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 먹고 갈 거야?"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아들이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 넘어 갈 때 쯤이다. 피해아동 국선변호인에 선임되었다. 벌써 1년이 지나간다. 그 기간 동안 나는 가정에서는 한 아이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사회에서는 가해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은 피해 아동 변호인의 입장에서, 나름 양쪽 입장을 치열하게 대변해 왔던 것 같다. 우선 냉정히 돌이켜 보았을 때, 한 아이의 아빠로서의 나에게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나름 가정적이고 멋있는 아빠를 꿈꾸어 보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일을 핑계로 집에 빨리 들어가지 못하는 때도 많았고, 밤에 아이가 옆에서 울어도 모른 척 뒤돌다 누워 눈을 뜨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채, 아이의 기본적 생리 욕구를 달래기 급급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무심했던 행동들이 나의 소중한 아이에게 상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돼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실무에서 경험한 아동학대의 대다수의 가해자는 부모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그들의 자녀들이다. 즉, 부모 중 한명이 가해자, 그 자녀가 피해자, 다른 부모가 피해 아동의 보호자가 되는 매우 아이러니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아동학대 가해자 부모들과 지속적으로 상담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의 훈육을 위한 본인들의 행동이 아이의 입장에서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훈육’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본인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보통 부모들은 아이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 폭행만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에 대한 학대의 유형을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방임 학대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동의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의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행위는 신체적 학대,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는 정서적 학대, 아동에게 강제적으로 위계를 악용해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는 행위 또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따위의 행위를 하면 성적 학대,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행위는 유기 또는 방임 학대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부모가 아이 앞에서 폭언을 하면서 부부 싸움을 하는 경우, 이러한 행위가 아이의 정신 건강 등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이 된다면 이 역시 아동학대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즉, 어른들은 평소 자신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해서 한번 쯤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점도 있다. 피해 아동은 부모를 기본적으로 의지하고 믿으려고 하기 때문에, 부모의 행동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지도 잘 모를뿐더러,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결국 수사기관과 법원에 부모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해 부모도 아동 학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아이를 대하고, 피해 아동도 이러한 점을 몰라 학대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누가 평소 이를 인식하고 개선하려고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 어렵지 않게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다. 바로 부모다. 부모는 본인의 행동이 자신의 아이에게 신체적, 정신적, 성적, 방임 형태의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늘 의심하고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 아이들 행복의 밑거름이 되리라는 것 역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 어머니의 목소리 - 무라트 유르다쿨(Murat Yurdakul) 언제나 다정했던 어머니의 목소리 난 빨간 봉우리와 함께 침묵의 꿈에 휘말렸지! 얼굴에 전쟁을 그리는 소년 3월은 촛불과 잠을 기억하지! 난 잠을 태워, 겨울은 너를 미치게 해… 하느님이 말했지 탱크, 폭탄, 소총, 그들은 북을 치고 있어 내가 울고 있는 동안 또 다른 유다 나무... 등불이 꺼지고 불이 바다에 쏟아지고 세상의 장막이 우리 위로 고통과 함께 내려왔지 개미가 휘파람을 불며 내 왼편에 있었고 통증 가득한 껍질, 갈비뼈도 뼈도 없어 사과에 이빨 자국, 재단사의 피 흘린 손 모두 함께 모든 게 사라졌다고 말했지! 하이다르파샤, 어린 시절의 목구멍이 차가워지고 있어 대지의 뒷마당에서. 세상 모두가 차가워요 용서하는 대지는 용서받는 대지, "몸이 맞지 않아," 차가운 이마를 가진 소년이 말했지. 아침이 씁쓸한 시를 암송하는 내 입을 태웠지. 아득한 아침이 하품했어. 어머니가 말했지. “새에 박힌 납은 마르게 둬”… 항상 그의 목소리였지. * "내 어머니의 목소리"는 2018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13회 국제 프레미오 비트루비오 상(XIII international Premio Vitruvio Poetry Award)’ 수상작품임. My Mother's Voice (Murat Yurdakul) It was always my mother's tender voice, I got involved in the dream of the silent with the redbuds Boy painting his face into war March remembered candles and sleep I'm burning my sleep, winter makes you crazy... said god Tanks, bombs, rifles, they're drumming Another judas tree while I cry... The lamp went out, the fire poured into the sea The veil of the world fell upon us with pain The ant was whistling and to my left Aching crust, no ribs, no bones Teeth marks on your apple, the tailor's bleeding hand They said together that everything disappeared Haydarpaşa ah, the neck of my childhood is getting cold In the backyard of the earth. Everyone in the world is cold. And the land that forgives the land that forgives "The bodies don't fit," said the boy with the cold forehead. The morning burned my mouth memorizing bitter poems The distant morning was yawning My mother said, "Let the lead stuck in the bird dry"... It was always his voice ◆ 무라트 유르다쿨(Murat Yurdakul) = 1983년생으로 튀르키예 에스키셰히르에 있는 국립 아나돌루대학교(Anadolu University) 영어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그의 시, 단편소설, 번역물들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잡지에 게재되었고 '현대시번역영국저널(British Journal of Modern Poetry Translation)'에서 2018년에 최고의 번역가로 선정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제13회 국제 프레미오 비트루비오 상(XIII international Premio Vitruvio Poetry Award)(2018), 이탈리아 문학사를 위한 제6회 국제 치타 델 갈라테오 문학 소설상'(VI international Città Del Galateo Literary Story Award)'(2018), 'Homeros Literature Awards Tarık Dursun K. Story Award 3rd Prize'(2020) 등의 상을 받았다. 또한, 2020년 Homeros 문학상에서 Tarık Dursun K. 이야기 부문 3등을 받았다. 그는 2020년 중국 국제 시 번역 및 연구 센터의 시 시집에 참여했다. 202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시 번역 및 연구 센터(IPTRC) 국제 이사회로부터 올해의 국제 시인상을 받았다. 2022년 국제 아시아 펜 [이집트]의 "실크로드 문학"에 그의 시가 포함되었다. 또한, 2022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제 시 번역 및 연구 센터(IPTRC) 국제 이사회로부터 올해의 국제 번역가상을 수상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요즘 뉴스에는 무서운 10대들의 범죄행각이 자주 등장한다. 뉴스에서 접하는 빈도와 내가 직접 사건으로 만나는 빈도가 비례하여 많아지는 점을 보면,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차 털이’, ‘조건 사기’ 제주지방법원에서 소년보호사건 국선보조인으로 활동하며 알게 된 소년범들에게서 들은 범죄 수법이다. 기억하는 단어가 두 가지일 뿐, 그들이 은어로 사용하는 범죄 수법은 다양했다. 다양한 범죄 수법 안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공동으로 범행한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은 사회적·심리적으로 미성숙하여 무리 짓기를 좋아한다. 나아가,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안정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내가 속한 무리가 범죄에 노출될 때, 괜히 어울려 기웃거리다가 같이 연루되는 것이다. 결국, 대부분 ‘특수범’으로 처벌받는다. 특수절도, 특수폭행, 특수공갈 등 ‘특수범’은 단독범과 비교할 때, 그 형이 무겁다. 물론, 범죄 가담 형태와 정도에 따라 그 형의 양정은 적절히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단 중범죄가 적혀있는 사건기록을 받아 볼 때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는 이 어린 친구가 어쩌다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찾아온다. 두툼한 사건기록 속에는, 아직 어린 당사자가 저지른 범죄의 일시와 장소, 그 수법이 아주 건조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 활자들은, 어린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하고 집요한 범죄자를 담담히 표현한다. 그런 천하의 나쁜 놈이 내 조력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일을 내가 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드는 시점이다. 마음을 다잡고, 변호사로서, 국선보조인으로서 의무를 되새긴다.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직접 만난다. 소년은 잔뜩 겁먹은 상태이지만, 억지로 센 척(?)하는 티가 이미 풀풀 난다. ‘아직 어리긴 하구나’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거짓말처럼,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은 공통점이 있다. 받아야 마땅한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정 내에서, 학교 내에서 사랑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계도 받을 기회조차 없었던 경우가 많다. 잘못을 다잡아 주고 의지가 되는 존재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느니 못한 가족만 있는 경우도 많다. 결과적으로, 소년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결국,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끼리 무리를 만든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혼란한 소년들이 모인 그 무리 안에서는, 두려움 없이 막 나가는 성정이, 리더의 자질인 듯싶다. 한편, 그 무리에 속한 소년들은 무리 안에서 무시당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단다. 또한, 이 무리에서 나가게 되면 그때는 정말 혼자라는 생각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리 내에서 단순히 재미로, 돈 몇 푼을 위하여 같이 범죄를 저지른다. 이 무리는 소년원 안에서도, 소년원을 나와서도 유지된다. 이런 비행의 결과는, 쌓일 대로 쌓인, 지울 수 없는 수사경력 또는 범죄경력 기록뿐이다. 물론, 이런 사정이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 책임이 덜어진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된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10대들에게,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정서적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중범죄자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 능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에, 어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사소한 노력과 관심이 궁극적으로 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를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는 첫걸음이다. ☞이용혁은? =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변호사. 변호사시험 합격 후 제주도청 특별자치법무담당관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제주지방법원 사거리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협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제주지방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제주도 지방노동위원회, 제주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의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지검 청원심의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민로스쿨 특별강연과 제주도 공무원을 위한 특강에도 힘쓰며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노력 중이다.
"화났나? 패대기치다니..." "누구한테? 뭣 때문에?" "다행히 내쪽은 아니네."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번 ‘가공식품 포장 속 숨은 그림찾기’는 영양표시에 관한 것이다. 가공식품의 포장이나 용기에 표시하는 영양정보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더 좋은 식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영양표시에는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과 같은 대사성 질환(성인병)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도 같이 들어있다. 가공식품의 영양정보에는 열량, 나트륨, 탄수화물, 당류, 지방,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콜레스테롤, 단백질의 9가지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고, 이외에 기업에서 알리고픈 영양성분이나 강조하고 싶은 사항을 영양표시나 영양강조표시로 나타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영양정보에는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열량을 칼로리 단위(kcal)로 맨 처음에 표시한다. 2017년 이전에는 열량 다음으로 영양성분 표시의 1순위가 탄수화물이고 나트륨은 맨 마지막이었는데, 이후부터는 영양정보에 나트륨을 맨 처음에 표시하도록 바뀌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과 찌개를 선호하는 식습관으로 인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하루 권장량보다 나트륨을 2배 이상 많이 먹고 있어서 나트륨 과다섭취로 인한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등의 대사성 질환의 위험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식습관과 시대상을 반영하여 영양정보 표시도 변하는 것이다. 의무표시 성분 외에 영양표시 가능 항목으로는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등이 있고, 영양강조표시는 해당 제품이 정해진 기준을 충족할 경우 저나트륨, 무지방, 고식이섬유, 칼슘 강화 등과 같이 표시할 수 있게 하여 소비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럼 영양정보에는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을 주로 표시하도록 한 것일까?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좋아할만한 성분을 내보이는 것이 제품 판매에 효과적이지만 소비자는 건강에 문제가 될만한 성분을 의무적으로 표시하게 하는 것이 제품 선택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식품 영양정보에는 과잉 섭취 시 건강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성분을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뿐만 아니라 과잉 섭취 시 대사성 질환 등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나트륨, 당류,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콜레스테롤은 반드시 표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탄수화물의 한 종류인 식이섬유와 지방의 일종인 불포화지방은 건강에 좋은 성분이므로 의무표시 대상이 아니다. 또한 소비자들은 위의 그림과 같이 영양정보에 표시된 영양성분의 함량과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대한 비율’을 잘 살핌으로써 식품 선택에 있어서 건강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어야 할 것이다. ‘1일 영양성분 기준치’는 건강 유지를 위해 하룻동안 섭취해야 할 각 영양소의 양을 뜻하고, 영양정보에는 해당 식품을 정해진 분량대로 섭취하였을 때 각 영양소의 하루 필요한 기준량을 얼마나 충족시키는지 비율로 표시한다. 다만 열량과 트랜스지방은 ‘1일 영양성분 기준치’가 정해지지 않아 그 비율을 표시하지 않는데 열량은 사람마다 체질에 따라 요구하는 정도가 다르고 트랜스 지방은 가급적 섭취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표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제품의 영양정보에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대한 비율’이 단백질에서 30%로 표시되어 있다면 하루 필요한 단백질 총량의 30%를 해당 식품을 통해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1일 영양성분 기준치에 대한 비율’은 총 내용량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해당 식품의 1회 분량 또는 일부(예: 100 g)에 대한 비율일 수도 있으니 잘 확인해야 한다. 의무표시 대상 영양성분 외에 식이섬유, 비타민(비타민 A, B군, C, D, E 등)과 무기질(칼슘, 철분, 아연 등)도 영양정보에 표시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유에는 칼슘이 풍부하지만 상대적으로 두유에는 부족하므로 이를 보충하기 위해 두유에 칼슘을 첨가하여 제조할 수 있다. 이때 칼슘을 영양정보에 표시할 수 있고 또한 칼슘을 뼈로 가게 하는 비타민 D도 넣었다면 같이 표시할 수 있다. 기업은 해당 제품에 칼슘과 비타민 D가 들어갔다고 자랑하고 싶을 것이고 소비자는 이러한 영양소를 보충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진다. 영양강조표시로 ‘제로칼로리(무열량)’, ‘저나트륨’, ‘무당’ 등이 사용되는데 이런 강조표시를 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품 100 g 또는 100 ml당 열량이 4 kcal 이하면 ‘제로칼로리(무열량)’, 나트륨이 120 mg 이하면 ‘저나트륨’, 당류의 함량이 0.5 g 이하면 ‘무당’ 등으로 영양강조표시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지방,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콜레스테롤, 식이섬유, 단백질도 표시조건의 기준을 충족하면 ‘저, 무, 고, 함유’ 등의 영양강조표시를 할 수 있다. 또한 비타민과 무기질의 경우에도 식품 100 g당 ‘1일 영양성분 기준치’의 15% 이상 또는 식품 100 ml당 7.5% 이상 함유하고 있다면 ‘비타민 C 함유’, ‘칼슘 함유’와 같이 영양강조표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러한 영양강조표시와 유사하지만 의미가 다른 표시 문구들을 오독하지 않고 잘 판단해야 한다. 예를 들어 ‘무가당’ 또는 ‘설탕 무첨가’는 당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무가당’은 당을 더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본래 식품 원재료에 당류가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상관없기 때문에 무가당 제품에도 당류가 다량 존재할 수도 있다. ‘설탕 무첨가’도 인위적으로 설탕을 넣지 않았다는 것이지 재료 원래의 당이 있을 수 있고 설탕 대신에 과당이나 포도당이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당뇨 등으로 인해 당류의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면 영양강조표시만 볼 것이 아니라 영양정보에 나타난 당류의 함량을 꼭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주의사항 표시로 ‘알레르기 유발 식품’, ‘고카페인 함유’ 등이 있다. 식품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재료가 쓰인 경우 함유된 양에 상관없이 ‘밀, 우유, 대두 함유’와 같이 원재료명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해야 하고, 원재료로 들어있지는 않지만 제조설비를 같이 사용함으로써 혼입될 가능성이 있을 때도 ‘이 제품은 계란, 우유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주의사항을 나타내야 한다. 특정 식품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해당 재료가 들어있는 가공식품을 먹어서는 안되고 또한 해당 재료가 들어간 식품을 가공했던 설비로 제조된 다른 식품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카페인은 적당히 섭취하면 활력을 주는 좋은 효과가 있지만 지나친 섭취는 여러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음료 100 ml당 카페인을 15 mg 이상 함유하면 ‘고카페인 함유’ 표시와 함께 ‘어린이, 임산부, 카페인 민감자는 섭취에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주의사항을 나타내야 한다. 가공식품의 영양표시에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도와주는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체중 감량이 목적이라면 열량(칼로리)이 낮은 식품, 당뇨가 걱정이라면 당 함량이 낮은 식품을 선택하고, 고지혈중이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경우에는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콜레스테롤을 많이 함유한 식품은 피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제로칼로리’, ‘저콜레스테롤’ 등의 영양강조표시가 있는 식품을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식품 알레르기가 있거나 카페인에 민감한 소비자는 주의사항 표시를 확인함으로써 알레르기 유발 식품과 고카페인 함유 식품을 피할 수 있다. 영양표시를 이해하고 잘 활용할수록 소비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가공식품을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나는 긴 문장으로 꿈을 꾸지! - 파루크 아스바트(Farouk Asvat) 나는 조금 슬퍼 (항상 그렇듯이): 젊은 시절 비행으로 내 사랑을 버렸어, 내 삶을 버렸지. 밤의 맑은 빛 속에서 인생의 고통은 죽음보다 더 나쁘지, 심지어 고문보다도, 가끔은. 외국 땅에서 함께 돌을 부수며 소유욕은 없어, 단지 애정만이 필요할 뿐이야. 하지만 차분하거나 엄한 풍경이든 상황은 이미 정해져 있어: 운명이 우리의 삶에 대해 더 말할 거야 억압보다도. 그리고 별들이나 이념이 우리를 구할 방법은 없어 여기서 갈 곳은 없어 그저 침묵하는 욕망의 고통 속으로 기어들어 가야 해 슬픈 단어들과 함께 추는 슬픈 춤 속으로 내 혀 위에서 노는 말들과 함께 탱고를 춰 그래서 긴 문장들로 꿈을 꾸지 해제되어 풀어지는 단편 이야기로 나를 둘러싸는 줄들로 옛날식 시네마 릴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로 혹은 쓰레기 속에서 솟아오른 시로 너를 감싸는 시트로 그리고 아침에 희미하게 기억나는 화려한 장면들로 과학 소설 속에서 환상적인 이야기들로 의심스러운 사랑 이야기로 지루한 서사시로 쓰지 않은 연속물로 침묵하는 뮤지컬로 목탄 스케치로 그것들은 수채화로 채워지지 나는 너에 대해 꿈을 꾸지! I DREAM IN LONG SENTENCES (Farouk Asvat) I am a little sad (As I always am): I gave my love away In the misdemeanors of youth, I gave my life away. In the clear light of night The pain of life Is worse than death, Than torture even, Sometimes. Breaking stones together In a foreign land There is no desire For possession Only the need for affection But serene or severe The scene is set: Fate has more to say about our lives Than oppression. And there is nothing that the stars Or ideology Can do to save us. There is nowhere to go from here But crawl into the silent pain of desires Into the sad dance with words Frolicking on my tongue Tangoing in my skull So I dream in long sentences In short stories that unwind In lines that weave around me In old fashioned cinematographic reels In poems that descend from heaven Or spiral up from the garbage In sheets that wrap around you And wild scenes I vaguely remember in the morning In science fiction And fabulous fables In dubious love stories And tedious epics In unwritten sequences And silent musicals In charcoal sketches That fill up With watercolours I dream about you ◆ 파루크 아스바트(Farouk Asvat) = 소설가, 번역가 및 의사로도 활동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시행된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억압을 받았다. 그는 '불꽃의 찬사(A Celebration Of Flames)'라는 시집으로 VITA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로부터 '양심수'로 인정받았으며,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교로의 풀브라이트 장학금, 네덜란드의 프리에 브른 대학교(EOC 장학금), 케이프타운 대학교 의료 신뢰 장학금 및 아프리카 네트워크(Africa Network)로부터 콴자 훈장을 수상했다. 그는 Witwatersrand 대학에서 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다양한 지역 사회 병원과 클리닉에서 근무했다. 그의 시, 단편 소설 및 에세이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 터키,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잉글랜드 및 남아프리카에서 출판됐다. 그의 시는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포르투갈어와 터키어로 번역됐다. 그는 남아프리카 및 해외의 다양한 커뮤니티 장소에서 시를 낭독했고 다양한 신문사의 기자, 칼럼니스트 및 미술 평론가로 자유 작업을 했다. 그의 모든 책은 지금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현대의 기업 경영자도 격렬한 경쟁 속에서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현신양장(賢臣良將)’을 구해야 한다. 보좌해주는 야무진 부하가 있어야 한다. 경영자가 ‘상현(尙賢)’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을 기준으로 쓸 만한 인재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주역』은 말한다. “사람이 모이면 어지럽고 사물이 모이면 싸우며 일이 모이면 문란하니, 대인이 다스리지 않으면 모임은 다투어 어지럽게 된다.”1) 그렇기에 그저 인재를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인새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충분하게 인재를 존중하여야 한다. 소순(蘇洵)도 말한 적이 있다. “인재를 고르고 예로써 대해야 한다.”2) 인재가 기업에서 일하려고 하는 까닭은 그저 수입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는 회사의 분위기이다. 높은 소양이 있는 인재는 더욱 서로 이해하고 화합적인 분위기를 창출하기를 원한다. 경영자는 그런 분위기의 창립자이다. 창립자의 가장 좋은 방식은 ‘존중’이다. 그렇기에 경영자는 먼저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인재를 존중하고 존중하며 또 존중하여야 한다. 모토롤라 경영자가 말한 적이 있다. “모토롤라의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단지 사람에 대한 존중과 고상한 도덕 정서를 견지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토롤라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업문화다.” “척도 짧을 때가 있고, 촌도 길 때가 있다.”3) 이 말은 중국인이 평상시에 듣는 말이다. 한 자의 길이가 때에 따라서는 짧아 걱정하는 수가 있는가 하면, 한 치의 길이도 때에 따라서는 길어서 곤란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나 물건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 않던가. 당태종 이세민이 인재를 쓸 때 일찍이, “군자가 사람을 쓰는 일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아 각기 그 장점만은 취한다.”4) 라는 명언을 남겼다. 많은 경영자가 늘 인재가 없다고 한탄한다. 사실이 그런가? 그렇게 말하는 경영자는 인재의 장점을 알아보는 식견이 없을 따름이다. 사람을 쓰는 데에 한황(韓滉, 723~787)처럼 한다면 버릴 인재는 하나도 없다. 한황은 당 덕종 때에 진해(鎭海)절도사를 지냈다. 사람을 쓰는 방면에 있어 재능에 따라 적재적소에 썼다. 친한 친구의 아들이 의탁했는데 어떤 장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한황이 그를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정하게 앉아 옆자리 사람과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폐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한황은 그의 그런 모습에서 비범한 일면을 찾아내었다. 한황은 그를 창고 문을 지키도록 파견하였다. 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단정하게 앉아서 지켰다. 그러자 감히 마음대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예부터 지금까지 뛰어난 인재를 잘 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았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당태종 이세민의 용인술을 기록하고 있다. 이세민은 말했다. “영명한 군주는 인재를 임용함에 있어 재주가 있는 목장이 목기를 만드는 것과 같다. 똑바른 것으로는 끌채로 삼고 굽는 것으로는 바퀴를 삼으며 긴 것은 동량으로 삼고 짧은 것은 두공으로 삼는다. 굽든 곧든 길든 짧든 상관없이 각기 쓸모가 있다. 영명한 군주가 사람을 씀도 이와 같다. 총명한 사람은 책략을 취하고 우둔한 사람은 힘을 쓰며 용감한 사람은 위무를 쓰고 겁이 많은 사람은 그 신중함을 쓴다. 총명하든 우둔하든 용감하든 겁이 많든 모두 쓸 데가 있다. 그렇기에 뛰어난 장인은 재료를 버리지 않고 영명한 군주는 인재를 버리지 않는다.”5) 사마광(司馬光)도 말한 적이 있다. “무릇 사람의 재질(재능才能과 품성禀性)은 각기 능력이 있다. 덕에 뛰어나기도 하고 재능이 강하기도 하며 이것이 장점이기도 하고 저것이 단점일 때도 있다. 사람을 쓰는 것은 그릇을 쓰는 것과 같다. 각기 그 장점을 취하면 된다.” 사람을 깊이 이해하기만 하면 진정으로 맞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사람을 잘 쓸 수 있으며 사람을 훈육할 수 있으며 사람을 머물게 할 수 있다. 항상 듣는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사람의 단점만 보면 세상에 쓸 만한 사람이 없고 ; 장점만 보면 세상에 쓰지 못할 사람이 없다.” 성격이나 유형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모든 성격 특징은 각기 가치가 있고 장점이 있다. 물론 단점도 있고 주의하여야 할 점도 있기 마련이다. 자기 성격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자신의 장점을 더 뛰어나게 발휘할 수 있다. 사람됨이나 일을 맡아 처리할 때나 자기 성격 중의 단점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타인과 스스럼없이 교류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성격 특징을 명확하게 이해하면 충돌을 피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단합하고 협력할 수 있다. ***** 萃卦 ䷬ : 택지췌(澤地萃) 태괘(兌卦: ☱)상 곤괘(坤卦: ☷)하 취(萃)는 왕이 사당을 두게 되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로운 것은 형통하기 때문이니 바름이 이롭다. 큰 제물을 써서 길하니, 가는 것이 이롭다./ 취(萃)는 왕이 사당에 가니, 대인을 봄이 이로운 것은 형통하기 때문이지만 바름이 이롭다. 큰 제물을 써서 길하니, 가는 것이 이롭다.(萃,亨王假有廟,利見大人,亨,利貞.用大牲,吉,利有攸往.) [傳] 췌괘(萃卦䷬)는 「서괘전」에서 “구(姤)는 만나는 것이다. 사물이 서로 만난 이후에 모이기 때문에 취괘로 받았으니, 췌괘는 모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물이 서로 만나면 무리를 이루기 때문에 췌괘가 구괘 다음에 온다. 괘의 모양은 태괘(兌卦☱)가 상괘 곤괘(坤卦☷)가 하괘이다. 못이 땅보다 올라가 있는 것은 물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췌괘이다. 못이 땅위에 있다고 하지 않고 못이 땅보다 올라가 있다고 하였으니, 땅보다 올라가 있다고 하면 바야흐로 모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 人聚則亂,物聚則爭,事聚則紊,非大人治之,則萃所以致爭亂也.(췌과(萃卦)·「전(傳)」) 2) 擇之以才,待之以禮.(宋•소순(蘇洵)「광사(廣士)」) 3) 尺有所短,寸有所長.(『초사(楚辭)·복거편(卜居篇)』) 4) 君子用人如器,各取所長.(『자치통감(資治通鑑)·당태종정관원년(唐太宗貞觀元年)』) 5) 李世民, 『帝范』「審官第四」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주운전으로 처벌받고, 10년 내에 재차 음주운전을 하는 경우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이 지난 4월 새롭게 시행되었다. 기간과 관계없이 음주운전을 2회하는 경우 곧바로 가중처벌하는 소위 ‘윤창호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자 새롭게 보완한 것이다. 처벌이 강화되면서 음주운전 관련 상담이 무척 늘었다. 상담을 하다보니 음주운전에 관하여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은 단순 음주운전으로는 실형을 선고받는 일은 없거나 매우 적다는 것이다. 벌금 정도 내거나 아무리 심해도 징역형에 집행유예 정도로만 처벌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발생시키지 않더라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제로 제주지방법원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 0.283%로 만취한 상태로 운전을 하였다는 사실로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이 진행되던 중 다시 또 0.196%로 음주운전을 하여 집행유예 없는 징역 2년 형을 선고한 바 있다. 위 사안의 경우는 피고인이 2017년 이미 한 차례 음주운전으로 처벌된 전력과 재판 중에 재차 음주운전을 하였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위 경우 외에 단순 음주운전이라 하더라도 혈중알코올 수치가 높고, 재범이라면 단순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두 번째는 음주운전 중 교통사고를 발생시켰다면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사고를 수습하지 않고 도망하여 상해로 그칠 피해를 사망에까지 이르게 만들 수 있고, 형량으로 보더라도 사고 발생 이후 도주하는 경우가 더욱 중하게 처벌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다가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경우 통상 ‘위험운전치상죄’로 처벌된다.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반면,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도 구호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 ‘도주차량죄’로 처벌되며 형량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언뜻 보면 10년 이하의 징역이 더 중한 처벌 같지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더욱 중한 형이다(1년 이상의 유기징역은 1년 이상 30년 이하의 징역과 같은 의미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였다면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 구호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지 두렵다고 도망가서는 절대 안 된다. 세 번째는 소주 1~2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도로교통공단의 음주운전 예방 자료에 따르면 70kg 성인 남성 기준으로 소주 1잔을 마셨을 때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0.015%로 알려져 있기는 하다. 음주운전의 최저 혈중알코올농도수치인 0.03%에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치에 불과하다. 혈중알코올농도는 체질, 음주 당시 신체 상태, 술의 종류, 안주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차이가 난다. 따라서 사람, 상황에 따라서는 소주 1잔으로도 0.03%를 초과할 수 있다. 실제로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맥주 4캔을 마시고 잤는데, 다음 날 오전 8시경 혈중알코올농도 0.03%를 초과하여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소주 1잔을 마셨더라도 신체 상태에 따라 곧바로 음주운전이 될 수 있다. 제주도에서 11년 만에 음주운전 신고포상제가 부활된다고 한다. 2012년 11월 말 전국 최초로 시행하였다가 신고가 속출하여 6개월 만에 무려 ‘예산부족’을 이유로 중단되었던 제도다. 이번에도 도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거리라고, 술을 얼마 마시지 않았다는 핑계로 음주운전을 하여서는 안 되겠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처벌도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음주운전이 초래하는 결과를 생각하면 절대로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피해자는 1573명에 이르며, 지난 4월에는 대낮에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아홉살 어린이를 사망하게 한 끔찍한 일도 있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인도로 돌진하여 초등학생을 쳐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도 운전자는 기억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음주운전이 살인운전이라 불리는 이유다. 음주운전은 더 이상 ‘술에 취하여 저지른 실수’가 아니며 중대한 범죄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
"너, 참 예쁘다." "너야, 아니 나야?" ☞ 오동명은? =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 소설 <소원이 성취되는 정원> 소설 <장군어미귀향가>등을 냈다. 4년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었다.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현재는 지리산 주변에 보금자리를 마련, 세상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한순간에 - 디미트리스 P. 크라니오티스(Dimitris P. Kraniotis) 너는 넘어섰지! 그들이 묻어둔 너 자신을 알라는 경계를, 너는 파괴했어 감옥을 커튼 뒤에 숨어있었지만 너의 분노의 불꽃으로 환해졌지, 울음조차 없이, 속삭임도 없이, 한순간에, 그저 그렇게 쉽게, 어둠 속에 적힌 것이지만 (그렇게 쓰여 있어도) 전하지 않은 것을 포용함으로써 빛을 낳았어. In a flash (Dimitris P. Kraniotis) You violated the borders which buried their know thyself, you destroyed prisons behind curtains turned ablaze by the spark of your anger, without cries, without whispers, in a flash, that simple it was, you gave birth to light when you embraced what isn’t told (although written) in darkness. ◆ 디미트리스 P. 크라니오티스(Dimitris P. Kraniotis)=그리스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그는 그리스와 해외에서 10권의 시집을 출판했으며, 그의 시는 28개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출판됐다. 그는 여러 국제 시 축제에 참여했다. 그는 이탈리아 문학 박사이며, 2011년에는 세계 시인 대회(Greece 2011)의 회장, 세계 시인 협회(WPS)의 회장, 지중해 시 축제(Larissa, Greece)의 감독 및 PEN 그리스의 평화 작가 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 췌괘 췌(萃)는 모이다, 집결하다 뜻이다. 많은 뛰어난 인물이 모이니 영웅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영재가 서로 모이면 반드시 하늘과 땅이 뒤집히듯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아름다운 미래가 창조된다. 인재가 부족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고상함과 고상함이 모인다. 아름다움과 희망이 모인다. 전국시기에 진(秦)소왕(昭王, BC325~BC251)은 사람됨이 낙관적이었다. 기상이 넘쳐나 원대한 계획을 크게 펼쳐 천하통일을 바랐다. 그러나 천하통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기(單騎)로 창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 듯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왕은 천하의 현재를 끌어 모을 마음을 먹었다. 범저(範雎)는 원래 은사(隱士)였다. 시서와 병법을 두루 익혀 원대한 계략에 뛰어났다. 당시 유명한 현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범저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다 진(秦)나라에 이르렀다. 진 소왕이 듣고는 범저를 초빙해 부하로 삼고 자신을 위하여 일을 시킬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친히 범저를 찾아갔다. 소왕은 범저를 보자마자 주변에 사람을 물린 후 독대하였다. 소왕이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서 가르침을 청했다. “선생을 무엇을 가지고 내게 가르침을 주겠습니까?” 무릎을 굻은 것은 진심을 표현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범저는 우물우물 무슨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러자 소왕은 다시 한 번 더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하며 말했다. “선생은 어떻게 내게 가르침을 주겠습니까?” 두 번째 무릎을 꿇으면서 더욱 공경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어떤 불만스런 표정도 없었다. 그래도 범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왕은 화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낸다는 마음으로 다시 무릎을 꿇었다. “선생은 내게 가르침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말입니까?” 세 번째 무릎을 꿇자 범저의 마음이 움직였다. 실로 그렇지 않은가,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열리지”1) 않던가. 소왕의 정성어린 행동을 보고 범저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범저는 자신이 진언하고 싶지 않은 걱정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범저가 걱정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소왕은 네 번째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선생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합니까? 진나라는 외지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는 국가입니다. 나 또한 재능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선생이 우리나라에 왔다는 것은 하늘이 내게 선생을 성가시게 굴어서라도 선왕이 남긴 고업을 중단하지 말라는 계시를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선생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이 선생에게 선왕을 도와 나를 버리지 않게 한 것입니다. 선생이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후부터 일이 크든 작든, 위로는 태후부터 아래로는 대신까지 모든 것에 대하여 선생께서 내게 하나하나 가르침을 주세요. 나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소왕의 뜻은 명확하다. 범저가 말을 하도록 모든 우려를 없애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범저는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남김없이 하도록 만들었다. 결국은 자신이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범저의 말을 한 마디로 놓치지 않았다. 범저는 줄곧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소왕이 특별히 허락했지만 여전히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먼저 실험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대왕의 계책도 실수하는 바가 있습니다.” 소왕은 그 질책을 듣고도 화내지 않았다. 범저가 진언하려는 전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기를 잡아야 했다. 범저의 우려를 철저히 없애야 했다. 소왕은 다섯 번째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과인이 실수한 계책이 무엇인지 상세히 듣고 싶습니다!” 말은 더 정중하였고 태도는 더 공경스러웠다. 이때서야 범저도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았다. 더 빼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소왕을 도와 육국을 통일하는 데에 보좌하겠노라고 답하고 자신의 계책을 알려주었다. 범저는 기인이다. 자기 재능을 믿었고 청렴하였다. 속세를 경시하였다. 소왕은 인재를 사모할 정도였다. 인재를 얻고 인재를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제왕의 몸을 다섯 번이나 굽히면서 범저의 진언을 구했다. 결국 범저를 제단에서 내려오게 하여 기꺼이 자신을 위하여 힘을 다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자신이 세운 공명의 뜻을 이루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현인을 모집한다는 평가를 이루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산과 사직이 안정을 이루게 됐다는 점이다. 대업을 이루려는 원대한 계획이 실현됐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는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소왕이 마음을 비우고 현인을 받아들인 조치는 옳았다. 범저는 진나라를 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래서 채택(蔡澤)이 말했다. “제후를 제압하고 삼천(三川) 일대를 도모한 위세로 의양(宜陽)을 튼튼하게 했으며, 양의 창자 같은 험지를 끊어 태항산의 길을 막고……천하가 모두 진나라를 두려워하니 진나라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고, 그대의 공적은 극에 달했소.”(『사기·범수채택열전(范睡蔡澤列傳)』) 이것은 소왕이 현인을 존중하고 능력 있는 자를 높여 받아들인 결과다. 현인을 존중했기에 많은 인재를 불러 모았다. 자신이 군웅을 웅시할 수 있는 자본이 됐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이 됐다. 1) 精誠所至,金石爲開.(『후한서(後漢書)·광릉사왕형전(廣陵思王荊傳)』)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