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지사가 의회와의 협상 대신 '비상체제 도정운영'을 선언했다. 새해 예산에 대한 무더기 삭감에 대해 원칙과 명분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선택했다.
원희룡 지사는 30일 오후 '내년도 예산안 삭감에 따른 담화문'을 발표하고 전날 밤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새해예산에 대해 "대비책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도록 비상체제로 도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사상 초유의 금액이 삭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타당성이 없는 무더기 예산 증액관행이 유독 제주에서만 계속되는 것을 바꾸고,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 것인지 곤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예산처리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원 지사는 이어 "도지사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 없는 행정과 민생의 버팀목이자, 목민관이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담담한 마음으로 이 사태에 대처하고자 한다"며 원칙을 훼손한 타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신 원 지사는 "행정기관의 경상 운영경비를 삭감했기 때문에 도정의 정상적인 행정업무 추진에도 막대한 지장이 빚어질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먼저 행정이 더 경비를 절감하고 기존 관행을 타파해 나가겠다. 도민의 혈세를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만 쓰도록, 뼈를 깎는 행정의 예산 개혁 계기로 삼아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도와 의회와의 문제 때문에 시민과 지역경제가 볼모가 될 수는 없다"며 "민생과 직결된 예산, 지역경제의 종잣돈이 되는 예산, 법령과 조례에 지출 의무가 정해진 예산까지 희생돼서는 안된다"고 밝혀 예산삭감이 민생에 반하는 행위이자 그 책임이 도의회에 있음을 지적했다.
제주도의회는 29일 밤 11시 제325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를 개회, 2015년 제주 도예산을 가결 처리했다.
도 예산안 3조8194억원 중 4.4%에 달하는 1682억원을 삭감, 역대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예결특위가 처음 삭감한 408억원보다 무려 4배를 넘는 규모다.
도는 30일 오전 원희룡 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실국장과 주무과장 등과 함께 긴급비상회의를 갖고 삭감된 새해예산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도가 '재의' 요구를 할 경우 예상되는 도 의회와의 재협상 여지 대신 원칙을 고수하는 비상체제를 택함으로써 새해들어 도의회는 도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게 됐다. [제이누리=이재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