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치고 관상을 봐주면서 구걸하기도 했다.
갑골 복사(卜辭)부터 『주역』까지 중국은 일찍부터 고유한 점복 사상과 완전한 방법론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주례·춘관·사무(司巫)』 등의 기록을 보면 “상사(喪事)는 무당이 신을 내리는 예를 관장한다”라고 돼있다.
점복과 무술(巫術)은 이미 민간 사회에서만 유행했던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상층사회의 정치활동 중에서 중요한 합법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깊고도 두터운 전통문화의 토양이 있었기에 많은 강호 술사들이 생겨나 일상 민간 생활의 필요에 적응하게 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현대 과학에서도 합리적인 과학적 요소가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옛날 강호 술사 대부분은 경박한 선입관(고정관념)을 계승하였을 따름이었다. 각자 나름대로 꿍꿍이속이 있고 비슷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생계 수단을 영위하였다.
가난해 초라하게 된 거지들이 이러한 술법을 이용하여 구걸하는 것이 뭐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닐 터이다.
당대 단성식의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 1권 「지낙고상(支諾臯上)」의 기록을 보자.
“신비(辛秘)가 오경 시험에 합격한 후에 결혼하러 상주(常州)로 갔다. 일행이 섬서(陝西)에 도착하여 나무그늘에서 쉬었다. 부스럼 딱지가 붙은 얼굴에 서캐가 붙어있는 옷을 입고 옆에서 다리를 뻗고 앉아있던 거지가 신비에게 신부를 찾아가지 말라고 하였다.
신비가 참지 못하여 떠나자 거지도 따라갔다. 신비의 말이 힘이 없어 빨리 갈 수 없었다. 거지는 따라가면서 끊임없이 행차를 멈추라고 강권하였다.
앞에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자 신비가 읍하며 인사를 나누자 거지도 뒤따라 맞장구쳤다. 1리여를 가자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앞 말을 급히 몰아 달려갔다. 신비가 이상하게 여겨 저 사람이 왜 저러지 혼잣말을 하자 거지가 말했다.
‘저 사람이 시간이 됐는데 어찌 어찌 자유롭겠소?’
신비가 이상하다 여겨 처음으로 물었다.
‘그대가 시간이 됐다고 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거지가 답했다.
‘잠깐 있으면 스스로 알게 될 거요.’
상점에 다다르자 수십 명이 상점을 둘러싸고 있었다. 까닭을 물으니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였다.
신비가 크게 놀라 노비에게 말에서 내리라고 한 후 옷을 벗어 거지에게 주고 말을 태워주었다. 거지는 감사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거지는 자주 깊고 오묘한 이치가 있는 말을 하였다. 변경(汴京)에 도착하자 거지가 신비에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머물 것이오. 공께서는 무슨 일로 가시는 것입니까?’
신비가 약혼하러 간다고 말하자 거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공은 사인이시니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분은 공의 처가 아니오. 공이 결혼할 시기는 아직 멀었소.’
이튿날 술 한 잔을 권하고 신비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상국사(相國寺)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후에 불이 날 거외다. 여기 조금 있다가 나중에 떠나시오.’
오후가 되자 까닭 없이 사찰에 불이 나 상륜이 무너졌다.
거지가 떠나기 전에 가지고 다니다가 다른 때에 의문이 생기거들랑 풀어보라며 머리 묶는 비단 두건을 건네주었다.
20여 년이 지난 후 신비가 위남위(渭南尉)가 돼서야 배(裵) 씨와 결혼하였다. 배 씨 생일에 친척과 손님이 모였을 때 갑자기 예전에 거지의 말이 생각나서 두건을 풀었더니 손바닥 크기의 종이가 있었다. 글이 쓰여 있었다.
‘신비의 처는 하동 배 씨로 모월 모일 생이다.’
바로 그날이었다. 신비가 거지와 헤어진 날을 세어보니 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을 때였다. 봉영(蓬瀛)의 선비가 인간세상으로 쫓겨 내려왔단 말인가!”
이야기는 전기적인 색채가 너무 강하고 황당하다. 거지가 친 점이 영험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기록을 통해 점에 정통한 거지가 우대를 받았고 특별히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