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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의 [제주역사나들이](43) ... 10차 시흥리 탐방코스 (1)

 

"시흥리의 송난포구에서 출발하여 말산메와 두산봉, 시흥리 마을 안길을 둘러보는 코스입니다."

 

■송난포구

 

 

시흥리 동쪽에 돌출된 송난코지에 위치한 포구이다. 송나라 때 오랑캐의 침입을 받아 송란이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역사적 고증은 없지만 주변에서 많은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수심이 얕은 모래펄 지형이라 포구를 만들기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수심을 확보할 수 있는 코지(곶)에 돌을 날라 포구를 만들었다. 주변지형이 온통 모래 뿐이니 포구를 만들 때 그 수고로움이 제주의 다른 동네보다 훨씬 더 많았음을 짐작해본다. 변변한 장비도 없던 그 옛날 돌의 운반에도 고충이 많았겠지만, 얕은 수심때문에 바닥의 모래를 퍼서 필요한 수심을 확보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흥리 사람들은 소중한 포구를 어렵사리 얻었다.

 

 

옛날 포구 밖으로 바다로 길게 이어져 작은 섬을 연결하는 새로 난 방파제가 발길을 이끈다. 지미봉과 우도, 일출봉이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 온다.

 

송난포구는 시흥리와 바다를 이어주던 유일한 포구이나 썰물 때는 바닥이 거의 드러나 배가 드나들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주변의 넓은 모래펄은 조개잡이도 가능하다.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포구 서편의 바다는 둘로 나뉘어져 도로 안쪽의 바다는 유수지가 되었다. 마을에선 이 유수지의 활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데, 좋은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길 바란다.

 

■ 호국영웅 강승우 중위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은 전쟁포로의 교환 문제로 휴전회담이 장기화되면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소모적인 국지전이 전개된다.

 

그 중 1952년 10월 6일 중공군의 총공세 속에서 15일까지 10일동안 주인이 7번이나 바뀐 백마고지의 전투는 치열하기로 유명하다.

 

고 강승우 중위는 시흥리 출신으로 6.25가 발발하자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고, 1951년 갑종간부 7기생으로 소위로 임관한다.

 

국군 제9사단 소속이었던 그는 6‧25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의 기관총 세례에 국군의 피해가 많이 발생하자 안영권 하사, 오규봉 하사와 함께 박격포탄, 수류탄 등을 들고 육탄으로 돌격해 적 기관총 진지 3곳을 격파하고 전사한다. 이 세사람은 백마 3군신으로 불리며 호국영웅로서 추앙받고 있다.

 

 

강승우 중위는 사후 1953년 7월 1일 금성 을지무공훈장과 일계급특진을 추서받았고, 1953년 5월3일 미국 은성훈장도 추서받았다. 1995년 4월에는 전쟁기념사업회의 ‘100인의 호국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4.3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발한 6.25는 우리민족의 비극이었다. 섬 청년 강승우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4.3의 광풍은 그도 피해갈 수 없었고 혼란의 시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판단의 여지는 혼돈 그 자체였을 것이다. 바다 건너 육지에서 들려오는 민족끼리의 전쟁 소식은 두살배기 어린 아들과 어여쁜 부인을 고향에 남겨둔 채 섬청년 강승우를 전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뛰어들게 했다.

 

수류탄과 박격포탄을 들고 적 기관총진지를 제압한다는건 바로 죽음이 예정된 일이다. 적의 기관총에 스러져가는 전우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강승우는 결국 그렇게 몸을 스스로 던져 젊은 생을 마감했다.

 

스물세살 제주섬 청년이 죽음을 각오할때 그의 마음속엔 사무치도록 그리운 아들과 아내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 흘렸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절로 숙연해진다.

 

 

참고로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선정한 6.25전쟁 호국 인물 100인 중 제주출신이 네 분 있는데 고태문 대위, 김문성 중위, 강승우 중위, 한규택 상병이 그 분들이다. 이 분들을 기리는 흉상이 제주시 신산공원에 건립되어 있다.

 

■시흥리 영등하르방

 

 

강승우 중위 기념비 바로 옆에 위치한다. 마을에 원인모를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이 석상을 세우니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의 위치에서 40미터정도 이동하여 재설치하면서 기단도 방사탑 형태로 높여 놓았다. 돌하르방과 유사한 형상을 하고 있으나 높이는 70cm정도로 아담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욱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오현고를 나와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육군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 주택부문에서 일했다. 경영위치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공부를 더 한 뒤 에이스케이 건축 대표이사를 거쳐 제주로 귀향, 현재 본향건축 대표를 맡고 있다. 제주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시공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향 제주의 벗들과 제주의 역사공부를 곁들여 돌담·밭담·자연의 숨결을 더듬고자 ‘역사나들이’ 기행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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