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향촌사회 행정구역 명칭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예전에 달랐습니다. 그 뜻이 태동하게 된 배경은 성(城)으로 둘러싸여 백성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제주면이 제주읍으로 승격될 때와 같이 행정구역상 명칭인 읍과는 동일한 단어를 쓰지만 그 의미가 다릅니다. 정의읍성, 대정읍성도 같은 의미지요.
일반적으로 큰 도읍의 성을 도성(예, 한양도성)이라고 하는데 제주읍성의 지도 중 하나인(위 사진) '제주목도성지도'에서도 '도성지도'라 했고,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에도 역시 '제주도성'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제주읍성이 그만큼 지역적으로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합니다. 따라서 이왕이면 제주도성으로 칭하는게 맞다고 생각해봅니다만 일반적인 명칭인 제주읍성 또는 제주성으로 해서 포스팅을 이어가겠습니다.
위 그림에서 보듯 제주성은 1914년도까지만 해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현단 일대에 복원한 구간과 잔존구간 약 100m 정도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1910년에 일제가 전국에 읍성 철폐령을 내린 이후 1914년부터 훼철되기 시작하고 1920년대에 제주항 건설에 성곽의 돌들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잘 안쓰지만 1970년대까지만해도 제주에선 '성안 간다', '성안 사람' 등 '성안' 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그 성안이 바로 제주성 안쪽 지역을 일컬었던 것이죠.
그리고 서문밖에 북쪽으로 붙은 동네를 '무근성(묵은성)'이라고 부릅니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제주성이 지어지기 전 5~6세기 경에 탐라국의 옛성이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현재는 성곽이 있던자리에 대부분 도로가 나 있으며, 성곽 안쪽에 나있던 샛길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면서 탐방코스를 만들어 봤습니다.
서문ㅡ서문한질ㅡ서불막골ㅡ이앗골ㅡ두목골ㅡ검정목골ㅡ동문한질ㅡ동목골ㅡ칠성골ㅡ관덕정앞 ㅡ서문한질 로 이어지는 순환로와 남문에서 관덕정까지 이어진 한짓골이 주요 길이었습니다.
위 그림에서 추측할 수 있는 건 제주에 온 유배객이나 관리들 일반 백성들 모두 동문을 지나 칠성골(지금의 칠성로)을 거쳐 제주목 관아를 갔을 것입니다.
정말 유서가 깊은 길이죠.
주요도로에서 각 동네와 집들을 연결했던 길입니다. 이 길들이 원래 올레라 불리던 길입니다. 지금도 이 길들이 90% 이상 남아 있어 다행입니다.
이 중 관덕정과 동문으로 이어지는 칠성골과 또다른 길인 구명골은 왕래가 빈번한 길이었습니다. 현재 칠성골에 칠성로 상가가 형성되어 있고, 구명골 역시 길을 따라 동문재래시장이 들어서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죠.
일제가 관덕정에서 동문으로 향하는 신작로를 만들기 전에는 이 두 길이 성안에서 아주 중요한 길이었다는 방증입니다.
제가 명칭을 붙여 보았는데 원래 성곽이 있던 자리가 길이 된 곳은 성곽터 길이라 명하고, 이 성곽터 길과 성곽 안쪽을 따라 원래 있던 샛길(서문샛질, 남문샛질), 그리고 성벽을 따라 비교적 최근에 새로난 길을 합쳐 성곽길(즉, 성곽길=성곽터길+샛길+신설된 길)이라고 해보았습니다. 저의 글에서는 성곽길이라는 용어로 하겠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성곽길을 '성굽길'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원희룡 지사가 참석한 성굽길 걷기행사 등이 진행되기도 했구요. 정식 명칭화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원래 성굽길의 뜻은 '성이 굽어 돌아가는 모서리에 있는 길'입니다. 후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동, 서, 남문 모두 성문 앞에 성굽길이 있었으며 현재 동문터와 서문터에 성굽길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성곽길이 맞는 표현이지 성곽길 전체를 성굽길로 쓰는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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