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중소기업 육성자금 지원 정책은 기업이 아닌 은행을 위한 것이었다. 취급은행들이 일반대출보다 비싼 이자를 챙겨 결국 혈세로 은행들의 주머니만 불려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은행들의 '꼼수'에 놀아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제주도는 올해 5천억원 범위 내에서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제주도와 행정시가 은행 대출을 알선해 주고 이자 차액을 취급 금융기관에 보전해주는 정책이다.
중소기업 경영안정 지원자금의 경우 업종별로 2천만원~4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2년 후 일시상환 조건으로 1회에 한해 2년 연장이 가능하다.
지원대상 업체로 결정되면 추천서를 갖고 대출취급 은행에 가서 대출심사를 받아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이 결정되면 행정기관에서 대출이자 중 2.8~3.5% 몫을 지원해 준다.
제주도는 올해 자금 지원계획 공고를 통해 담보별 최고대출금리를 보증서와 부동산 담보대출은 각각 6.45%, 6.95% 이하, 신용대출은 은행 자율금리라고 안내하고 있다.
보증서 담보대출 이자는 일반기업은 최고 3.65%, 우대기업은 2.95%만 부담하면 된다. 행정기관이 각각 이자 차액인 2.8%, 3.5%를 보전해 주기 때문이다.
부동산 담보대출 역시 이차보전 금리를 뺀 일반기업은 최고 4.15%, 우대기업은 3.45%의 이자를 물면 된다.
신용대출은 일반 기업과 우대 기업은 각각 은행 금리에서 2.8%와 3.5%를 차감한 금리를 적용한다.
제주도와 행정시가 공고한 내용대로 대출이 이뤄진다면 기업은 시중 금리보다 싼 이자로 융자를 받고, 은행도 이자 차액을 보전받으니 손해 볼 게 없다. 제주도는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어 칭찬받을 일이다.
과연 그럴까?
<제이누리>가 중소기업 육성자금을 주로 취급하는 농협과 제주은행 등 시중은행의 일반기업 대출금리를 파악해 보니 공고와는 다른 대출금리가 적용되고 있었다.
농협은행(옛 농협중앙회)과 지역농협, 제주은행 등 시중은행의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는 평균 5% 대.
하지만 중소기업 육성자금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는 최고 6.95%를 적용해 행정기관에게서 2.8%~3.5% 이차 보전을 받고 신청인에게서 3.45%~4.15%의 최고 한도의 이자를 받고 있다.
결국 은행이 일반 담보대출 이자보다 최소 1% 이상의 이자를 더 챙기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와 행정시는 올해도 지난해와 똑같은 최고대출금리를 공고하고 있다.
시중 은행의 금리를 제대로 파악도 하지 않은 채 은행에서 당초 정한 금리에 따라 적용, 은행만 배불리고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꼴이 된 것이다.
자금 수요자의 이차 보전 혜택도 고작 1% 정도 덜 내는 것으로 정책 수혜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담보대출 금리의 경우 평균 5% 수준인 것은 맞다"며 "담보대출도 신용등급이나 거래실적에 따라 적용 금리가 다르지만 6% 초반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일반 대출보다 중소기업 육성자금 대출로 더 많은 이자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환 기간(2년) 동안 변동금리가 아닌 고정금리를 적용하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하는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시중은행에서 대출 시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경우 0.3~0.5% 수준의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이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실에 맞게 자금 수요자가 부담하는 이자율을 내리던가, 아니면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이차보전율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제주도가 중소기업 육성 자금 이차 보전액은 205억원에 달한다.
결국 도내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으로 고통을 겪는 와중에 매년 수십억원이 헛되게 은행 금고에 들어가 은행들만 배를 불리게 한 꼴이 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진 은행들의 이익 일부를 환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제주도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26일 이에 대해 "취급 은행과 금리 협정을 맺고 몇 년간 똑 같은 최고 대출 금리 한도를 정하다 보니 탄력적으로 조정하지 못한 것 같다"며 "실태를 파악해 한국은행, 신용보증재단, 취급은행과 이 문제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