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은 연디(연대)
고성 북쪽 성뒷길을 지나 수산방향으로 향한다. 양옆으로 나즈막한 돌담이 쌓인 좁은 길이다. 바닥만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여간 호사가 아니다. 걷는자 만의 특권이다. 들려오는 휘파람 새소리는 보너스다.
묵은 연디(연대)도 주인과 운명을 같이 했다. 고성이 폐성된 이후 이 연대도 버려져 600년의 세월을 견뎌 왔다. 고성이 버려지기 전 지미봉수와 대수산봉수(큰물뫼오름봉수)와 연계하여 신호를 받아 옛 정의현감에게 알리던 연대라고 한다.
그 긴 세월동안 아직도 남아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고 보존이 시급해 보인다.
제주도내 훼손되어 사라진 봉수나 연대도 원형과 상관없이 버젓이 새로 쌓는 판국에 600년된 연대가 돌봐주는 이 없이 스스로 아직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오조리에선 '외상사절'이라는 잊혀진 문구가 보이더니 수산리 어귀에선 '개조심'문구가 반긴다. 개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보단 글귀가 반가운 마음애 폰카메라를 얼른 대보았다.
■수산리(水山里)
수산(水山)이 수산(首山)이라는 지명으로 표기된 기록들이 있다. 수산이라는 명칭은 고성리에 소재한 대수산봉(大水山峰) 즉 '큰물뫼오름' 명칭에서 알수있 듯 물뫼마을 즉 수산촌(水山村)에서 유래한다.
수산(首山)이라는 표기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의 '탐라지1653년)', '남사일록(1680년)', '탐라순력도(1702년)'에만 나타나 있고, 그 이전의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 과 그 이후의 '증보탐라지 (1766년)'에는 다시 수산(水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즉 17세기를 전후로 약 100년 정도만 수산(首山)으로 표기한 것이다.
예전엔 수산평(水山平)이라고 불릴 정도로 용암이 빚은 광활한 초지가 펼쳐져 있어 말을 키우기에 좋은 여건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수산리 서쪽 일대엔 수산뱅듸의 너른 벌판과 마소에 물을 먹이던 한못이 남아 있다.
인근 온평리에 제2공항이 들어선다면 이 곳의 풍광은 더 이상 제주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개발의 논리는 이해 당사자들의 첨예한 대립속에서 항상 이겨왔다. 그래서 불안하다. 이해 당사자 모두 자기들의 합당한 논리가 있겠지만 제주를 제주답게 남겨두면 안되는 것인가. 득보다 실이 많은게 제2공항 건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수산진성
제주의 9개 진(화북진, 별방진, 수산진 등)중의 하나이다.
"1493년(세종 21)에 도안무사(都按撫使) 한승순(韓承舜)이 축조하였는데, 당시 성의 둘레는 3,841m이고 높이는 53m라고 전해진다. 서쪽의 차귀성과 함께 동쪽에서 침입해 오는 왜구를 막기 위한 성으로, 다른 '진성'들이 해안가에 있는 것과는 달리 중산간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현존하는 성의 둘레는 352.72m(1164척)이고 높이는 4.84m(16척)이다. 성 안에는 해방 직전까지 병사와 객사, 민가들이 있었으나 제주 4.3사건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다. 동쪽 성벽과 북쪽 성벽이 만나는 지점에는 폭 6.1m, 담 높이 2m 규모의 ‘진안할망당’ 이 있는데, 이곳은 성을 축조할 때 공출을 내지 못한 부모 대신 희생된 아기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성의 원형과 유구 등이 잘 남아 있어 보존상태가 좋고, 축조 방식과 평면 형태가 특이하여 2005년 10월 5일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수산진성 [水山鎭城] (두산백과)
수산진성의 성곽은 지금 수산초등학교 담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수산초 학생들은 유서가 깊은 역사적 공간 안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수산초 교정은 아담하면서도 잘 단정되어 있다. 도시의 학교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좋은 환경이다.
수산초등학교는 1946년에 개교하였다.
1993년 제주도지 1권의 자료를 보면 제주도에서 가장 일찍 설립된 학교는 제주북초등학교의 전신인 제주 보통학교이다.(1907년 5월 19일 개교)
정의보통공립학교는 수산진이었던 이곳에서 1909년에 설립되었다. 수산초등학교가 이 자리에서 1946년에 개교하였다면 전신을 정의보통공립학교로 보야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제주북초등학교와 함께 도내 가장 오래된 학교중의 하나일텐데 말이다. 사연이 궁금하다. 수산초 출신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을까. 여담이다.
■빛의 벙커
빛의 벙커는 제주커피박물관 바움 경내에 있는 관람시설이다.
이곳은 원래 한국통신(KT의 전신)의 광케이블관련 시설이었다. 1980년대 말에 제주에서 전남 고흥,해남과 연결된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가'급의 국가 주요시설이었다. 시설이 폐쇄된 후 개인에게 매각하여 관리동은 커피박물관으로 운용되고 있고 벙커시설은 최근 빛예술을 주제로한 관람시설로 변모하였다.
콘크리트 벽두께가 3m이고 지붕은 1m슬라브가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그 위에 흙을 덮어 나무를 심어 놓았다. 실내규모가 900평이라고 하니 엄청난 벙커시설이다.
제주에서 이런 시설의 존재하였다는 것이 놀랍다.
광고가 아니니 오해 않기를 바란다.
발걸음을 옮겨 출발지인 무근장터거리로 향하는 길에 다시 마주하는 고성리의 옛 길은 역시 정겹다.
군데군데 아직 지지않고 싱싱한 동백꽃이 걸음을 가볍게한다. 동백은 겨울꽃이기도 하지만 봄꽃이기도 한 것 같다.
고성리는 제주의 전형적인 고즈넉한 마을 안길을 품고 있지만 일주도로변으로는 도시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옛것들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도 간절하다.
제주도 전체가 그렇듯 옛날과 현재, 그리고 미래가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아름다운 자연 환경속에 공존하는 고성리이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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