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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브이 포 벤데타 (1)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ㆍ2005)’는 제임스 맥테이그(Jaems McTeigue)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의 데뷔작이자 아직까지는 그의 인생작인 듯하다. 앨런 무어(Allan Moore)라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 만화를 그 유명한 워쇼스키 자매가 영화각본으로 재탄생시켰다. 제임스 맥테이그는 ‘매트릭스’ 시리즈에 조감독으로 참여해 워쇼스키 자매와 인연을 맺었다.

 

영화는 2005년에 제작됐지만 앨런 무어의 원작만화는 1988년도 작품이다. 당시는 소련이 해체(1989년) 되기 전으로, 세상은 여전히 핵전쟁의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영국에선 보수당 정권(마가렛 대처 수상)이 내세운 신자유주의와 극우 정치노선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디스토피아 작가들이 그려내는 미래상은 언제나 ‘현재’의 세상에서 그 암담한 미래상의 ‘조짐’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어쩌면 디스토피아 작가들은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가 말한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들인 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들은 항해를 떠날 때 항상 잠수함에 토끼 몇마리를 태웠다. 토끼가 사람들보다 ‘산소 부족’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승무원들은 멀쩡한데 토끼가 괴로워하거나 죽으면 잠수함은 반드시 물 밖으로 나와 산소를 공급했다. 안 그러면 그다음은 승조원들이 죽을 것이라 믿었으니 그래야만 했을 거다. 

이런 맥락에서 디스토피아 작가 앨런 무어는 ‘잠수함 속의 토끼’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서 ‘너희들은 못 느끼는 모양이지만 지금 이 잠수함은 산소가 점점 고갈돼가고 있다. 모두 빨리 탈출하라’고 경보음을 울린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영국이다.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파괴됐지만 영국은 지리적 특성으로 요행히 비교적 온전하게 살아남는다. 전 세계적인 위기 상황에서 영국에는 개인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철저하게 획일적인 질서와 국가 중심으로의 단합을 요구하는 극단적인 파시즘 정권이 수립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무찌르기 위해 국운을 걸었던 영국이 ‘가까운 미래’ 어느 시점에 가장 극단적인 파시즘 국가가 돼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일상은 풍요롭고 질서 있고 평온하다. 그러나 국민들의 눈과 귀는 가려지고 모든 개인의 자유는 철저하게 통제된다. 정작 많은 사람은 자신들의 눈과 귀가 국가 권력에 의해 가려지고 자신들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나라의 번영과 평온한 일상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알 권리나 자유쯤은 얼마든지 유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과 자유란 질서와 조화를 깨는 위험한 것일 뿐이다.

전쟁과 기근, 그리고 극단적인 통제로 점철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그려내는 디스토피아 작가들은 어쩌면 ‘거짓 예언자’들일지도 모르겠다.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인공부화된 인간들이 획일적인 가치관과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1932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그렸던 끔찍한 미래는 적어도 아직까진 실현되지 않았다. 1949년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그려냈던 「1984」도 질식할 것 같은 미래의 지나친 악담 수준에서 끝났다. 

그렇다면 이들이 모두 단순히 거짓 예언자이거나 거짓말쟁이들일까. 이들의 ‘미래가 보내는 경고’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쯤 그들이 그렸던 암울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1988년에 앨런 무어가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경고하지 않았다면 당시 영국의 극우적 보수정권이 더더욱 강화됐을 수도 있다. 핵전쟁 이후 폐허가 된 지구의 모습을 그린 수많은 ‘거짓’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벌써 핵전쟁을 경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원작자 앨런 무어는 주인공 V의 입을 통해 자신의 역할이 ‘디스토피아적 예언자’라는 걸 밝힌다. “정치인은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을 동원하고, 예술가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거짓을 동원한다.”

2022년 오늘 우리가 이대로 살아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어떤 ‘디스토피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의 정치인들은 그 ‘진실’을 덮기 위해 지금 어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앨런 무어는 ‘거짓말이 가능한 건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22년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지금 믿고 싶어 하는 거짓말이나 믿고 있는 거짓말들은 어떤 것들일까. 우리가 내일을 위해 V처럼 용기 있게 들춰내야 할 감춰진 진실들은 무엇일까. 우리 잠수함 속의 토끼들이 괴로워하거나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저항을 위한 저항이나 관종의 목소리가 아니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목소리(voice)가 아쉽고 소중해지는 오늘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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