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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시평세평(8) ... 말도 안되는 논쟁에 애꿎은 건 도민

 

‘재의냐 추경이냐 (... 이것이 문제로다)’

 

기자가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면 십중팔구는 품질이 나쁜 기사일 가능성이 높다.

 

‘소유냐 존재냐’의 구도 위에 현재의 사안(事案)을 덧씌워서 핵심 쟁점이 마치 존엄의 우열을 따지기 어려운 두 개의 지향인 것처럼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어느 편의 오류도 정공할 배짱은 없으니까 대중의 명확한 판단을 흐리게 해서라도 미디어의 영향력은 유지하고 싶은 경우일 것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말이라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같으면 그건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이런 대중의 급소를 노린다.

 

제주자치도가 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국비보조사업의 도비 부담금은 물론, 필수경비인 공공운영비를 망라한 무차별 삭감으로 도정이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원희룡 도지사는 재의를 요구하겠다고 하고, 구성지 의장은 추경안을 제출하라고 공을 미루는데, 애꿎은 도민은 맞받아칠 상대가 누군지를 모르겠다.

 

도내에 십 수개가 넘는 언론은 공을 치고받는 정선아리랑만 제주판으로 표절하여 중계할 뿐, 둘 중 어느 한쪽의 반칙은 지적을 못한다. 무섭거나 재미있거나 모르거나 성가시거나...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 치는데 우리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근래에 돌이켜보니 언론은 도민에게 주로 논쟁의 가십거리만 제공해왔다. 그래서 도민은 어디서 들은 것 같지만 사실은 들은 게 없고, 아는 것 같지만 아는 게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도민이 이렇게 무지의 함정 속으로 빠지는 이유는 바로 관계집단이 자신들의 책임이나 입증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핵심 쟁점과 내용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있지만, 이를 헤아려보지 않고 오히려 조장하는 언론의 책임도 이에 못지않게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번 파국의 단초가 되었던 지역구 의원의 민원 해소용 예산 챙기기에 대해서도 도내 언론은 ‘20억 요구설’ 운운하며 마치 ‘마약 장수와 인천항 제3부두’를 연상케 하는 이간질을 조장한 게 사실이다. 내가 만난 어떤 시민은 처음에 이 말을 듣고, 구성지 의장이 예산안 통과를 대가로 20억 원을 요구한 걸로 오해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 과연 ‘재의냐 추경이냐’가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맥락일까?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몰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입방아를 찧어 봐야겠다.

 

에리히 프롬은 그 어려운 ‘소유냐 존재냐’도 풀어서 삶의 방향을 못 찾아 헤매는 인류에게 존재 지향적으로 살라고 타일렀는데, 이깟 법대로 물정대로 조금만 들여다보면 보일 것 같은 ‘재의냐 추경이냐’ 쯤이야 뭐 그리 어렵겠는가.

 

# 우선 법을 들여다 보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 도의 입장]
❍ 지방자치법 제107조
도지사는 의회의 의결이 월권이거나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되면 그 의결사항을 이송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고, 재의결된 사항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인정되면 대법원에 소(訴)를 제기할 수 있다.
❍ 지방자치법 제108조
도지사는 의회의 의결이 예산상 집행할 수 없는 경비를 포함하고 있다고 인정되면 그 의결사항을 이송 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고, 법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부담하여야 할 경비를 줄이는 의결을 할 때에도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추경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경우: 의회의 입장]
❍ 지방재정법 제45조
도지사는 이미 성립된 예산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추가경정예산(追加更正豫算)을 편성할 수 있다.

 

 

# 그간의 정황(政況)을 되돌아보면

 

이번 예산 파행의 발단은 ‘예산 협치’를 내건 의회와 ‘예산개혁의 원년’을 내건 도의 기(氣) 싸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그렇지 않은 바에야 의회가 관계법령을 어기면서까지 예산을 삭감하는 무리수를 자초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심스럽지만 관계법령에 어긋나는지의 여부는 중앙정부에서 재정운영실태조사단을 파견하였으므로 머지않아 판가름이 날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개연성이 상당하다는 전제하에서 얘기를 하는 것이 비교적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구성지 의장은 새해 예산안 심사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던 지난해 말, 지역 원로와의 대화에서 2015년도 예산안을 연내에 통과시키겠다고 말하고 회기를 연장하면서까지 심의 의결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산의 불성립보다 더 가혹한 무차별 삭감이었다. 일면 대외적으로는 예산불성립에 따른 질타에서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도민들은 현재의 ‘재의냐 추경이냐’ 정국을 의회가 초래했다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세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원희룡 도지사의 병법에 참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번 예산 파행이 오로지 구성지 의장만의 책임이라고 말하기에는 의결 과정이 여간 석연치가 않다. 2015년도 예산안은 도의회 재적의원 41명 중 37명이 출석하여 36명이 찬성하고 1명이 기권하였다. 반대표는 단 한 표도 없이 의결 요건인 과반수를 훨씬 웃도는 현저한 표 차이로 의결되었다.

 

다수결의 원리는 다수의 의사로써 결정된 것에 대하여 소수가 동의하여 이를 전체의 의사로 인정하는 것인데, 당시 회의장 안에 ‘재의냐 추경이냐’를 예견한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까닭이다. 없었던 것일까? 침묵한 것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한 가지 의견이라 하더라도 인류가 이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은, 이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질 때 그가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다수결은 소수가 다수의 의사를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고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때에만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 질 수 있다. 반대로 합리적인 소수의 의견이 배척당하고 잘못된 다수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것은 다수의 횡포이거나 중우정치(衆愚政治)에 다름 아니다.

 

늦게나마 강경식 의원과 위성곤 의원의 뼈저린 석고대죄에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나와 다수의 의견에는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라고 다수를 등에 업은 구성지 의장이 더욱 측은해지는 것이다.

 

# 그렇다면 재의냐 추경이냐

 

도내의 언론은 하나같이 ‘양측의 합의’ 또는 ‘도민의 선택’을 거론하고, 공무원 노조는 제2의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추경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경식 의원도 사과 기고문에서 조속한 추경을 바란다고 했다. 과연 이 사안이 양측이 합의하거나 도민이 선택하거나 할 문제인가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우선 법리적으로 볼 때 추경은 이미 성립된 예산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인데, 여기서 변경할 필요라고 함은 예산이 성립된 후에 예견하지 못 했던 일로 사정이 변경되었을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예산안의 의결 결과가 법률적 하자인 경우에 추경으로 돌파하자는 주장은, 서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니 당초부터 의도한 오류를 제도라는 위장막으로 덮어두고 가자는 것이다. 개인 간의 흥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얘기다. 일부언론에서 원희룡 도지사가 중앙정부와 짜고 원군을 요청했다는 의혹은, 앞서 말한 언론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도지사로서는 의결된 예산의 적법 여부를 권한 있는 중앙정부의 판단에 의존함으로써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함과 아울러 의회와의 직접적인 대결 양상도 피할 수 있으려니와, 중앙정부 입장에서 보면 국비를 지원하는 범위 내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독권한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이제 합리성이나 실리(實利) 면에서 살펴보더라도 추경이 재의보다 조속하고 원만한 해결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 의회가 예산안을 원래대로 재의결하고 도가 대법원에 소(訴)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지 않고 의회가 원래 도가 제출했던 예산안에 적절한 증감을 하여 의결한다면 어느 방안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다. 의회의 주장대로 도가 추경예산안을 편성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의 입장에서는 당초 예산안 중에 극히 일부의 문제 소지가 있는 항목만 수정하여 제출할 수밖에 없고, 의회도 두 번 다시 무차별 삭감하는 오류를 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제2의 갈등을 우려하는 공무원 노조의 입장도 조속한 안정을 바라는 충심은 이해가 가지만 추경이 재의보다 갈등 해소에 더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공감이 가질 않는다. 추경을 하면 외견상 양측의 갈등이 해소된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멀게 보면 의회의 전횡을 용인하는 사례로 남게 됨은 물론, 도의 묵시적인 대의가 의회의 오류를 가려주었다는 걸 모르는 도민은 없을 것이다. 도민은 그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구성지 의장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대놓고 사과를 할 수도 없고 재의를 수용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때쯤 언론이 구성지 의장이 최소한 유감 표명 정도라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면 어떨까? 지금까지 앵무새처럼 의장의 인터뷰와 보도자료만 분석 없이 전달해왔는데, 모처럼 도내 최고의 현역 정치인이 정치적 용단을 내릴 수 있도록 무딘 펜끝을 갈아보았으면 좋겠다. 너무 구석으로 몰고 가지는 말고... 

 

☞김성민은?

 

=탐독가, 수필가다. 북제주군청에서 공직에 입문, 제주도청 항만과 해양수산 분야에서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엔 중앙일보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주관한 제26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전력도 있다. 그해 12월엔 제주도에 의해 행정부문 ‘제주를 빛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월간 한맥문학사의 ‘한맥문학’에 의해 수필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한 수필가다. 공직을 퇴직한 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깊은 독서의 매력에 흠뻑 젖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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