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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35) 새번트 증후군은 자폐 장애의 한 현상일뿐 ... 레인맨

LA에서 고급차 판매회사를 운영하는 찰리 배빗(톰 크루즈)은 고객들로부터 주문 받은 차들이 판매소에 빨리 도착하지 않아서 골치가 아프다.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직원이자 연인 관계인 수잔나(발레리아 골리노)와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갈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아버지와 다퉈서 고향인 신시내티를 떠난 후 한 번도 말도 붙여보지 않은 터라 장례식장에 참석하면서도 별 감흥이 없다. 옛집에서 잠시 둘러볼 때도 기억나는 거라곤 무서울 때마다 ‘레인맨’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노래를 불러줬다는 것.

 

1988년에 제작된 ‘레인맨(Rain man)’은 이렇게 시작한다.

 

숨겨져 있던 형제의 비밀

 

찰리는 유언장 대리인을 만났을 때 자신에게는 아버지의 오래된 자동차 한 대와 가꾸던 장미 몇 그루만 남겼고, 나머지 300만 불에 해당하는 전 재산을 다른 상속자가 받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 황당해한다. 자동차를 주문한 고객들의 환불 요구가 빗발치고 있고, 회사의 상황이 안 좋은 처지에 그는 상속자가 누군지 알아내서 조금이라도 건지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겨우 찾아간 곳은 어느 정신병원. 원장은 상속자가 누구인지 절대 말을 안 해주지만 찰리는 수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자기가 물려받은 아버지의 차를 잘 알 뿐 아니라 집 주소도 알고, 아버지 이름도 말하는 그는 레이먼드 배빗(레이; 더스틴 호프먼)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도 모르던 형이었다.

 

레이는 자폐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새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장애인으로 정신병원 겸 요양소인 그곳에서 오랫동안 지내고 있었다. 천재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일상 대화나 교감은 힘들고, 돈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찰리는 어떻게든 유산의 일부를 얻어내려고 그를 데리고 그곳을 몰래 빠져나가 버린다.

 

막상 데려오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함께 자기가 살던 LA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호텔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레이. 그는 병원에서 오래 하던 대로 정해진 일정으로만 움직여야 마음이 편하고, 항상 보는 TV 프로그램을 꼭 시청해야 한다. 레이가 방에 볼 책이 없다고 하자 건네준 전화번호부를 외워버리고, 계산이나 숫자 기억도 남달리 뛰어나다는 것을 알지만 찰리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형 레이를 데리고 가서 상속받을 궁리만 한다.

 

형을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기는 했어도 LA로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비행기를 타려고 하면 레이는 항공기 사고 연도와 사고 건수를 줄줄이 얘기하며 무섭다며 거절하고, 차를 몰고 가다가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보게 되면 고속도로의 자동차 사고 현황을 장황하게 나열하며 무서워서 고속도로로는 안 가겠다고 떼를 쓴다.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로 가면서 모텔에 머물 때는 12시 30분에는 점심을, 6시 30분에는 반드시 저녁을 먹어야 하며, 수요일인 그날은 생선튀김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빗속을 뚫고 식사까지 주문했다. 그러지만 자기는 늘 생선튀김 여덟 조각을 먹는데, 네 조각뿐이라고 다시 앙탈을 부린다. 힘들게 달래서 다시 차를 타지만 자기가 입던 팬티가 아니어서 그것을 파는 가게로 가자고 우긴다. 설득도 안 되고 같은 말만 반복하는 형을 보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찰리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진다. 고향인 신시내티는 동부에 있고, LA는 서부에 있으니 거의 미국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언제 갈 수 있을까?

 

자폐 장애와 새번트 증후군

 

레이가 가지고 있는 ‘자폐 장애(Autism)’ 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최근에야 알려진 정신질환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조현병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것을 처음 다르게 소개한 의사들이 있다. 오스트리아 의사로 소아 정신의학에 큰 기여를 한 아스퍼거(Johann Friedrich Karl Asperger, 1906~1980)는 자폐증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했고, 1943년에 그 질환에 대해서 자세히 발표한 이후 널리 의학계에 사용하게 만든 사람은 오스트리아계 미국인이며 정신의학과 의사인 레오 카너(Leo Kanner, 1894~1981)이다. 카너는 평생을 자폐 연구를 위해 노력했으며 사회운동가로서 차별을 없애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자폐 장애는 보통 1만 명당 20명 정도로 많이 발생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자폐(自閉)란 자기 안에 갇혀있으면서 외부와 소통하기 힘들다는 뜻을 갖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사회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고, 반복되는 말이나 상대방의 말을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며, 어떤 일이나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영화에서 레이가 보이는 모습들은 자폐 장애의 증상들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더스틴 호프만은 이러한 연기는 진짜 자폐 장애인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나 연기를 잘해내어 뛰어난 배우라는 것을 입증한다.

 

레이는 또 ‘새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동반하고 있는데, 새번트(Savant)는 학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용어는 다운(John Langdon Haydon Down, 1828~1896)이라는 영국의 의사가 처음 사용한 정신의학 용어이다. 그의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다운증후군을 처음 기술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가 자폐 장애의 한 현상인 새번트 증후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는데, 자폐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새번트 증후군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대부분 천재성을 띨 것이라는 오해이다. 새번트 증후군은 뛰어난 기억력이나 예술성을 가지고 있고, 자폐 장애 말고도 몇몇 상태에서 나타나지만 상당히 희귀한 경우로 알려져 있다. 발음도 새번트로 해야 맞는 것이 서번트는 근거가 없는 발음이다.

 

레인맨의 정체

 

둘이 모텔에서 잠시 머물 때 찰리는 형이 보관하고 있던 낡은 사진을 보게 된다. 그 속에는 어떤 젊은이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다. 혹시나 해서 찰리는 오래 전 레인맨이라는 사람이 자기에게 불러줬던 노래를 떠듬떠듬 불러본다. 자기는 기억을 더듬으며 부른 노래였는데, 완벽하게 전부를 부르는 레이. 그제서야 어릴 적에 노래를 불러주면서 자신을 달래줬던 레인맨이 형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뜨거운 물을 싫어했던 이유도 어린 찰리를 돌보던 레이가 실수로 뜨거운 목욕물에 떨어뜨린 죄책감이 컸기 때문이고, 그 때문에 형 레이는 요양시설로 보내지게 된 것이다. 형을 데리고 가던 중에 회사는 넘어가고 9만불의 빚을 떠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찰리. 변호사로부터 동생인 자기가 법적 보호자로 인정을 받게 되면 유산을 맡게 된다는 얘기도 듣고, 정신병원의 브루너 원장은 레이를 시설로 돌려보내라고 회유를 한다. 찰리의 고민이 더 깊어진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자폐 장애에 대해 너무나 뛰어나게 연출이 되어서 큰 흥행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자폐 장애에 대해서 널리 알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짧은 여행을 통해서 찰리에게는 가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기회가 되었고, 연인 수잔나에게도 이기적이며 감정을 내놓지 않던 것에서 변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처럼 장애와 가족의 문제를 감싸 안으면서 풀어나간 것이다. 잔잔한 반주로 시작해서 격정의 리듬으로 바뀌는 영화의 삽입곡 ‘파란 수평선 너머로(Beyond the Blue Horizon)’처럼 우리의 삶이 희망으로만 가득 찼으면 좋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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