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고 온 유럽이 독일의 군홧발에 짓밟힐 때, 영국은 여러 나라의 저항군 세력들을 모아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독일은 영국과 유럽의 공격에 대비하고, 중요하게는 스웨덴에서 운송해오는 철광석을 보호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점령한 상태다.
1943년, 노르웨이 출신들로 이루어진 부대원 12명은 독일군의 주요 거점을 파괴하려는 작전을 부여받고 노르웨이로 상륙을 시도하게 된다.
배가 미처 육지에 닿기도 전에 독일군 함정에 발각되어 11명은 잡혀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처형당하지만 혼자 살아남은 12번째 군인, 얀(토마스 굴레스타드)의 탈출기를 영화는 담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와 얼어붙은 바다와 눈 덮인 산에서 맨발로 걸어야 했고, 4㎞나 되는 바다를 헤엄쳐야 하는 등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 상황은 모두 담는 듯하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외딴 오두막에 숨겨진 얀은 잡히면 죽는다는 공포감으로 매일 밤 악몽을 꾸었고, 심한 동상을 입은 발가락들은 괴사되기에 이른다. 결국 검게 죽어버린 발가락들을 자기 손으로 잘라내야 했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얼어붙은 바다를 몇 시간 동안 헤엄쳤던 것, 눈사태를 만나는 것이나 눈 속에 며칠이고 묻혀야만 했던 상황들이 있었지만, 영화에서 가장 처절하게 보였던 부분이 바로 자기 발가락을 잘라서 뜯어내는 장면일 것이다.
자신의 발가락을 잘라내야 하는 동상
우리 몸은 추워지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말단부의 혈관을 수축시켜 열이 발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신체의 끝부분인 귀, 손가락, 발가락들이 동상에 걸리고도 치료받지 못하고 추위에 장시간 노출하게 되면 결국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서 괴사, 즉 썩어버리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 점점 더 괴사 부위가 넓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절단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잘려진 발가락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면서 중립국이던 스웨덴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급기야는 눈사태까지 만나서 피투성이가 되어 몸은 만신창이가 된 얀.
그를 돕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얀, 당신이 살아있다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독일인들이 당신을 찾지 못하는 건 우리 노르웨이인들에게는 자긍심이 되고 있어요.”
오두막에 숨겨준 사람들, 썰매를 만들어서 거동이 힘든 얀을 옮기던 사람들, 독일군의 위협에도 목숨 걸고 국경을 넘게 만든 사람들..... 그들을 만나면서 얀에게는 살아서 탈출해야만 하는 이유가 점점 강해져만 갔다. 탈주 63일째, 결국 얀은 스웨덴으로 탈출하게 되고, 안전하게 영국으로 돌아가 훈련 교관이 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노르웨이 영화로 대자연과 설경을 배경으로 하고 오로라도 보여주면서 아름다운 장면들을 연출하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아름답게만 봐야 할 배경 속에서 살기 위해 극한의 몸부림을 치는 얀의 투쟁을 담으며 역설의 미를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동상은 추운 곳의 이야기를 담는 영화에서 볼 수 있는데, 북극 탐험대의 이야기를 다룬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Against the ice, 2022)’라는 작품에서도 극한의 추위 속에서 얼어버린 손가락, 발가락을 잘라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힘든 상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동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참호족
동상과 비슷한 것으로 참호족이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는 ‘트렌치 풋(Trench foot)’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참호(Trench) 속에 오래 있다 보니 발생해서 만들어진 질병 이름이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기간 중에 이 병이 많이 생겨서 프랑스의 군의관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 1766~1842)가 1812년 처음 이 병의 원인과 치료 등을 기술하였다고 한다.
라레는 부상당한 병사들을 효율적으로 운송하는 방법을 고안하다가 마차를 개조한 구급차를 만들어 전장에 투입해서 많은 병사들을 살렸다. 훗날 구급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의사다.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참호전(Trench warfare)이 주로 벌어졌고, 여기에서 많이 발생하다보니 이름도 참호족이 되었다. 참호는 또 훗날 멋쟁이들의 대명사가 된 트렌치 코트의 기원이기도 하다.
비를 막아주면서 따뜻한 안감을 댄 긴 외투는 참호에서 입기 좋은 옷이 되어 당시 장교들의 공식 군복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민간에서 입는 트렌치 코트에는 계급장을 부착하던 견장, 수류탄이나 탄창을 걸 수 있는 허리의 디자인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동상과 참호족은 증상이나 위험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혼동될 수 있다. 동상(Frostbite)은 말 그대로 얼어버릴 만큼 아주 차가운 조건에서 생기는 반면에 참호족은 15℃ 안팎의 다소 따뜻한 온도에서도 생길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동상은 신체의 말단인 귀나 손, 발이 손상되는데, 참호족은 며칠이고 군화를 신은 채로 적과 대치하느라 발이 오래도록 습하게 군화 속에 갇혀있어서 발에만 주로 발생하게 된다.
동상은 감염과 크게 관련 없이 인체의 방어작용으로 자신의 일부를 없애는 자연스런 작용이라면, 참호족은 방치하고 오래 두게 되면 세균 감염으로 살이 썩게 되는 ‘괴저(Gangrene)’가 생기면서 패혈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다행히 참호족은 환기가 잘되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면 원상회복 되는 경우가 많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