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김승욱의 ‘제주역사나들이’입니다. 제주의 역사는 사실 문헌으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기록이 전해져 오지 않거나 대부분 소실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걸어온 흔적, 사람이 살고 있는 문화유산에 역사는 더듬어 볼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제주역사나들이’는 답사기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며, 다시 반추하는 과정을 거친 결과물입니다. 필자는 향토사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건축 전문가로서, 문명사적 탐구자로서 제주의 길과 유적, 유물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 제주가 걸어온 과거와 지금의 제주를 통해 가야될 우리의 미래를 가늠합니다.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읍’은 조선조 제주의 중심입니다. 지금은 ‘원도심’으로 불리지만 우리 말로 바꾸면 ‘옛도심’이란 말이 더 나을 듯도 합니다. '제주역사 나들이‘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발걸음을 뗍니다.
제주시 원도심(제주읍)은 근현대의 제주읍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비록 신제주 개발등 도시의 확장에 따라 신도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 역사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주의 옛길은 새 도로의 개설과 확장에도 불구하고 90% 이상 남아있습니다.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됩니다. 이 길을 통해서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제주 원도심 활성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국적으로도 제주시처럼 원도심 전체 옛길이 살아 있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제주원도심이 가지고 있는 옛길은 엄청난 문화·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탐라문화광장 조성의 사례에서 보듯 사려 깊지 못한(?) 무분별한 원도심개발은 오히려 문제를 더 낳습니다. 소중한 옛길들과 역사적 흔적들을 단시간에 없애버리는 우(愚)를 다시는 범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제주원도심의 역사나들이는 옛길을 따라갑니다. 우선 전체적인 소개부터 들어갑니다.
■제주면(제주읍)
독립국가였던 탐라국은 1105년 고려에 복속이 됩니다. 제주(濟州)라는 이름은 1211년 고려 희종때 탐라현(耽羅縣)을 물 건너에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로 제주(건널 濟 고을 州)로 명명하였습니다. 바다 건너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이지요.
그 후 몽골의 침략으로 삼별초의 난이 정벌된 이후(1273년) 원나라는 자기네 영토로 복속시키면서 탐라총관부를 두어 명칭을 제주에서 탐라로 다시 바꿨습니다. 그리곤 목호(牧胡·군마관리인)들을 두어 말생산기지로 활용합니다.
그 후 1294년 고려에서 탐라에 대한 소유권을 제기하여 제주라는 명칭을 회복합니다. 형식상 다시 고려에 환원되기는 하나 명분상 일 뿐 100여년간 원나라의 실질적 지배를 받습니다. 후에 목호의 난(1374년)에 의해 원나라의 세력은 완전히 사라지고 비로소 고려로 실질적인 환속이 됩니다.
1416년(태종 16년)에 한라산을 경계로 북쪽에 제주목(牧)을 두어 목사를 파견하고, 남쪽을 두군데로 나누어 대정현과 정의현을 두고 현감을 파견합니다.
세월은 흘러흘러 1896년에 전라남도 소속의 제주군, 정의군, 대정군이었다가 1914년 군·면폐합 때 정의군과 대정군, 완도군 추자면이 제주군으로 병합되고 1915년 도제(島制) 실시 후에 제주도(濟州島)라 했으며 1931년 제주면이 제주읍으로 승격이 됩니다.
1946년 도제(道制) 실시로 제주도(濟州島)가 제주도(濟州道)로 변경되어 전라남도 관할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1955년 9월 제주읍이 제주시로 승격이 됩니다. 오늘은 우선 이 정도로 운을 뗍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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