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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세평] 구성지 의장의 정치프레임 읽기 ... 갈등론 벗어나야 해법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이 출구를 닫아버린 것 같아 걱정이다. 

 

옥쇄(玉碎)라도 하려는 것인지 퇴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행보가 아쉽다 못해 걱정이다. 도정을 보는 시각을 좁히더니 스스로를 코너에 몰고 있는 느낌이어서 정말 걱정이다.

구 의장은 15일 제주도의 도의회 사무처장 인사에 대한 수용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지방자치법 위반은 물론 "인사횡포를 자행했다" 며 분노를 표시했다.

이 말대로라면 도의 일방통행식 의사소통이 문제라는 정당한 비판쯤으로 들어볼 만 했다. 이유있는 항변이라는 생각도 들만했다. 2시간후 제주도로부터 반박 성명이 나오기까지다.

 

도의 반박성명은 인사 협의차 도 의회를 방문했지만 구 의장이 수용하지 않았다는 요지다. 여기까지는 도나 의회의 설명이 일치한다.

 

그런데 도가 공개한 다음 내용은 뜻밖이다. 현 도의회 사무처장을 제주도 기획조정실장으로 이동시키거나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면 유임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도의 입장이라는 점에서 구 의장이 발표한 내용과 다소 다를 수 있다. 사실의 진위 여부와 별도로 기획조정실장으로 보내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굳이 '인사전쟁'이라 부를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칫 '인사개입'의 의도라는 우려를 불러일으킬만하다.

지난해 박영부 기획조정실장이 예산문제 해결을 위해 의회를 상대로 '돌격대장'(?) 역할을 했었다는 점에 비춰 '기조실장' 자리를 요청했다는 대목은 의아심을 불러 일으킨다. 의회에 협조적인 기획실장을 세우고 싶어한 의도로 비춰진다. 자존심이나 의회를 무시한 부분에 대한 반발 이상의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느껴진다.

구 의장은 그동안의 '예산전쟁'으로 서운함이 많이 쌓여 있을 수 있다. '협치예산' 제안이 거부됐고, 20억 재량사업비 문제로 곤욕을 치렀으며, 예산부결 사태는 물론 행자부로부터 예산삭감과 관련, '진상조사'라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날 구 의장의 기자회견문에는 이같은 서운함이 그대로 묻어 났다.

 

"의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 아닐 수 없으며 얼마나 의회를 무시했으면 그럴 수 있는지 말문이 막힌다"거나 "도지사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거나 "원 도정이 정말 개탄스럽다"는 문구에서는 정치적 표현 이상의 감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사문제에 대한 감정적 대응과 법적 검토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움이 있다. 도의회 의장으로서 현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다는 인상이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일련의 상황을 도와 의회와의 갈등으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개념으로 돌아가보자 .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는 칡과 등나무를 뜻한다.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지만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래서 서로 만나면 꼬이면서 풀기 어려워진다. 갈등의 어원은 여기서 유래됐다.

자칫 제주의 도정과 의회의 현상을 칡과 등나무로 보기 쉽다. 예전은 어쩐지 몰라도 지금은 그 프레임에 갇히면 안된다. 자승자박의 패를 두는 셈이다.

칡과 등나무는 함께 놔두면 서로 얼키고 섥혀 결코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이 경우 실타래를 풀듯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칡과 등나무를 베어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으면 된다.

제주도정은 지금 다른 나무를 심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넝쿨을 풀기보다는 수종을 바꾸고 싶어한다. 그런데 구 의장은 계속 칡과 등나무 넝쿨이 감아오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본인의 역할을 이를 푸는 일이라고 규정하는 듯 싶다. 한쪽에서 나무를 베려하는데 넝쿨을 풀려하는 셈이다.

원 지사는 긴 호흡의 전쟁을 준비중인 것 같다. 그것도 장기전으로 말이다. 긴 여정의 수많은 전투를 준비하며 ‘원칙’을 모토로 의회와 예산갈등을 벌였다.

무엇때문일까?  긴 전쟁의 보급로 확보차원에서 벌인 일이다. 전쟁중에 보급로의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급로의 안정적 유지 측면에서 예산문제가 위치한다. 보급로가 확보 안되면 어떤 전투에서도 이길 수 없다.

‘원칙’을 통해 보급로를 확보한 후 원 지사는 장수들을 솎아내며 전투형 조직으로 도의 개편을 서둘렀다. "나를 따르라"는 돌격명령을 내렸을 때 누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돌격대 역할을 할런지 6개월간 '간'(?)을 봤다. 이제 각 분야별 실무 지휘관을 선발했다.

정기인사는 공무원 자신들이 한해 동안 지은 자신들만의 농사를 평가받는 자리지만 지사가 올 한해를 어떻게 살겠다는 포부를 가늠하는 밑그림이기도 하다.

원 지사가 선택한 지금까지의 상황은 한마디로 '정상화'다. 공교롭게도 '혁신'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내용의 핵심은 ‘비정상의 정상화’다. 예산에서 인사로 그리고 이제 조직의 활력 부여와 ‘협치’라는 자신의 구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막 출격명령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구 의장의 선택이 감정적이어선 곤란하다. 제주도정과의 관계설정을 '도와 의회의 갈등'이라는 프레임으로 가두는 시도는 전략적 미스다. 참으로 안타까움 마음이 든다.

수많은 사안들이 있지만 원 지사는 중국문제를 아주 중요한 화두로 세웠다. 중국과 관련된 사안들이 올해 가장 주요한 '키포인트'가 될 것임을 연초부터 강하게 어필했다. 그리고 전 조직을 돌격형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메시지도 그 못지 않게 강했다.

이 와중에 의회 의장이 보인 행보는 혁신을 내건 도정의 뒷다리를 잡는 모양새다. 비정상적인 제주도를 정상화 시키려 한다는 모토에 비정상을 고집하는 구시대의 상징으로 인식될 소지가 높다.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이미 예산문제에서  ‘원칙’이라는 명분 때문에 한차례 쓴 맛을 본 상황에서 또 다시 ‘인사개입’과 ‘혁신거부’라는 불명예인 자충수를 스스로 두는 과정이 낯설기 까지 하다.

지금은 도정의 인사에 가시 돋힌 말을 내뱉으며 '적의'를 드러낼 때가 아니다. 그래서 의회 위상이 바로서지 않는다. 스스로 퇴로를 닫아가며 자존심을 세우기보다 도정과의 전략적 공조와 경쟁의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구성지 의장의 현명과 슬기가 이제 발휘될 때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할 분은 아닐 것으로 안다. [제이누리=이재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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