말 면접 심사를 거쳐 복수 후보를 선정한 뒤 오 지사에게 최종 후보를 추천할 예정이다. 이어 제주신용보증재단도 오는 9월 19일 김광서 제주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의 임기가 끝난다. 재단은 이달 중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후임 이사장 공모 절차에 나설 계획이다. 재단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신용보증 정책의 핵심 창구인 만큼 지역 금융 생태계와 밀접한 인물이 기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제주에너지공사는 오는 9월 28일 김호민 제주에너지공사 사장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다. 김 사장은 임기 종료 후 원 소속 대학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에너지공사는 최근 '공공주도 2.0 풍력개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제주도정과 시각차를 보여 왔다. 이에 따라 후임 인선은 도정의 정책 철학을 공유할 공직자 출신 또는 내부 출신 인사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제주한의약연구원은 오는 10월 3일 송민호 제주한의학연구원 원장의 임기가 종료된다. 해당 기관은 지난 2022년 제주도정 조직진단에서 통폐합 검토 대상으로 분류된 바 있다. 후임 인선과 더불어 조직 구조 재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역시 기관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이선화 ICC JEJU 대표이사의 임기는 오는 10월 16일까지다. 대표이사는 공개모집을 거쳐 이사회에 최종 후보가 추천된다. 제주지사가 사실상 지명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주주총회 및 이사회 최종 승인을 거쳐 선임이 이뤄진다. 이들 기관 중 제주에너지공사 사장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인사청문회 조례'에 따라 도의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편 전문성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사를 지사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선거 공신 인사'는 이제 멈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정식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직위원장은 "정책적 코드가 맞는 인사를 중용하는 것은 임명권자의 권한이지만 이는 절차상 하자가 없고 전문성이 확보됐을 때의 이야기"라며 "전문성 부재와 보은 인사 논란은 결국 '지사 찬스'로 도민을 우롱하는 것에 불과하다. 도민의 눈높이가 곧 도정의 눈높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기관별 특성과 역할을 고려해 도정 철학을 반영할 수 있는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계획"이라며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통해 도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공기관 운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아시아 크루즈 시장의 미래 전략과 제주 준모항 실현 방안을 논의하는 '2025 제12회 제주국제크루즈포럼'이 이달 10일부터 12일까지 3일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올해 포럼은 글로벌 선사 CEO들이 대거 참석하고, 산업 연계 전시까지 확대된다. 명실상부한 크루즈 산업 종합 플랫폼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포럼은 제주도와 해양수산부가 공동 주최하고 관광공사가 주관한다. '2035 아시아 크루즈의 비전 – 글로벌 시장의 9%에서 20%를 향한 항해'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아시아 크루즈 시장의 확대 전략과 지역 기항지의 경쟁력 제고 방안을 공유하는 국제회의이자 산업 전반의 연계를 도모하는 박람회 성격으로 확대됐다. 포럼에는 MSC 크루즈, 로얄캐리비안, MOL 크루즈, 아도라 크루즈 등 주요 글로벌 선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해 발표에 나선다. 또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12개국의 항만 및 기항지 관계자와 국내외 크루즈 유관기관, 학계, 업계 관계자 등 6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개막 첫날인 10일에는 '글로벌 크루즈 선사의 아시아 전략'과 '크루즈 목적지의 미래'를 주제로 세션이 열린다. 글로벌 선사 CEO들이 아시아 시장의 성장 전략과 정책 연계 방안을 밝힌다. 같은 날 B2B 네트워킹 이벤트도 종일 운영돼 선사와 여행사, 선용품·관광업계 간 1:1 비즈니스 상담이 진행된다. 둘째 날인 11일에는 크루즈 워크숍, 한국크루즈발전협의회, 인재양성 특별세션, 산업별 역할 논의, 한일 크루즈 세미나 등 다양한 세부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특히 '제주크루즈이슈포커스' 세션에서는 제주 준모항 상품의 운영 현황과 지역경제 파급 효과 등을 주제로 현장 개선안이 집중 논의된다. '제주크루즈이슈포커스'는 제주를 크루즈 준모항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 세션이다. 도·서귀포시청 관계자, 상인회, 세관, 검역소, 해운업계 등이 패널로 참여해 출입국 절차 간소화, 관광 콘텐츠 연계 방안 등을 다룬다. 또 크루즈 관광객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 측정과 유통 연계 방안도 함께 모색된다. 올해 포럼은 기존의 회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해양·관광 산업을 아우르는 종합 박람회로 성격을 확대했다. 3층 전시장에는 국내외 기항지·상품·관광 콘텐츠가 전시되는 오픈형 부스가 운영된다. 지난해보다 대폭 확대된 35개 기관이 참가한다. 크루즈 탑승부터 기념품 구매까지의 여정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 동선도 구성된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선사에 근무 중인 한국인 항해사 3인과 전문 교수가 연사로 나서는 '글로벌 커리어 인재양성 특별세션'이 마련돼 해양 분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을 위한 멘토링 기회도 제공한다. 이들은 과거 크루즈포럼 참가자로 시작해 현재 해외 선사에 취업한 실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이번 포럼은 글로벌 선사들과 기항지 간 협력을 강화하고, 크루즈산업의 지역 상생 모델을 구체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준모항 구축, 관광 연계, 인재양성 등 제주형 크루즈 산업의 비전을 현실화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정부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도 주휴수당, 연차유급휴가, 공휴일 유급휴일 등을 보장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자 제주도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심각한 고용 부담 우려가 번지고 있다. 2일 정부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고용노동부는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관련 로드맵을 보고했다. 정부는 초단시간 근로자의 실태를 분석하고, 노사 의견을 수렴한 뒤 오는 2027년부터 근로기준법 개정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는 주휴수당과 유급휴가 의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편의점, 음식점, 카페 등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이다. 제주시에서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39)씨는 "하루 3시간씩 일하는 단기 알바에도 주휴수당을 줘야 한다면 인건비 감당이 어렵다"며 "기존 알바생들 근무일을 줄이거나 고용 자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림읍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이미 최저임금 인상과 카드 수수료, 임대료 등으로 허덕이는데 법정 유급휴일까지 확대되면 주말 영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고용노동부 분석에 따르면 제도 도입시 전국적으로 연간 약 1조3700억원 규모의 추가 인건비가 발생한다. 이 중 주휴수당이 8900억원, 공휴일 보장에 2840억원, 연차 유급휴가에 1962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도내에서도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관광산업과 연계된 단기·시간제 일자리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비수기와 성수기 간 고용 탄력성을 유지해야 하는 도내 숙박업소와 식음료 프랜차이즈 업계는 이미 아르바이트생 모집 자체를 줄이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제주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이번 제도는 단순히 알바에게 유급휴일을 더 주는 수준을 넘어 소상공인 경영 구조를 송두리째 흔드는 문제"라며 "도 차원에서도 영세 자영업자 보호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제도 추진 과정에서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논의 중이다. 노사정협의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제도를 설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논의와 겹쳐 자영업계는 '인건비 부담의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업 현실을 고려해 충분한 노사 논의와 공감대에 기반해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 최대 폐기물 처리시설인 환경자원순환센터에서 또 차량 진입이 막히는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달 봉쇄 사태가 해소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처리 차질이 반복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환경자원순환센터에서 마을 주민들이 쓰레기 수거 차량의 진입을 저지하는 상황이 이날 오전부터 이어졌다. 진입을 막은 주민들은 지역 내 시민감시단 자격으로 나서 종량제 봉투 내에 재활용품이 혼입된 사례를 지적하며 해당 쓰레기의 반입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제주시 소속 수거 차량 32대 중 30대가 폐기물을 내려놓지 못한 채 차고지로 회차했다. 서귀포시의 경우는 별도 반입 경로를 이용해 정상 가동 중이다. 제주도는 재활용품이 일부 혼입됐더라도 센터 내 선별 과정을 통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측은 분리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쓰레기의 반입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어 양측 간 갈등이 다시 격화되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달에도 동복리 주민들은 환경자원순환센터 유치 당시 도가 약속한 농경지 폐열 지원사업이 이행되지 않았다며 진입로를 봉쇄한 바 있다. 당시 협상 끝에 도와 마을이 '주민 주도형 발전사업' 추진에 합의하면서 시설 가동이 재개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쓰레기 혼입 문제를 두고 반입 저지 방식으로 항의가 이뤄지며 봉쇄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도는 주민 측과의 추가 협의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설 계획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 중문관광단지 한 호텔에서 불이 나 투숙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3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52분 서귀포시 중문동 한 호텔 기계실에서 불이 났다. 연기와 불꽃이 보인다는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출동 16분 만인 오전 6시8분 완전히 진화했다. 이 불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투숙객 46명이 대피했다. 또 기계실 약 10㎡가 불에 탔다.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관광공사는 최근 제주 관광 이미지 개선에 기여한 관광업계 종사자 등 도민 5명과 기업 1곳에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2일 밝혔다. 윤남호 롯데면세점 제주공항점장은 지난 5월 제주공항 국내선 출발장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진 70대 여성을 신속한 심폐소생술로 구조했다. 윤 점장은 한국소방안전원에서 발급하는 1급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을 보유하고 있다. 또 지난해 100번째 헌혈을 달성해 대한적십자사 회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삼화여객 양준석 기사는 대만 관광객이 버스에 두고 내린 분실물을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직접 보관해 무사히 전달했다. 양 기사는 20년 무사고 경력의 베테랑 기사로 평소 친절 서비스는 물론, 사회복지 후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자치경찰단 동부행복치안센터 이재훈 경사와 김민결 순경은 제주시 조천읍에서 길을 잃은 중국인 관광객을 안전하게 구조했다. 이들은 지친 관광객을 안심시키고, 무사히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제주경찰청 오지훈 경위는 중국인 관광객의 휴대전화 분실신고를 접수한 후 방문지역 CCTV를 확인해 신속히 분실물을 찾아줬다. 이에 감동을 받은 중국인 관광객은 ‘여행에서 무한한 따뜻함을 느꼈으며, 안심 관광 도시인 제주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한글로 작성한 손편지를 경철청 홈페이지에 게시해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아울러 기관 감사패를 받은 제주신화월드는 악천후로 비행기가 결항돼 제주를 떠날 수 없는 여행객에게 객실 업그레이드와 여유 있는 체크아웃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평소 고령자 및 유아 동반 등 관광 취약계층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고승철 제주관광공사 사장은 “관광 현장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관광객에게 따뜻한 선행을 보여준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제주 관광의 이미지 개선과 신뢰 회복을 위한 관광 미담 사례를 적극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이재명 정부 첫 검찰 인사를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법무·검찰 고위간부 퇴진행렬에 제주 출신 양석조(52) 서울동부지검장도 합류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에 이어 대대적인 검찰 개혁이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특수통 검사를 비롯한 고위 검사들의 이탈 행렬이다. 인사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지명자가 인사청문회 통과 후 부임하면 이른 시기에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심우정(사법연수원 26기) 검찰총장은 1일 사의를 밝혔다. 고검장급인 이진동 대검 차장검사(28기)와 검사장급인 변필건 기획조정실장(30기)은 최근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신응석 남부지검장(28기)과 양석조 동부지검장(29기)도 사의를 밝히고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올렸다. 이진수 신임 법무부 차관은 전날 취임 후 일부 고등검사장(고검장), 지방검사장(지검장)들에게 전보 조처를 예고하는 전화를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통인 양석조 동부지검장은 검찰 내부망에 "어려운 시기 떠나게 돼 죄송한 마음뿐"이라는 사직의 글을 올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대검 반부패부(중수부 후신) 선임연구관, 서울남부지검장, 대검 반부패부장 등을 지냈다. 양 검사장은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수사·기소 분리와 관련해 "형사사법에 종사한 공직자의 최소한의 도리로서 짧게나마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수사 없는 기소는 책임 회피 결정·재판 및 공소권 남용으로, 기소 없는 수사는 표적 수사 및 별건 수사로까지 이어질 위험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고 적기도 했다. 그는 "사법기관 간 책임의 영역이 더욱 흐려지고 이리저리 헤매던 범죄 피해자인 국민은 더 큰 마음의 화상을 입어 제3의 권력기관을 찾아 나서거나 스스로 해결을 시도하는 사회적 혼란 상태도 솔직히 우려된다"며 "이미 실제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양 검사장은 오현고를 수석졸업하고 한양대 법대를 졸업했다. 1997년 사법시험(39회)에 합격, 사법연수원(29기)을 수료했다. 공익 법무관을 거쳐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로 검사직에 발을 들여 광주지검·서울중앙지검 검사와 대구지검 서부지청 부장검사, 대검 사이버수사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국무총리실 공직자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사건을 수사하다 검찰 수뇌부의 부당한 수사방해에 울분을 느껴 사표를 던진 적도 있다. 과거 최순실게이트 특검과 사법농단 수사 등에도 참여했다. 같은 제주출신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발군의 역량을 보였다는 평이 있다. 특검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하면서 특수3부장으로 중용된 것도 양 검사장이다. 양창헌(78) 전 아세아항공 대표가 그의 부친이다. 양 검사장은 전국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요직인 대검찰청 반부패부 선임연구관으로 일하다 2020년 1월 서울 강남 소재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검찰 간부의 상갓집에서 직속 상관인 심재철(54·27기) 반부패·강력부장(검사장)에게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왜 무혐의냐"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장삼이사(張三李四)도 하지 않는 부적절한 언행을 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양 검사를 비판한 바 있다. 항명 논란 이후 대전고검으로 좌천된 양 검사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서울남부지검장이라는 요직을 꿰차고, 당시 대부분 요직에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다수 포진하면서 윤 대통령이 검찰내 친정체제를 굳혔다는 해석이 나왔다. [제이누리=양성철 기자]
제주의 과거와 오늘을 조명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제주 곳곳의 발자취입니다. 21세기인 지금과 1970.80년대의 풍경이 대조됩니다. 그동안 제주는 어떻게 변했고, 어떻게 흘러갔을까요? 제주도청의 기록자료를 매주 1~2회에 걸쳐 여러분들에게 선보입니다./ 편집자 주
제2공항 갈등 해법으로 '도민결정권 실현'을 강조해온 오영훈 제주지사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그 실현 방식으로 언급한 데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는 2일 논평을 내고 "오 지사의 발언은 도민과의 약속 불이행을 정당화하려는 자기합리화이며,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요구해 온 여론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오영훈 지사는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제2공항 도민결정권 실현 방안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협의의 법적 절차에 따라 심의·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반영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비상도민회의는 이에 대해 "해당 발언은 지나치게 궁색한 변명이며 주민투표나 공론조사와는 전혀 거리가 먼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비상도민회의는 "오 지사는 후보 시절부터 줄곧 도민결정권 실현을 강조해 왔고, 도민들은 이에 따라 주민투표 또는 공론조사 방식이 도입될 것이라 기대해 왔다"며 "그러나 오 지사가 말한 법적 심의 절차는 제2공항뿐 아니라 모든 개발사업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과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절차를 도민결정권이라 주장하는 것은 제주도정이 제2공항 환경영향평가 통과를 전제로 모든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며 "도민이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결정 절차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오 지사가 도의회 동의 과정을 도민결정권 실현의 최종 지점으로 언급한 데 대해서도 "도의회 절차 역시 법률에 따른 절차일 뿐 도민 스스로의 의사결정권이 행사되는 구조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비상도민회의는 "제주도는 주민투표는 어렵다고 했고, 주민대표가 제안한 공론조사도 거부했다"며 "사실상 도민결정권 실현에 대한 의지도 없이 자기합리화에 기대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는 "도민들은 제2공항 문제 해결의 합리적 방안으로 도민결정권 실현을 지지해 왔다"며 "이를 외면하고 형식적 절차만 반복한다면 민선 8기는 실패한 도정으로 기록될 것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오영훈 지사에게 있다"고 경고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도가 추진 중인 '제주형 건강주치의제'가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갈 전망이다. 당초 이달 중 시행이 목표였지만 보건복지부와의 협의 지연과 추경 예산 미편성으로 일정이 조정됐다. 2일 제주도에 따르면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은 도내 의료취약지로 분류되는 6개 읍·면과 1개 동을 포함한 모두 7개 지역의 65세 이상 노인과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주민이 주치의를 등록하면 일정 금액의 바우처가 지급된다. 주치의는 등록 환자에게 건강검진, 예방접종, 방문진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건강주치의 제도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로 제시된 '맞춤형 주치의 제도'의 일환이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지역별 주치의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제주도는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시범 도입하는 지역이 될 전망이다. 도는 이달부터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보건복지부가 사업계획의 구체성 부족과 기존 건강보험제도와의 중복성 등을 이유로 세 차례 보완을 요구하면서 일정이 지연됐다. 특히 복지부가 지난 4월에 사업계획 보완을 요청함에 따라 제주도의회 추경 예산 심의에 제동이 걸렸고,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그러나 지난달 16일 복지부가 사업계획을 최종 인가하면서 제도 시행을 위한 절차상 장애는 해소됐다. 도는 현재 3개월 치 예산을 편성해 올해 4분기 중 시범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대상 인원은 약 3만명으로 소요 예산은 1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10월부터 시행하는 방향으로 분기 예산을 확보해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제주도 관계자도 "건강보험시스템과의 연계 검토 등 일부 기술적 조율은 필요하지만 연내 성공적인 안착을 목표로 탄탄한 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는 현재 참여 의료기관 모집과 구체적인 운영계획 수립에 돌입한 상태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지난 1일 민선 8기 출범 3주년 기자회견에서 건강주치의 제도와 관련해 "시행해 보지 않은 제도라 걱정과 우려 있을 수 있다"며 "다만 이론적으로 유럽이나 다른 외국의 사례를 확인할 때 충분히 의료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일대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리조트 개발사업이 본격적인 환경영향평가 절차에 들어갔다. 환경보전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는 최근 제주시트러스PFV가 제출한 '신천목장 휴양리조트 조성사업'의 환경영향평가 준비서를 접수하고 조만간 환경영향평가협의회를 구성해 평가항목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2일 밝혔다. 이 사업은 약 7만3000㎡ 부지에 모두 227실 규모의 숙박시설과 보타닉가든, 라이브러리, 음식점, 씨앗도서관 등 복합시설을 2028년까지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전체 사업비는 6258억원 규모로 제시됐다. 문제는 사업지 내에 위치한 '마장굴'과 하수처리 방식이다. 마장굴은 해안과 연결된 천연 용암동굴로 도내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직접 접하고 있다. 내부에는 용암선반과 용암산호, 수직 함몰구, 지하 호수 등 독특한 지형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3년 발표된 비지정 천연동굴 실태조사에서도 마장굴은 '문화재자료적 가치'가 있는 '다 등급' 동굴로 분류돼 보존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마장굴 보존 방안과 주변 개발이 미칠 영향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수처리 방식도 논란이다. 사업자는 일일 생활오수 발생량을 약 355톤으로 산정하고, 이 중 일부를 중수도로 재활용한 뒤 나머지를 공공하수처리시설로 이송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재 성산읍 공공하수처리장의 가용 여력과 하수처리구역 편입 여부를 고려할 때 사업지의 하수를 공공처리시설로 연계하는 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산읍 하수처리시설은 하루 1만톤 처리용량 중 이미 약 60%가 사용 중이다. 향후 2000톤 증설이 계획돼 있으나 이는 기존 관거 정비사업으로 인한 처리수요 증가를 감당하기 위한 용량이어서 신규 대규모 사업지까지 수용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또 해당 지역이 현재 하수처리구역에 포함돼 있지 않아 이를 새롭게 편입하려면 최소 3년 이상의 행정절차와 환경부 승인 과정이 필요하다. 특정 사업만을 위한 단기적 계획 변경은 허용되기 어렵다는 것이 도 내부 판단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현재 제출된 환경영향평가 준비서를 검토 중"이라며 "협의회 구성을 통해 사업의 환경적 타당성과 쟁점을 면밀히 논의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오영훈 제주지사가 자신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환경보전분담금' 제도 도입에 대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면 공약이라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임기 내 추진 보류 가능성을 시사했다. 오 지사는 1일 도청 삼다홀에서 열린 민선 8기 3주년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의에 "공약이라고 해서 도민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확하다면 시행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하겠다"고 말했다. 환경보전분담금은 관광객에게 일정 금액을 부과해 제주의 환경 훼손에 따른 부담을 분담시키겠다는 취지로 추진돼 왔다. 제주도가 연간 수백만명의 관광객을 수용하면서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 하수 처리, 자연 훼손 등의 환경 비용을 공공재원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수익자 부담 원칙에 입각해 제안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제주 관광객 수가 연간 1300만명 이하로 감소하고, 관광산업 전반이 위축 국면에 접어들면서 제도 도입이 오히려 관광 수요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오 지사는 "공약 이행보다 도민 삶과 지역 경제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며 공약 수정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한편, 환경보전분담금은 도입 초기부터 '입도세'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도민사회와 업계의 찬반 의견이 극명히 갈린 사안이다. 제도화 과정에서 제주도는 조례 제정, 제도 설계, 부과 기준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했으나 실질적인 입법 추진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번 발언으로 오 지사가 해당 공약에 대해 정책 유보 또는 폐기를 포함한 재검토 수순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지난달 13일 개관한 이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 내 설문대할망전시관 어린이관이 주말과 공휴일에 온라인 예약제를 시행한다. 제주도 돌문화공원관리소는 이달부터 온라인 사전예약 및 현장접수를 병행해 설문대할망전시관 어린이관을 운영한다고 2일 밝혔다. 사전예약제는 주말 및 공휴일에만 적용된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주중(화∼금요일) 방문은 예약 없이 가능하다. 예약은 돌문화공원 누리집(https://www.jeju.go.kr/jejustonepark/index.htm)을 통해 1일 4회(각 100분) 운영회차 중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회차별 신청정원은 어린이 기준으로 각 120명이다. 또 사전예약 취소 인원과 관광객 현장 방문 등을 고려해 사전예약 입장 30분 후 회차별 30명 이내에서 선착순 현장접수를 통한 입장이 가능하다. 1인이 신청가능한 최대 인원은 4인(어린이 기준)이다. 보호자는 2인까지 체험시설 내부로 입장이 가능하다. 기존 돌문화공원 관람권을 구입할 경우 별도 요금 없이 이용이 가능하다. 이달 주말 사전예약은 오는 3일 오전 10시부터 돌문화공원 누리집을 통해 진행된다. 8월 이후의 예약은 전달 마지막 주 월요일(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돌문화공원 누리집 공지사항을 참고하면 된다. 제주돌문화공원 입장객은 일요일의 경우 1400여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13일 어린이관을 갖춘 설문대할망전시관이 개관한 이후인 22일 하루 4500명이 넘었다. [제이누리=양은희 기자]
수천억원대 피해를 유발한 불법 역베팅 게임 사이트 운영에 가담한 해외 조직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번 검거를 계기로 해외 기반 사기 조직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추적할 방침이다. 제주경찰청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붙잡혀 인천공항을 통해 제주로 송환된 50대 한국인 남성 A씨를 사기 및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해 조사 중이라고 2일 밝혔다. A씨는 불법 역베팅 게임 사이트의 고객센터 운영 업무를 맡았던 조직원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배 중 현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은 A씨가 캄보디아에 거점을 둔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력을 확대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해당 역베팅 게임 사이트에 가입한 7만여명이 수천억원대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제주경찰청은 제주에서 오프라인 홍보센터를 운영한 중간 모집책 2명을 구속하고, 또다른 관련자 2명도 입건한 상태다. 경찰에 따르면 이와 유사한 홍보센터가 전국 10여곳에서 운영됐다. 사이트 운영진은 주로 해외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 경찰은 이번 검거를 통해 실체가 드러난 조직의 해외 총책 및 핵심 운영진을 대상으로 국제 공조 수사와 추가 송환 절차를 검토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 외에 추가 피해자와 관련 범행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다. 역베팅은 경기 결과를 맞히지 못할 경우 일정한 배당금을 받는 구조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0대0부터 3대3까지 모두 16가지의 결과 중 하나를 선택한 뒤 예측에 실패하면 투자금의 0.4~1%를 배당금으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이들은 고급 외제차량을 경품으로 내세운 각종 이벤트를 열고, 지인을 추천해야만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 다단계 구조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경찰은 이들이 사실상 전국 단위로 조직적으로 사이트를 운영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의 구조와 흐름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만큼 더 이상의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최상위 책임자 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도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 가능성에 대비해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자치행정 역량 강화를 위한 세부 사무 매뉴얼 정비에 나섰다. 조례 제정과 정책 기획 등 현재까지 도청에서 수행해온 업무를 행정시로 이관하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다. 제주도는 기존 발굴한 119건의 사무 외에 169건의 신규 사무를 추가로 발굴해 모두 288개의 세부 실행 과제를 도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는 기초자치단체가 출범할 경우 행정시가 담당하게 될 사무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데 따른 대응이다. 주요 과제에는 ▲자치법규 제정 및 정비, ▲청사 배치 및 조직개편, ▲재정 배분 체계 구축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건축위원회 및 경관위원회 신설, 차고지증명제 운영 관리, 국가유산 관리, 민관 협력의원·약국 설치 운영 등도 자치시가 직접 수행해야 할 사무로 분류됐다. 제주도 관계자는 "특별자치도 체제가 운영된 지난 18년 동안 대부분의 기획과 조례 사무는 도청에서 총괄해 왔다"며 "자치시가 설치될 경우 행정시가 이러한 기능까지 직접 수행해야 하므로 사전에 충분한 인수·인계와 업무 숙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각 부서별로 사무별 업무 매뉴얼을 정비해 행정시에 전달하고 있으며 공무원과 도민의 혼란을 줄이기 위한 사전 대응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도는 이와 별도로 도·행정시 간 합동 회의를 열어 사무 수행 주체를 조율하고, 각 과제를 세분화해 효율적인 관리 체계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이번 작업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제도적 기반과 행정 실무 역량을 함께 마련하는 사전 준비 절차다. 향후 도민 여론 및 행정안전부 협의 결과에 따라 본격적인 실행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가 올해 2분기 처음으로 분기 매출 1500억원을 돌파해 개장 이후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카지노 매출도 분기 기준으로 처음으로 1100억원을 넘어섰고, 호텔 객실 이용률도 87%를 넘기며 전반적인 실적 상승을 견인했다. 롯데관광개발은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가 올해 2분기 처음으로 분기 매출 1500억원을 돌파했다고 2일 밝혔다. 롯데관광개발이 공시한 잠정 실적에 따르면 2분기 동안 드림타워 카지노에서 1100억4000만원, 그랜드 하얏트 제주 호텔 부문에서 410억9000만원의 매출을 각각 기록했다. 전체 매출은 1511억원에 달했다. 이는 기존 최고 실적인 지난해 3분기 1296억원보다 16.6% 증가한 수치다. 특히 카지노 부문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5.4% 증가한 실적을 기록했다. 분기 기준 첫 매출 1100억원대를 돌파했다. 테이블 드롭액(고객이 게임을 위해 칩으로 교환한 금액)은 6685억원으로 지난 1분기 최고 기록이던 4820억원을 넘어섰다. 이용객 수 역시 14만8475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호텔 부문도 견조한 실적을 이어갔다. 2분기 매출은 410억9100만원으로 지난해 여름 성수기였던 3분기(453억8100만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모두 12만7580실의 객실이 판매됐고, 평균 객실 이용률은 87.6%에 달했다. 지난달 한 달 기준으로는 카지노와 호텔을 합쳐 494억63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여름 성수기가 포함된 3분기 매출이 연중 가장 높게 집계되는 만큼 하반기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요즘 들어 어머니의 하루는 오후가 되어서야 시작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오늘은 애간장과 인내심을 거의 다 태우고 나서, 저녁 7시쯤에 눈을 뜨셨다. 그 사이에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눈을 뜨지 않으신다. 어떡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이번에는 어려우실 듯 하다’는 등의 하소연을 해댔다. 하나마나 한 걱정이라서일까, 아니면 노인들의 잠은 보약과 같아서 그럴까? 한결같이 보내오는 응답이 ‘그냥 주무시게 놔둬라. 잘 만큼 자고 나면 일어나실 게다’라는 소리다. 어머니의 시간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줄을 알면서도, 마치 혼자서 걱정하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다. 어쩌면 책임질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서 미리 공유하려는 듯 꼭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아, 나의 이 한없이 나약하고 비겁한 마음을 어찌할거나. 정말로 노인에게는 잠이 보약이다. 기운이 충전되셨나 보다. 어머니는 필요한 만큼 주무셨는지, 슬며시 눈을 뜨셨다. 백설공주가 따로 없지 싶다. 누구나 깊은 잠에 빠져서 눈을 뜨지 않을 때는, 저러다가 깨어나지 하면서도 마음 한 켠으론 의심과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나올 것이다. ‘스멀스멀’이란 말이 나왔으니, 평생에 잊히지 않는 일이 하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곳곳에서 과거 정부와 다른 행태와 메시지가 보이고 읽힌다. 새 정부 첫 내각 인선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눈이 띄는 부분은 현장을 잘 아는 기업인 출신 전문가들이 대거 기용됐다는 점이다. 경력과 나이를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 지명된 배경훈(49) LG 인공지능(AI)연구원장은 한국형 추론 AI 모델 ‘엑사원’ 개발을 이끌었다. 앞서 대통령실에 합류한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센터장 출신 하정우(48) AI 미래기획수석과 함께 이재명 정부의 ‘AI 드라이브’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에 지명된 한성숙(58) 전 네이버 대표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네이버를 빅테크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과학기술 분야 수장으로 전문가를 발탁한 적이 있었지만 교수 출신이 많았다. 이번처럼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은 실전형 전문가들로 관련 부처 라인업을 형성하진 않았다. 요컨대 ‘AI 3대 강국’ 달성, ‘소버린(주권) AI 개발’ 등 새 정부의 핵심 도전 과제를 기업인 출신들의 혁신 역량에 바탕해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주의에 부합한다. 윤석열 정부에
영화 ‘다운폴’이 보여주는 1945년 나치독일 붕괴의 피날레를 장식한 지하벙커 속 마지막 14일간의 모습은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었던 1939년 폴란드 침공과 점령(1939년 9월 1일~10월 6일) 때 이미 예정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한 나치독일은 1939년 9월 온갖 트집을 잡아 전격적으로 폴란드로 진격하고, 나름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폴란드를 한달 만에 무너뜨렸다. 히틀러는 폴란드 함락에 도취해 자신감이 충만하고, 곧이어 체코와 슬로바키아 침공에 이어 소련까지 진격해 들어간다. 그러나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국력이 뒤졌고, 소련 하나도 압도할 만한 전력이 아니었던 독일이 전 유럽을 석권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구상이었다. 폴란드 점령까지는 미온적으로 대처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가 체코까지 침공하자 마침내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전면전에 나서고, 소련도 독일과의 전쟁에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한두 차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그 승리가 결국에는 궁극적인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남는 장사 같지만 나중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5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69개국 중 27위에 그쳤다.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20위에서 7계단 떨어졌다. 매해 공개되는 기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이긴 해도 나라 밖에서 이렇게 바라본다는 점이 신경 쓰인다. 더구나 같은 아시아권 경쟁국인 홍콩은 3위, 대만이 6위, 중국도 16위로 한참 위에 랭크돼 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정치 혼란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순위 하락은 예상됐다. 하지만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세계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와중에 드러난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 하락은 위기 신호다. ‘기업 효율성’ 부문 순위가 23위에서 44위로 21계단 곤두박질하며 전체 순위를 끌어내렸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정치 안정성 순위도 지난해 50위에서 바닥권인 60위로 내려앉았다. IMD 순위는 각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얼마나 갖췄는지,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지를 평가한다. 올해 ‘기업 효율성’ 성적표는 한국의 주력산업이 흔들리는 데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기민하고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활동과 관련해 생산성(33→45위), 노동시장 유연성(31→53위), 경영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이끌기를 법으로만 하고 다스리기를 형벌로만 하면 백성이 법과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이끌기를 덕(德)으로 하고 다스리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바로잡아 선(善)에 이른다.” 『논어』(論語) 위정편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 ‘공정’과 ‘상식’의 대명사였다. 국내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 법대 출신이란 점에서도, 검사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기개에서도, 그리고 검찰총장이 되고 나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는 풍모에 그렇게들 생각했다. 물론 동의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그랬다. 오늘(1일)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의 말이 그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많은 수치와 통계적 이유를 들어 의사단체의 부당한 논리를 공박하는 지금의 판단 때문이다. 지금이 이런 수치와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인지 의문이 들어서다. 윤 대통령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틀린 말도 아니지만 지금 그런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이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일 때인지도 의문이다. 정부와 의료
"학생을 지키려다 제가 무너졌습니다." 제주시 한 고등학교 교사 A씨가 남긴 말이다. 그가 마주한 상황은 한마디로 무방비였다. 신체 접촉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가해 학생과 수학여행을 떠나야 했고, 신고를 했지만 돌아온 건 "화해하라"는 말과 "수행평가 때문에 복귀해달라"는 요구뿐이었다. 결국 A씨는 병가와 특별휴가를 연달아 사용한 끝에 교단을 떠났다. 학교는 침묵했고, 교사는 끝내 혼자였다. 사건은 지난 5월 수업 중 발생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던 학생을 제지하자 학생은 갑자기 A씨를 껴안으려 했고, 뿌리쳐도 다시 강하게 팔을 붙잡았다. 이후에도 새벽 시간에 문자가 왔고, 복도에서 위협적인 접근이 반복됐다. A씨는 학교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분리 조치는 없었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신고되기 전까진 어렵다"는 설명이 전부였고, 보호 매뉴얼도 없었다.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조차 A씨가 직접 확보해야 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닷새 뒤 그 학생과 함께 수학여행에 인솔 교사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이다.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A씨의 호소에도 학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 뒤로 이뤄진 분리 조치는 고작 5일. 병가에 들어간 A씨에게는 "수행평가 문제
지난 20일 오후 2시 제주시 김만덕기념관 만덕홀. '제주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안)' 공청회가 열렸다. 제주도가 추진 중인 수소트램 사업에 대해 전문가와 도민이 마주한 자리였다. 단상 위에서는 장밋빛 '미래의 제주'가 펼쳐졌다. 관광객 수요, 탄소중립 교통수단, 지역경제 회복이라는 익숙한 키워드들이 연이어 쏟아졌고 '제주형 모빌리티 혁신'이라는 수식어도 덧붙여졌다. 이날 발표된 핵심 교통수단은 '트램(Tram)'이다. 도로 위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운행되는 노면 전차로 지하철보다 건설비가 저렴하고 정시성이 높아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대중교통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일반 트램과 달리 도가 도입을 검토 중인 수소트램은 수소 연료전지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친환경 교통수단이다. 이용상 한국철도문화재단 이사장은 "수소트램 역세권 주변에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사업 추진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익 대전광역시 철도정책과장도 "도시철도 건설은 단순한 교통망 확충을 넘어 도로와 교량, 교각 등 기반시설을 함께 개량하고 개선함으로써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그 많던 야자수는 다 어디 갔나요?" "다 뽑았대요. 그런데 또 심는대요." 제주시 탑동로를 걷던 관광객과 상인의 대화다. 제주시는 지난 3월부터 이 곳 가로수도 심어졌던 워싱턴야자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 지금 탑동로에서는 야자수를 다시 심는 '재식재' 작업이 한창이다. 그 사이 도민 혈세 3억원 가까이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사실 워싱턴 야자수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오래다. 1982년부터 제주도내 주요 도로와 관광지에 심어져 그동안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색 풍경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한때 3500여 그루가 도내 곳곳에서 자라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되기도 했다. 아열대 식물인 워싱턴 야자는 멕시코, 북아메리카의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줄기는 하나로 곧고 원기둥 모양이며 회갈색이 난다. 잎은 꼭대기에 빽빽이 나며 부챗살처럼 돼 있다. 수명은 80~250년 이상이고 추위에 비교적 강해 제주지역 등에서 노지월동이 가능하다. 최대 25m 이상까지도 자라 제주 곳곳에 심어진 워싱턴 야자들도 20m를 훌쩍 넘는 크기로 자랐다. 바람에 대한 저항성이 아주 강한 편인 수종으로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 3일 오전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아래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 제주남초등학교에는 서서히 불이 들어왔다. 투표 사무원과 정당 참관인, 선거 관계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5시 30분이 되자 본격적인 투표 개시 준비가 시작됐다. 참관인을 대상으로 한 안내와 주의사항 전달, 투표지·도장·투표함 점검까지 모든 절차가 빈틈없이 이어졌고, 투표함 봉인 작업도 그 일부였다. "이건 봉인함을 잠글 열쇠입니다.", "이건 투표함에 부착할 개폐 방지 스티커입니다." 투표 사무원은 준비물 하나하나를 직접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현장은 긴장 속에서도 질서와 투명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5시 59분. 투표관리인의 개시 선서가 낭독되면서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본 투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평온했던 분위기는 채 한 시간도 유지되지 않았다. 오전 6시 48분 한 남성 A씨가 삼도2동 제2투표소에 도착해 신분증을 제시하며 투표를 시도했다.그러나 선거인명부에는 이미 지난달 30일 사전투표를 마친 이력이 명확히 기재돼 있었다. 투표 사무원이 이를 설명하자 A씨는 "내가 한 게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고, 아무 말 없이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중국어에 ‘주강호(走江湖)’라는 말이 있다. ‘강호(江湖)를 떠돌다’라는 뜻이다. 사전에는 ‘곡예사·떠돌이 의사·점쟁이 따위가 생계를 위하여 세상을 떠돌아다니다’라고 돼있다. 중국 문화전통의 세속관념으로 보면,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부류는 하층민, 더 나가서는 천민들의 일이었다.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회포를 풀다(遣懷)』1) 시에서 읊었다. “실의에 빠져 강호에서 술 마시고 다닐 때는 미인들 가는 허리 손바닥에 가벼웠네.” 실의에 빠져 곤궁해질 때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강호 사회에 전락하고 사회 하층으로 빠져든다는 말이다. 송(宋)대 원채(袁采)의 『원씨세범(袁氏世範)』 「자제당습유업(子弟當習儒業)」에 있는 기록이다 : “사대부의 자제가 일시적으로 세록을 받을 수 없고 의지할 재산이 없으면, 어버이를 섬기고 처자를 보살피기 위해서는 유생이 되는 것이 낫다. 자질이 뛰어나면 진사과를 공부할 수 있기에 위로는 과거 급제하여 부귀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글방을 열어 가르치면서 속수(束修, 옛날 스승을 처음 찾아뵐 때 드리던 예물, 개인 교수에게 주는 사례금)를 받을 수 있다. 진사과 공부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위로는 서찰을 써주는 일을 하여 서신을 대신 써 주거나, 다음으로 글 읽는 법을 배워 초학자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다. 만약 유생이 될 수 없다면 무당, 의사, 승려, 도사, 농민, 상인, 기술자 등 모두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면서도 조상에게 욕을 먹이지 않으니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자제가 떠돌아다니다가 거지가 되거나 도적이 되면 이것은 조상을 가장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사대부의 정통 관념이다. 어찌 모르겠는가. 고아함과 속됨, 즉 아속(雅俗)이란 모두 상대적이다. 홍구(鴻溝)와 같이 큰 틈이 있어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예부터 많은 아사(雅士)들이 강호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강호 속에 있는 사람도 자연히 전통 인격의 도덕, 미학, 가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확고한 강호 정신 체계를 이어받아 그 복잡한 세계를 지탱하고 유지하였다. 거지 사회는 강호 사회의 한 계통이다. 여러 부류와 서로 의존하면서, 비교적 큰 측면에서 맑고 혼탁함이 진면목을 숨기고 끼어들어 섞인 ‘강호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거지의 ‘단체 인격’이 드러난 ‘의협(義俠)’과 ‘부랑자, 불량배’라는 이중인격, 그리고 그것과 ‘강호정신’의 본질적 연계성을 얘기하고자 한다. 한비자(韓非子)는 오래전에 말했다. “협(俠)은 무력으로 금령을 범한다.” 초기 무협(武俠)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서 말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빈곤한 사람을 구제하는 일은 어진 사람의 자세다. 믿음을 잃지 않고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의로운 사람이 취하는 행동이다.” 이것이 협의(俠義)에 대한 중국 최초의 관념이다. 이를 근거로 사마천은 『사기』에 「유협(游俠)열전」을 썼다. 「유협열전서」에서 사마천은 의협의 인물과 그 행동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 말은 믿을 수 있고 그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으며, 한 번 승낙하면 반드시 성실하게 이행하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뛰어든다. 다른 사람의 곤경에 뛰어들면, 이미 자신의 생사존망을 초월한다. 자신의 생사존망을 초월하나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덕으로 원한을 해결하고 후하게 베풀고서도 그 대가는 적게 바랐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이 주를 달았다. “의협의 기질과 풍모는 이렇다 : 반드시 우의를 중하게 여기고 신의를 강구하며 즐겁게 사람을 돕고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말을 하면 행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며 굳세고 정직하다.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며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덮어놓고 싸움을 벌이거나 제멋대로 흉포하게 굴며 힘을 믿고 폭력을 휘두르고 함부로 날뛰는 것은 결코 의협이 할 일이 아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고 시비가 불분명한 강호 문파들 간에 서로 원한을 가지고 살해하는 것도 의협의 행동이 아니다.” 거지의 ‘집단 인격’은 마침 ‘협의’와 ‘부랑자, 불량배’라는 이중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마천 『유협열전』 중의 여러 ‘협(俠)’은 대부분 외딴 시골, 민간의 포의(布衣), 즉 필부다. 출신이 비천하다. 유럽 중세기에 고정적인 경제력을 가진 기사 계층의,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가졌던 구성원들과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어쩌면 당시 거지가 아직 하층 사회의 구체적 단체를 이루지 못한 까닭에 사마천의 『유협열전』 중에는 의로움을 행하는 협객과 같은 거지 열전이 없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행방이 일정하지 않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유협(游俠)’의 ‘유(游)’는 거지가 강호에서 유랑하는 행적과 상통한다. 근대와 현대 사회에서, 거지가 단체를 결성하여 내부의 인적 교류 관계를 유지하는 신조는 ‘강호 의기(義氣)’다. 사회에서 거지가 비천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의협(義俠)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바로 중국 문화전통이 그 특수한 인격에 영향을 끼친 결과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견회(遣懷, 회포 풀다)」〔두목(杜牧)〕 : 落魄江湖載酒行(낙백강호재주행),楚腰纖細掌中輕(초요섬세장중경).十年一覺揚州夢(십년일각양주몽),贏得青樓薄倖名(영득청루박행명) : 실의에 빠져 강호에서 술 마시고 다닐 때는 미인들 가는 허리 손바닥에 가벼웠네. 십 년 만에 문득 양주의 꿈 깨니 청루에서 박정한 사내라는 이름만 얻었구나. ; 제목은 ‘회포를 풀다’ 뜻으로, 두목이 환락에 빠져 지내온 생활을 자책하면서 지은 시이다. ‘초요(楚腰)’는 가는 허리를 뜻한다. 옛날 초(楚)나라 왕이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하니 궁중 여인들이 저마다 허리를 가늘게 하려다가 굶어 죽기까지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장중경(掌中輕)’은 한(漢)나라 성제(成帝)의 총애를 받던 조비연(趙飛燕)의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정도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양주(揚州)는 당나라 제일의 환락가였다. ‘양주몽(揚州夢)’은 환락에 빠져 지내온 덧없는 세월을 뜻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련하게 위장하거나 벙어리 흉내 내며 구걸하는 것에 비해 더 나간 것이 형사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기술도 인위적으로 불구로 만들어 구걸하는 것과 비교하면 작은 무당이 큰 무당을 만난 것처럼 비교도 안 된다. 일부러 불구자로 만드는 것이 ‘채생절할(采生折割)’1)이다. 청나라 건륭 시기에 향시에 합격해 소문(昭文), 봉현(奉賢) 지현을 역임했던 상휘(常輝)〔자는 의운(衣雲)〕가 건륭 34년(1769)에, 소주(蘇州) 부랑중항(富郞中巷)에서 머무를 때 쓴 『난방필기(蘭舫筆記』) 기록이다. “내가 도중(都中)에 있을 때 매번 괴인이 돈을 버는 것을 보았다. 이삼 척밖에 안 되는 사람도 있고 윗몸은 있으나 아랫몸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팔이 한 쪽이 없거나 다리 한 쪽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기형(畸形)이 다 모여 있었다.……경인(庚寅) 봄(1770)에 진택(震澤)성 중시교(中市橋)에 15세의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 아이가 다리가 없는 상태로 오랫동안 꿇어앉아 구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구하지 못하여 날이 어두워지자 울면서 구걸하였다. 혼자서 울면서 오늘은 분명 맞아 죽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몹시 슬픈 목소리였다. 마음씨 좋은 사람 오륙 명이 관찰하고 있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건장한 사내가 달려들어 업고 갔다. 몰래 성 밖 강 아래까지 따라가 봤다. 배 안에는 손이 없거나 발이 없는 동남동녀 서너 명이 있었다. 상앗대질하는 사람 오륙 명이 있었다. 모두 건장한 사내였다. 즉시 순찰대와 함께 체포하러 갔다. 우두머리는 물에 뛰어들어 도망쳤고 한 사람만 붙잡혔다. 앞에서 말한 여자아이에게 물으니 본래 현지 세도가의 딸이었다고 했다 : 팔구 세 때에 혼자 밖에 놀러갔는데 실종되었다. 해가 거의 보이지 않는 산으로 겹겹이 막혀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깨어나서 울었더니 초죽음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나중에 약을 칠한 후 다리를 칼로 잘랐다고 했다. 얼마나 아팠는지……. 여자애의 부모에게 알렸다. 딸을 잃어버린 지가 7년이나 됐지만 만나자마자 알아보았다. 관부로 보내어 여러 차례 심문했으나 확실한 자백을 받지 못했다. 끼워 고문하는 형틀을 아무 것도 아닌 양 대했다. 안건이 종결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나는 북쪽으로 돌아왔다.” 인위적으로 불구자로 만들어 구걸하게 만든 거지는 개방이 저지르는 범죄 중 하나다. 옛날에 어린이를 유괴하여 잔혹한 방법으로 불구자로 만들거나 기형으로 만들어 구걸케 하면서 재물을 편취해 전사회적 해악이 되었다 또 다른 기록2)도 있다 : 강호 악당이 ‘채생절해’로 이득을 얻으려고 어린 아이를 유괴한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강요하고 모략을 쓰기도 한다. 악랄한 악당은, 사기꾼과 한통속이다. 건륭 때에 장사(長沙)시에 두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끌고 나타났다. 개는 일반 보통 개보다는 조금 컸다. 양쪽 앞발 발톱은 개보다 길었고 뒷발은 곰과 닮았다. 꼬리는 있으나 작았다. 귀와 눈은 사람을 닮았다. 결코 개 종류는 아니었는데 개털이 온몸에 나있었다. 사람 말을 할 줄 알고 박자에 맞춰 노래할 줄도 알았다. 관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노래 한 곡 하라면서 돈을 던져주었다. 현령 형(荊)모가 그들을 만났다. 의사에게 보여주면 후한 상을 내리겠다며 병졸에게 명하여 데려오게 하였다. 먼저 개를 아문에 들여보낸 뒤 개에게 물었다. “그대. 사람인가, 개인가?” 답했다. “나 역시 사람인지 개인지 모릅니다.” 물었다. “함께 다니니 어떤가?” 답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평소에 무얼 가르치는가 따져 물으니 답했다. “낮에는 나를 끌고 시내에 나가고 밤에는 돌아가 통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루는 비가 와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배에서 내게 먹을 것을 주려고 통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두 사람이 상자를 여니 상자에는 목인(木人) 수십이 있었습니다. 눈과 손, 발 모두 자동으로 움직였습니다. 갑판 아래에는 노인이 누워있었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저도 모릅니다.” 형모가 두 사람을 체포해 심문하였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명을 내려 달군 침으로 귀곡혈(鬼哭穴)을 찌르는 극형으로 심문하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 3살 어린이로 만들었다. 먼저 약으로 피부를 흐물흐물하게 만들고서 다 벗긴 후, 개털을 태운 재와 약을 먹였다. 약을 복용시켜 병세를 가라앉히니 몸에 개털이 나기 시작하고 꼬리가 생겨나 개와 닮았다. 그런 방법으로는 열에 하나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개로 만들 수 있다면 평생 돈을 벌 수 있다. 무수한 어린이에게 실험하고서야 저런 개가 생긴다고 답했다. 목인은 어디에 쓰느냐고 물으니 답했다. “아이를 유괴해 스스로 목인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절름발이, 소경, 팔 없는 장애인 모두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돈을 구걸해 오도록 했습니다.” 형모가 상황을 알고 병졸을 데리고 가 배를 수색하였다. 배에는 가죽만 남은 노인이 있었다. 등 쪽을 갈라내 속에 짚을 넣어 만든 상태였다. 어디에 쓰느냐고 묻자, 답했다. “그것은 90세가 넘은 노인의 가죽입니다. 가장 얻기 힘든 겁니다.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약과 함께 사람 몸에 침으로 찌르면, 그 사람 혼이 곧바로 와서 부역하게 됩니다. 수십 년을 찾다가 이제야 겨우 얻었습니다. 피부가 습하게 되면 가루로 만들 수 없기에 발각됐습니다. 하늘의 뜻입니다. 하늘이시어! 이제 빨리 죽기 원할 따름입니다.” 형모가 대노해 명을 내려 차꼬와 수갑을 채워서 시가로 끌고 나갔다. 죄상을 낱낱이 알린 후 사형을 집행하니, 관중들이 쾌재를 불렀다. 개도 오랜 시일이 지나니 먹을 것을 얻지 못하여 굶어 죽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채생절할(采生折割)은 직업 거지 중에서 가장 잔인하고 흉악한 형태다. 인위적으로 불구자를 만들거나 ‘괴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세인의 동정을 받으며 길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재물을 구걸한다. ‘채(采)’는 취하다, 수집하다. ‘생(生)’은 원료, 일반적으로 정상으로 발육한 어린 아이. ‘절할(折割)’은 칼이나 도끼로 자르다 뜻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살아있는 정상적인 사람, 특히 어린아이를 잡아다가 칼이나 도끼로 자르거나 다른 방법으로 불구를 만든다거나 형상이 기괴한 괴물로 만드는 방법이다. 2) 『청패류초(淸稗類鈔)·곤편류(棍騙類)·채생절할(采生折割)』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거지는 틈만 있으면 사기 친다. 구걸할 때만 눈에 띠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청나라 모 년 모 월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가마를 타고 종복과 함께 전당포에 갔다. 팔찌 한 쌍을 벗어 건네며 저당 잡히겠다고 했다. 주인이 받아서 자세히 검사해보니 누런 금색을 띠는, 진짜였다. 중량은 5량이었다. 팔찌 주인이 경전(京錢)1) 500관(串)을 요구하자 전당포 주인은 맡을 수 없다며 돌려주었다. 한 바탕 가격 흥정을 한 후, 300관에 저당하기로 하고 숫자대로 돈을 지불하는 전표를 발행해 주었다. 그 사람이 떠난 후 옆에 서있던 거지가 낡은 저고리를 벗어서 건네주면서 20관에 저당 잡히겠다고 하자, 전당포 주인이 고소한다고 난리를 쳤다. 거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짜 금팔찌를 300관이나 주었잖소. 내 이 저고리는 비록 낡기는 했어도 가짜는 아니잖소? 어찌 20관 가치가 없다는 말이오?” 그제야 전당포 주인이 의심이 들어 다시 팔찌를 꺼내 보았다. 금도금한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지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알아챘소?” 거지가 답했다. “그 인물은 유명한 사기꾼이오. 그가 사는 곳까지 내가 알 정도니까.” 전당포 주인은 돈 2관을 보상해 줄 테니 자신에게 그 집까지 데려가 달라고 했다. 거지가 안내하는 집에 가보니 정말로 그 손님의 가마가 그곳에 있었다. 거지는 멀찍이서 그 손님을 가리키고는 돈을 받아들고 떠났다. 전당포 주인이 집안으로 들어가 봤다. 손님이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감히 떠들어대지 못하여 종복에게 손님을 불러달라고 한 후 언쟁을 벌였다. 손님이 말했다. “물건이 가짜였다면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내게 줄 수 있다는 말이요?” 안에 앉아있던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는 둘에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후 손님에게 말했다. “우리는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부당하게 이익을 봐서는 안 되오. 시정 소인과 언쟁하면서 체통을 잃어서도 안 되지요. 귀하께서 저당 잡혀 가지고 온 돈은 아직 쓰지 않았잖소. 어찌 그냥 되돌려 주지 않는 게요!” 그 손님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따른다면서 전표를 내주고 팔찌를 돌려받았다. 전당포 주인은 기쁜 마음으로 전표를 받아들고 돌아갔다. 전당포 주인이 저녁 무렵에 돈으로 바꾸려 조폐국에 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전표를 가지고 와서 현금으로 바꾸어 떠나버린 후였다. 조폐국에서 돈을 찾아간 전표와 전당포 주인이 가지고 온 전표를 대조해보니, 전당포 주인이 들고 있던 전표는 가짜였다. 전당포 주인이 다시 손님이 있던 집으로 찾아갔으나 벌써 떠나고 아무도 없었다. 거지도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알고 보니 염치없는 얼굴을 하고 나타난 거지와 사기꾼들은 한통속이었다. 짝을 이루어 사기 친 것이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청나라 때 북경 지역에서 유행하던 가격 표준이다. 강희(康熙) 때에 무게 7분(分)의 소전(小錢)을 주조해 북경에서 유통하였다. 2문(文)이 대전(大錢) 1문에 해당하였다. 그 소전을 당시에 ‘경돈(京墩)’이라 불러, 북경 금전의 명칭이 되었다. 나중에는 1문 당 경전 2문으로 제조해 사용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양대 정당이 6·3 조기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도 공약집을 내놓지 않아 유권자들이 ‘깜깜이 선거’에 내몰렸다. 국민의힘은 25~26일께, 민주당은 27~29일께 공약집을 공개할 예정이다. 결국 재외유권자는 공약집도 없이 투표를 마치게 됐다. 유권자 25만8254명이 20~25일 118개국 223개 투표소에서 투표하는데 공약집을 확인조차 못했다. 지역·주제별로 따로따로 내놓은 ‘쪽공약’만 공개됐다. 세 차례 TV토론 중 경제(18일)·사회(23일) 분야를 주제로 한 두차례 토론은 공약집 없이 진행됐다. 3차 토론이 27일이니 사실상 모든 TV토론이 ‘무無공약집 토론’이 될 판이다. 정책 토론과 상호 검증 기회를 양대 정당 스스로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대선 사전투표는 29~30일 이틀간 진행된다. 지난해 총선의 사전투표 비중(46.7%)을 감안하면 유권자의 절반 가까이가 공약집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도 없이 투표를 하게 된다.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선 공약집 늑장 제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 후보는 대선 9일 전, 문재인 후보는 10일 전에 각각 공약집을 공개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선거가 앞당겨진 2017년 조기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는 22일 전, 문재인 후보는 11일 전 공약집을 발표했다. 2022년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투표 13일 전, 이재명 후보는 15일 전에 공약집을 제출했다. 앞서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공약집이 일찌감치 한달 전에 나왔다. 이회창 후보가 36일 전, 노무현 후보가 31일 전에 내놨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20일 전, 이명박 후보가 18일 전에 공약집을 공개했다. 결국 21대 대선은 역대 대선 중 가장 늦게 공약집을 내놓은 불명예를 안게 됐다. 대외적으로 ‘정책 경쟁’을 하자고 외치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자료집 공개를 미루는 것은 서로 ‘검증’과 ‘비판’을 차단·회피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공약을 검증하는 시민단체인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유권자들은 ‘검찰, 경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 개혁’을 이번 대선의 1순위 의제로 꼽았다. 이어 ‘경제 회복 및 저성장 극복대책 마련’ ‘공정과 상식 회복 등 민주주의 복원’이 2·3순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의 선택은 조금 달랐다. ‘국민 통합·사회적 갈등 해소’가 1순위였다. 이어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 육성’ ‘수도권 집중 완화 및 균형발전’이 2·3순위로 꼽혔다. 전반적으로 일반 유권자(국민)들이 전문가보다 훼손된 민주주의, 저성장의 늪에 빠진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민주주의 복원’ 의제가 새롭게 제기됐다. 유권자들은 각종 현안을 고소·고발 등 사법시스템으로 끌고 가는 정치 실종과 선출받지 않은 기관들의 과도한 정치 개입 및 월권을 지적하며 공정성 확보가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했다. 저성장과 미국발 관세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 경제 회복 및 저성장 극복대책을 요구했다. 대선 공약집 발간이 공직선거법상 의무사항은 아니다. 앞서 12일 공개된 두루뭉술한 키워드 중심 ‘10대 공약’도 중앙선거관리원회가 임의로 제출받아 공개한 것이다. 유권자에게 발송되는 선거공보만이 의무사항이지만, 후보별로 공약을 비교해 파악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빈약하다. 대선 공약집은 후보자가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침서이자 유권자와의 약속이다. 그런데 공약집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2002년 16대 대선 이후 갈수록 발표가 늦어지는 추세다. 특히 이번 대선 공약집 공개가 가장 늦다는 것은 또 다른 ‘정치 퇴행’이다. 그 탓에 ‘정책 선거’가 자리 잡지 못한 채 정당과 후보들은 상대 말꼬리를 잡거나 잘못을 들춰내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전에 몰두하는 형국이다. 김문수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커피원가 120원’ 등을 공격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문수 후보의 ‘미스 가락시장’ 발언 등을 비판했다. 후보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공약 가운데 재원 확보 방안과 실행계획이 없는 구호에 그치는 것들이 적잖다. 첫번째 경제 분야 TV토론에서도 후보들은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답변으로 넘어갔다. 민생 현안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정책공약 경쟁은 뒷전인 채 상대방을 향한 인신공격이나 추문 들추기, 자격 시비, 색깔론 등 네거티브로 치닫는 선거전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부정적 캠페인에 유권자들이 노출되면 투표율이 5% 정도 떨어진다는 미국 대선 결과 분석(탈동원효과)도 나와 있다. 공약집 발간이 늦어질수록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설익은 공약이 국정과제로 이어져 부작용과 후유증을 잉태할 위험성도 커진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