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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7) 거지와 강호의 여러 부류 ⑤

조고가 상황을 자세히 살펴본 후 급히 관제묘로 달려가 기도하였다. 누금구가 일찍부터 관제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놀라하며 조대에게 알렸다.

 

“정말 이상해요. 어제 저녁에 괴상한 꿈을 꿨거든요. 꿈에 관우께서 노기등등하여 주창(周倉)에게 욕을…….”

 

조고는 참지 못하여 급히 물었다.

 

“주창에게 뭐라고 욕하던가?”

 

누금구는 너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주창이 북쪽 호수에서 물에 빠져 죽은 물귀신을 만났다하대요. 물귀신이 어장을 강점하고 있는 나쁜 놈의 상앗대와 발목을 잡고 있더래요. 주창이 물귀신에게 겁을 주니 잡혀있던 나쁜 놈이 도망쳤나 봐요. 관우께서 그 말을 듣고는 화가 나서 주창에게 괜한 일을 했다고 욕을 했어요.

 

‘왜 물귀신이 그 나쁜 놈을 물에 빠져 죽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느냐? 힘을 믿고 어민을 억압하는 나쁜 놈이지 않느냐. 오늘 이후도 밤에 몇 놈이 물고기를 잡으러 호수로 갔다가 몇 명 더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다. 네가 이후 밤마다 호수에 가서 지키고 있으라. 마음 약해져서 도와주지 말고.’

 

주창이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답합디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그랬지요.”

 

조고가 그 말을 듣고 놀라 당황해 어쩔 줄 모르다가 누금구에게 말했다.

 

“아이고! 아우님. 아우님이 관제묘에서 관운장을 여러 해 모셨잖소. 말 좀 잘 전해주오. 오늘 이후로 절대 어장을 강점하지 않을 거고, 밤에 다시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을 거라고, 말씀 좀 잘 전해주소. 관대하게 봐달라고 부탁 좀 해주오. 아우님의 큰 조카를 용서 좀 해달라고 부탁 좀 해주오.”

 

누금구가 듣고도 대답이 없자 조고는 황망하게 무릎을 꿇었다. 누금구는 그제야 말했다.

 

“일어나세요. 한 고향 사람인데. 이 문제, 제가 알아서 하리다! 내가 관운장께 두어 번 더 절하면 가엾이 여겨 용서해 주실 겁니다. 자비를 베풀 거외다.”

 

이렇게 해서, 누금구가 물귀신을 가장해 조대를 놀라게 하고 어장을 마을사람에게 돌려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거지 누금구가 의협심을 발휘하여 의로운 일을 한 전기적인 이야기는 민간고사 중에서 기지(機智)고사의 유형이다. 광범위하게 내려오는 그 이야기 자체는, 세상 사람들의 선악에 대한 비난이면서 영리한 인물인 거지의 의협 정신에 대한 찬양이다.

 

출신과 지위의 귀천 여부를 막론하고 그저 의협의 인격을 갖출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거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것이 중국문화전통 중 기본적인 인격 유형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의협 정신을 숭상하였다. 낡고 오래된 원시 사유 유형에 근거해 전기화(傳奇化) 되었다. 그렇게 하면서 각별히 광범위하게 전해질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거지의 의협 이야기에 대한 전기화는, 그런 행동 중에서 악한 인물이 쓰고 있는 껍질을 벗겨 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거지 중에 좋은 사람이 있고 능력이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그중에 시정의 불량배 무리들이 섞여있다는 것도 의심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청나라 때에 왕도(王燾)라는 이름을 가진 거지는 부녀자들에게는 구걸하지 않았다. 대장부라 자부하면서 부녀자에게 구걸하는 것은 부끄럽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랬을까? 아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묻자, 답했다.

 

“부녀자는 이미 타인에게 빌붙어 살지 않소. 내가 어찌 또다시 부녀자에게 빌붙을 수 있겠소?”

 

거지에는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여 있기에 독특한 도덕의식을 가진, 유별난 사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왕도의 인식은 괴이하다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봉건사회에서 부녀자의 경제적 지위가 자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독특하지 않은가. 또 다른 의협 인격의 체현이라 볼 수 있다.

 

장걸아(張乞兒), 거지 단체와 어울리지 않았다

 

 

청나라 초기에 장걸아(張乞兒)가 있었다. 초릉(譙陵) 사람으로 옹정(雍正) 2년(1724)에 다리 한쪽을 절며 주가구(周家口) 시내에서 구걸하였다. 거지 단체와 어울리지 않고 강제로 얻어내려도 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가련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시내 서쪽 의총 옆 구멍에서 지냈다.

 

당시 사람들은 그 거지가 유별나다고 생각하였다. 왜 그런가? 그에게는 불량스런 면이 없었다.

 

한 번은 한 척이나 쌓인 많은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그가 얼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호사가가 눈을 치워보니 눈 속에서 편안히 잠자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앞 다퉈 그에게 먹을 거 입을 거를 건네주었으나 그는 거의 받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풍설을 막아줄 막을 쳐주겠다고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는 사절하며 말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고 있소. 막이 필요하지 않소. 황야에서 살며 새 옷을 입는다면 강도에게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소.”

 

사람들은 왜 그를 동정했을까? 장걸아가 다른 거지와 다르기 때문이었다. 사회를 소란케 하고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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