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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19) '여인의 향기'와 ‘애꾸눈 잭(One-Eyed Jacks)’

시각장애를 가지면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한 영화가 있다.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 1992)’가 그런 영화다.

 

뉴잉글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찰리 심스(크리스 오도넬)는 집이 가난해서 학교 도서관 사서 일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가기 위해 긴 부활절 연휴 동안 돈을 모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마침 적절한 보수를 주는 임시 일자리를 찾기는 했는데, 완고한데다가 입이 거친 퇴역 중령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를 맡아주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수류탄 핀을 뽑았는데 터지면서 실명했다고 한다.

 

그는 자기를 돌보는 조카의 가족 여행을 거부하고 혼자 집에 있겠다고 해서 조카가 며칠 돌봄을 부탁했다.

 

찰리에게는 첫 만남부터 영 마음에 안 든다.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너를 자세히 보고 싶으니까.”

보이지도 않으면서 슬슬 떠보질 않나, 선생님(Sir)이란 말 싫어하니 중령님이라고 부르라고 겁을 준다.

 

프랭크는 조카 가족이 떠나자마자 부리나케 짐을 싸서는 가기 싫어하는 찰리를 억지로 데리고 뉴욕행 비행기를 탄다. 미리 준비라도 했다는 듯 전광석화로 떠난다.

 

“여성의 머리칼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또 입술 닿는 기분은 사막을 지난 뒤 마시는 포도주와 같아.”

 

이와 같은 여성학 강의, 아니 여성을 탐닉하는 방법을 강의하는 프랭크. 그들은 최고급 호텔에서 묵고, 리무진을 타고 다녔다. 그러는 중에도 찰리는 마음 한 구석에 말 못할 고민을 품고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가 교장 선생님을 골탕 먹이는 것을 목격했다는 걸로 장난친 녀석이 누군지 추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찰리가 하버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며 회유 반, 협박 반으로 현명한 생각을 해보라고 한 것이다.

 

탱고를 추는 알 파치노의 연기

 

찰리는 돌아가기 전까지는 잊어버리자고 생각하고 프랭크와 둘이서 호텔의 식당에 앉는다. 탱고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때 프랭크는 옆 자리 도나(가브리엘 앤워)라는 젊은 여성에게 작업을 걸어서 탱고를 함께 추게 된다.

 

“탱고는 실수할 게 없어요. 인생과는 달리 단순하죠. 만약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는데 바로 그게 탱고죠.” 능숙한 말솜씨에 슬슬 넘어간 도나는 프랭크의 손에 이끌려 홀 가운데로 가서 조금씩 추기 시작한다. 점점 프랭크의 이끌림에 익숙어져 몸놀림이 좋아지는 도나. 음악은 점점 빠른 곡조로 흐르고.....

 

좋은 시간을 가졌지만 다음 날은 프랭크가 맥없이 누워만 있다. 기운 내게 하려고 찰리는 근처 자동차 매장으로 데려가서 그가 원하던 페라리를 타게 해준다. 기뻐하며 신들린 듯이 운전을 하고서는 다시 힘을 못 쓰는 프랭크. 대령 정복을 입고 권총을 준비했다가 찰리에게 들킨다.

 

“난 생명이 없어.”

“나 어둠 속에 있단 말야.”

항상 군인답게 살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살았던 그에게 지금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은 무의미해서일까?

 

뉴욕에서 뉴잉글랜드 학교로 돌아온 찰리는 현실과 마주쳐야 했다. 학교 청문회까지 열리면서 교장선생님을 심하게 골탕먹인 범인들을 찾기 위한 일이다. 찰리는 어떻게 될까? 프랭크 슬레이드 중령은?

 

잘못 붙여진 영화 제목

 

시력과 관계되거나 시각장애인을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혼돈을 주는 영화가 있어 소개해 본다. 첫 번째는 1961년에 제작돼 국내에도 상영됐던 ‘애꾸눈 잭(One-Eyed Jacks)’. 미국 서부시대라고 알려진 19세기, 멕시코에서 은행강도로 유명한 리오(말론 브란도)와 동료 대드(칼 말든)는 멕시코 경찰에 포위당하게 되고 대드는 도망가지만 리오는 잡혀서 5년형을 산 후 출감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다.

 

그런데 제목처럼 영화는 애꾸눈(시각장애인)이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잭’이라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슨 연유일까? 그 당시 서양의 포커 문화를 모른 채 번역해서 제목을 뽑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원래 ‘One-eyed Jacks’는 포커에는 스페이드·다이아몬드·하트·클로버 4개에 각각 J(Jack)·Q(Queen)·K(King)가 있는데, 스페이드와 하트의 잭에는 왕의 얼굴이 한쪽만 보인다. 그래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고, ‘배신’이라는 이미지를 붙일 때 흔히 카드의 이름을 따서 흔히 써먹는다고 한다.

 

돈을 혼자 차지하려고 친구를 배신해서 사라진 대드를 상징해서 붙인 제목이다. 애꾸눈이라는 표현도 지금은 장애 비하 언어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오래 전 영화 제목을 바꿀 수는 없고..... 다만 잘못 사용된 제목이라서 제대로 바꾼다면 단순히 ‘배신자’라고 하거나 ‘배신자의 최후’'라고 쓸 수 있겠다.

 

참고로 2006년 첫 작품과 2014년에 2탄으로 만들어진 이후 최근에 상영된 ‘타짜 3’은 ‘One-eyed Jack’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1, 2편의 성공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흥행 성적을 거뒀지만 여기에서는 배신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듯 하다. 워낙 도박의 세계가 배신과 사기로 관통되니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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