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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서복의 전설(2) ... 서귀포에 살아야 하는 이유

 

영주실, 시로미

 

‘최초의 동북아 탐험가’ 혹은 ‘희대의 사기꾼’으로도 전해지는 서복 동도의 목적은 불로초를 구함이다. 확실하게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시황제의 방사 서복이 한라산에서 구했다는 불로초가 바로 ‘시로미’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로미는 ‘영주실(瀛洲實)’이라고 불렀다. 영주(제주도)에서 나는 열매라는 의미이다. 제주도의 자연과 풍속에 대해 기록한 『남환박물(南宦博物)』(1704)에는 “한라산 꼭대기에 나는데 열매는 능금 같다. 빛은 검고 달다.”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6년경)에도 “영주실은 한라산에서 나는데 조금 검고 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로미는 시로미과 시로미속의 상록 활엽관목이다. 열매의 맛이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암고란(巖高蘭)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오리(烏李), 즉 까마귀의 자두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크로우베리(crowberry)이다. 제주도 한라산 고산지대나 백두산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뼈를 단단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예로부터 한방에서 허리나 무릎이 시큰거릴 때 약으로 썼었다.

 

1911년, 일본학자 나카이(Nakai)에 의해 한라산 자생 시로미가 처음 학계에 보고됐다. 한라산 백록담에 제일 먼저 피어나는 꽃이 바로 시로미 꽃이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이 보이는 선작지왓이나 사제비동산을 오르면 시로미 꽃을 볼 수 있다.

 

제주도민들은 시로미 열매가 익어가는 시기가 되면 한라산에 올라 열매를 채취해다가 시들하게 건조해서 미숫가루에 섞어 먹었다. 생식하거나 차나 술에 담가 먹기도 했다. 한라산 시로미로 담근 술은 아주 귀하게 여겨졌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어머니가 손수 담근, 시로미 술 드시러 아버지 친구분들이 많이 오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이해 안 되는 건, 아버지가 술 마시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던 어머니가 왜? 집에서 굳이 술을 담그신 걸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제주 목사 이원조는 한라산에 오르다 시로미를 발견하고, 그에 대해 느꼈던 점을 『탐라지 초본』(1841년)에 기록하였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민요 ‘오돌또기’ 가사에도 시로미가 나와 있다.

 

한라산 중허리 시러미(시로미) 익는 숭 만 숭/ 서귀포 해녀들 바다에 든 숭 만 숭

둥그데 당실 둥그데 당실 여도 당실/ 연자 버리고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거나

 

서귀포 해안 길이가 칠십 리?

 

언제부터인가 ‘서귀포 칠십 리’가 제주도민뿐 아니라, 서귀포를 아는 전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안식과 위로, 꿈과 희망을 주는 지역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서귀포 칠십 리', 그 자체가 서귀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이상향이며 서귀포의 아름다운 경관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다.

 

1416년 안무사 오식에 의해 제주도 행정구역이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으로 나누어졌으며, 1423년 안무사 정간이 정의현청을 현재 표선면 성읍마을로 옮겼다. 이런 연유로 이원진 목사의『탐라지』(1653년)에‘서귀포(서귓개)는 정의현 서쪽 70리에 있으며, 원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 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서 보면, ‘서귀포 칠십 리’는 정의현청이 있던 성읍마을에서 서귀 포구까지의 거리를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전국에 알린 가장 큰 계기는 조명암이 작사하고 박시춘 작곡했으며 남인수가 노래한‘ 서귀포 칠십리'라는 당시 유행가다. 1934년 6월, 오케이 레코드사 이철 사장과 함께 조명암이 제주 여행 왔다가 서귀포 해안 절경에 매료돼 이틀 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1930년대 후반 한라산 남쪽, 어느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서귀포가 세상에 널려 알려졌다.

 

이후 1968년, 백설희와 이미자 합창곡으로 ‘서귀포 칠십 리’가 발표됐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 진주 캐는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휘파람도 그리워라. 쌍돛대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 리에 물새가 운다.

 

자갯돌이 철썩철썩 물에 젖는 서귀포 머리 빨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저녁달도 그리워라. 저녁 별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 리에 황혼이 졌다.

 

노래하리 철썩철썩 소리치는 서귀포 고기 잡던 아가씨는 어디로 갔나?

모래알도 그리워라. 자개 알도 그리워 서귀포 칠십 리에 맹서가 컸소.

 

노지 껄로 줍서!

 

제주 토박이로서 장담하건대, 제주에 있는 어느 술집이나 가서 “노지 껄로 줍서!”라고 주문한다면, 시황제보다 더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제주의 문화와 정서를 제대로 아는 거라고 인정받는다. 어깨동무할 만큼 공감대와 친밀도가 솟아남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아버지는 생전, ‘노지 소주’만 드셨다. 냉장고에서 꺼내온 소주나 맥주는 심심해 못 드시겠다, 하셨다.

 

원래 ‘노지(露地)’란 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을 말한다. 비닐하우스 밖에서 키운 귤을 ‘노지 감귤’이라 한다. 노지는 자연에 적응하고 자연을 활용하며 이룬 삶의 문화이다. 서귀포 사람들에게는 ‘노지 문화'가 깊게 뿌리 박혀 있다.

 

다년간 서귀포시 문화도시 사업추진협의체 위원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서귀포시 문화도시 사업추진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봉택 시인(69)이 말하는 노지는 ‘뚜껑 없이 탁 트인, 열린 공간’을 말한다.

 

“서귀포 전체가 뚜껑이 없잖아요! 우리가 이를 가공 개념으로 본다면 뚜껑이 있는 거고, 가공 개념이 아닌 순수한 자연적인 걸로 본다면 천장이 없는 거고, 지붕이 없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자체가 지붕이 없잖아요? 이는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너 알고 나 알고 하는 것처럼 모두가 열린 순수 공간을 의미하죠.”

 

“현재 서귀포시에는 105개 자연마을이 있습니다. 105개 마을이 터놓고 함께 하는 거죠. 사실 제주도는 고, 양, 부 삼성 빼고는 전부 이주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늦게 오고 빨리 오고 차이밖에 없죠. 이 모두 사람이 트인 공간에서 함께 서로 소통하는 거죠. 모두 다 서귀포다움으로 융화시켜가는 거라고 할 수 있죠.”

 

2023 올해의 문화도시로 선정된 서귀포시는 ‘노지 문화'를 특성화하고 있다. 105개 마을이 다양한 ‘노지 문화’를 토대로 세계적 생태 문화도시 브랜드를 구축하고 있다.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마을 라운지’와 열린 문화공유공간 공유를 통해 서귀포다움을 더 매력 있게 하고 있다.

 

노지 문화기반을 조성하는 ‘생태문화 씨앗', 미래세대를 위한 문화경제 기반이 되는 '미래문화 텃밭', 창의적이고 도전적 서귀포 인재를 키우는 ‘창의 문화 농부', 농업과 관광도시 서귀포를 국제적 문화도시로 만드는 ‘서귀포다운 문화도시 브랜드 구축', ‘지역주민 주도 문화도시 기반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귀포 살래! 서귀포 살래?

 

“제주에 와서 제주다운 삶을 살길 원했다. 제주시보다는 서귀포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어도라고 하는 제주의 이상향은 한라산 남쪽에 있다.”

 

서울 토박이, 마을방송국 제주 살래 안광희 대표가 10년이 훌쩍 넘는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7개월여간 서귀포시 32개 해안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32개 마을 이장과 사무장을 만나 얻은 결론이다.

 

천혜의 자연생태환경과 경관, 여유롭고 다양한 마을공동체, 지역사회와 정착주민(이주민) 간의 문화적 소통, 이 세 가지가 그가 죽을 때까지 서귀포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69년째 서귀포에 사는 탐라 문화유산 보존회 이사장, 윤봉택 시인이 꼽는 서귀포의 매력은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 햇빛이 좋다! 폭포가 있다! 섬에서 섬이 보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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