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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25) '훔쳐보기'는 '관음증'이 아니다 ... '우먼 인 윈도'

 

어두운 밤, 눈 내리는 뉴욕의 도시 외곽길을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던 애나 폭스(에이미 아담스)는 잠시 한눈을 팔다가 차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겪는다. 자신은 겨우 살아났지만 남편과 아들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후 애나는 죄책감에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이 생겼고, 집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거실도 늘 어둡게 하고 산다. 소아정신과 의사이면서 애나 자신도 가끔씩 찾아오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상담을 받는다.

 

‘우먼 인 윈도(The Woman In The Window, 2020)’ 이야기이다. 애나는 10개월 넘게 집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나쁜 버릇이 생겼다. 주변 집들을 훔쳐보는 것이다. 길 건너 집으로 러셀 가족이 이사를 오고, 그 집의 부인 제인 러셀(줄리안 무어)과 그의 아들 이든이 차례로 자신을 방문하면서 친해지게 되지만, 남편인 엘리스테어 러셀(게리 올드만)은 왠지 마음에 안 든다.

 

일어나지 않은 살인사건을 목격한 여인

 

그러던 어느 날 찾아왔던 제인이 배에 칼을 맞고 죽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보게 되어 신고하지만, 형사와 함께 찾아왔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살인범은 남편 엘리스테어일까, 아니면 지하에 세 들어 사는 데이빗일까? 살인이 정말 일어나기는 한 걸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약물을 너무 많이 복용해서 환영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애나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이웃집을 엿보면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Rear Window, 1954)’에서도 볼 수 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촬영기법이나 긴장감을 만드는 편집 수준은 히치콕 감독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어서 지금 보더라도 놀랍다.

 

우먼 인 윈도 영화는 계속 애나가 왜 제인이 살해됐는지를, 범인은 누구인지 쫓아가는 이야기를 긴장감과 계속되는 의문을 가지고 보게 만든다. 제인의 남편 엘리스테어 러셀과 제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지하방의 데이빗을 강력한 용의자인 듯 몰고 가다가 결말에 가서는 전혀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영화 기법을 ‘맥거핀 효과(McGuffin effect)’라고 하는데, 역시 히치콕 감독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상한 물건이나 사람에게 관객들의 관심을 끌게 하지만 전혀 다른 것에서 해결이 되게 만드는 기법이고, 그의 영화 제작 동료인 앵거스 맥패일(Angus MacPhail)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훔쳐보기와 관음증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 애나의 문제가 광장공포증, 우울증, 관음증, 약물 부작용, 망상 중에서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지만 약물 부작용과 망상은 영화의 결말을 통해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나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들조차도 애나가 주변 집들을 훔쳐보는 증상을 두고 관음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관음증(觀淫症, Scoptophilia, Voyeurism)’은 다른 사람의 성기나 성행위 혹은 몸매를 보면서 성 만족감을 느끼는 ‘이상 성욕’을 말한다. 단어에서도 ‘음(淫)’은 음란하다는 뜻을 지닌다. 다행하게도(?) 이 사람들은 그 대상자와는 성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보고 자위를 하면서 성욕구를 해결하게 된다.

 

정확한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애나는 관음증이 아니라 단순한 ‘훔쳐보기’를 하는 것이고, 도덕이나 윤리 면에서 문제가 될 뿐이다. 그래서 애나와 상담하는 정신의학과 의사도 “옆집을 훔쳐본다는 것은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우울증이 좋아진다고 할 수 있지.”라고 말하며 관음증이 아닌 훔쳐보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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