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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7) ... 전쟁의 역사에서 달라지는 외상들

상륙작전이나 장거리포, 폭격기 등을 이용한 현대전에서는 참호전이 유용하지 않다. 어느 지역을 사수하면서 총과 대포로만 전쟁을 치르던 1900년대 초의 전투에서만 긴요하게 이용했었다.

 

참호전을 실감나게 다룬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라는 영화가 있다. 2017에 제작된 영화로 1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18년 프랑스 북부에 있는 영국군 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담았다.

 

이 부대는 독일군과 1년 넘게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참호 속에서 단 1m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호에서 조금 벗어나면 사람이 도저히 통과하기 힘든 철조망이 있고, 그것을 통과한다 해도 적의 기관총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임관을 해서 임시로 6일간 그 부대에 배속받은 제임스 롤리(에이사 버터필드) 장교와 어린 시절 잘 알고 지내던 스탠호프(샘 클래플린) 대위를 중심으로 병사들이 겪는 전장에서의 심리들을 여러 표정과 상황들로 세심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 영화로서는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참호전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

 

영화는 참호전의 여러 모습들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병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태우는데, 이것은 상황이 지루하고 담배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참호 안에 시체를 방치하다 보니 썩어가는 시체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쥐나 그것들을 수십 마리 잡아서 매달아 놓은 장면들은 실제 그 당시 참호 안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는 전쟁의 불합리성을 우회하면서 보여준다. 목숨을 걸고 후추를 가져오게 하는 장교나 아무런 대책 없이 적진으로 가라는 군 수뇌부들. 의미 없는 전투에서 희생당하는 병사들과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장교들. 술로 매일 불안을 달래던 스탠호프 대위는 말한다.

“총이라도 맞았으면 어떨까? 그랬다면 더는 이 지옥을 견딜 필요가 없어지겠지.....”

 

독일군이 총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정보에 동터오는 새벽, 참호에서 전투 준비를 하는 병사들의 눈빛에서는 불안과 절망이 뒤섞여 있고, 호흡은 가빠지면서 모두들 이대로 주저앉을 것 같다.

 

저니스 엔드(Journey’s end)는 우리 말로 ‘여정의 끝’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감독은 그 여정의 끝에 대한 대답을 주지 않는다. 6일간 의무 파견된 것이 끝나는 게 여정의 끝일까? 아니면 총탄에 쓰러져 더는 괴롭지 않은 상황을 맞이하는 걸까?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는 것일까?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어진 적이 있기라도 한가?

 

전쟁의 역사에서 달라지는 외상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다. 칼과 창으로 전투를 벌였던 시대에는 일대일의 싸움이었고 자상(刺傷, Stab wound)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외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면서 발달한 게 외과학이다. 전투에서 칼에 찔리거나 팔과 다리가 잘리게 되면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치료는 손상 부위를 잘라서 출혈이 멈추게 하고, 괴사 또는 괴저병이 생기는 것을 막는 것뿐이었다.

 

마취법이 없던 시대의 수술은 통증과 합병증을 만들어내는 길이었다. 운 좋으면 살아서 장애인이 되는 것이고, 대부분은 수술이 잘되더라도 감염으로 죽었다. 전장의학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의사로 프랑스의 파레(Ambroise Paré, 1510~1560)를 들 수 있다. 그는 정식 의사(Doctor)가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이어온 이발 수술장이(Barber-surgeon)였지만, 전쟁터에서 32년간 군의 역할을 하며 실전 경험을 축적하였다.

 

1500년대 당시까지만 해도 손상 부위를 끓는 기름으로 지지는 것이 출혈을 멎게 하면서 치료를 하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파레는 기름 소작법으로 치료를 받는 병사들의 고통이 너무 심하고,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다른 방법을 고안해낸다. 출혈이 있는 혈관을 잘 찾아서 묶었더니 피도 멈출 뿐 아니라 상처가 잘 아물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혈관 결찰법’이다. 병사들이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파레는 나중에 정식 의학교육을 받아서 닥터라는 지위를 얻었고, 후대들은 그를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

 

현대전의 시작인 제1차 세계대전은 손상의 수준과 상황을 바꿔놓은 계기가 되는데, 칼과 창 대신 기관총으로 대량 살상이 가능해진다. 총기와 포탄은 주 살상무기가 되어 적과 마주치지 않아도 심각한 부상이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고, 독가스나 화염방사기도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며 인류의 전쟁은 대량살상 무기의 시대를 열었다. 이전의 진지를 구축하고 싸우던 참호전은 의미가 없게 된다. 항공모함과 폭격기, 탱크 등은 물론이고 인류 최초로 원자탄까지 등장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너무 많고, 독일의 마지막 목줄을 죄기 시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차단하면서 동시에 이탈리아를 겨냥한 시칠리아 상륙작전은 당시 가질 수 있는 최첨단 무기들이 동원된다. 그만큼 대량살상이 가볍게 이루어졌다. 2차 대전 중에 전체 사망자는 6000만~8500만 명으로 추산하고, 그중 양측 군인들의 사망은 40% 정도를 차지하여 거의 3000만 명이 넘는다. 죽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부상자들은 얼마나 더 많았을까?

 

21세기 초에도 실제 군인들의 사망 원인으로는 감염병이 많았다. 칼, 총, 포탄에 의한 부상은 곧 감염으로 이어졌고, 상처 부위가 썩어가는 괴저병(Gangrene)뿐만 아니라 전염성 있는 폐렴 등도 주된 사망 원인이 됐다. 공식 기록으로 보면 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는 인플루엔자(독감)나 폐렴 등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미군 병사 5만 명 가까이 사망했다고 한다.

 

1930년대부터 개발된 항생제는 이러한 감염병을 확연히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예로 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는 미군의 참전군인 수가 이전 세계대전의 두 배로 늘었는데도 같은 감염병으로 사망한 수가 공식 기록으로 1265명이라고 한다. 설파제의 대량생산으로 인한 결과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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