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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제주 사람들의 정서·문화를 담고 있는 언어 ... 제주어(3)

 

이거 가저 강, 테워 불라

 

“성근 어멍아, 이것들 가저 강 테워 불라.”

 

아니! 이 멀쩡한 음식들을 태워버리라니....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 해도 지엄하신 시어머니 말씀인지라 주섬주섬 챙겨 나와 마당에서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메누리야, 뭐 허젠 햄시니? 그걸 무사 ᄉᆞ라불젠 햄디야?”

 

아니! ‘태우라’해서 태우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소라’가 나오지?

 

그날 시어머니가 ‘테우라’라고 했던 말은 ‘나눠주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그걸 들고 나가 태워버리려고 하다니, ‘무사 그걸 ᄉᆞ라불젠 햄시니?’라며 시어머니가 놀랄 건 당연했다. 아무리 일 시켰기로서니, 시댁 어른들 앞에서 귀한 음식들을 ‘ᄉᆞ라불젠 허는’(태워버리려고 하는) 큰며느리가 두렵기까지 했을 거다.

 

“성근 어멍아, 그거 캄저 확 뒈쓰라!”

 

‘뒈쓰라’, 이건 또 뭘 하라는 말이지? 영문몰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와 프라이팬을 뒤집으며 기겁을 한다.

 

“아까부터 이거 뒈쓰랜 안 해냐! 이거 다 카부런 하나도 못 먹게 되부러신예!"

 

이미 숯이 되어 버린 녹두전 앞에서,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를 꼼꼼하게 복기해 봐도 당시로선 도저히 알지 못했다.

 

알고 보니 ‘뒈쓰라’라는 말은 ‘뒤집어라’라는 의미였다.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그 녹두전을 다 ‘카게’(타게) 해버렸으니.... 촌 말 모르는 육지 며느리 덕에 다 ‘카(타)’버린 시어머니 속은 어땠을까?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상당 기간 제주어는 교육과 훈육의 대상이었다. 수업 중 제주어를 사용한 교사는 위로부터 지적을 받았고, 제주어를 사용하는 학생은 수업 중 반드시 표준 한국어만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제주어를 사용했을 경우 심지어 제재가 가해졌다. 시간이 흘러 제주어에 대한 억제와 탄압이 사라진 이후에도 사투리가 촌스럽다는 인식은 계속 이어졌다.

 

강 시인은 어릴 적 할머니가 쓰시던 제주어 표현이 너무 좋아 커서도 제주말을 자주 썼었는데, 제주말을 쓰면 주변에서 그녀를 무시하거나 나무랐고,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못쓰게 해서 화가 났었다고 했다.

 

“제주어는 정말 소멸하기 너무 아까운, 제주 얼이 살아 있는 언어입니다.”

 

실제 제주도민 10명 중 3∼4명은 80대 이상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제주도 사투리를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현재 제주도민의 1.2%만이 제주도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원형이 남아 있는 제주어는 8~90대의 노년층에게서나 들을 수 있다.

 

제주어는 2011년 12월 유네스코에 의해 소멸위기의 언어 5단계 중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되고 있다. 소멸위기 언어 등록은 국제사회가 제주어를 단순 지방 사투리가 아니라 언어로서 가치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제주어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환경이 반영된 중세 국어가 살아 있어 연구 가치가 높은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결국은 제주에 대한 관심이다'라는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의 소망은 크게 3가지다. ‘학교 교육을 강화했으면 좋겠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2중 언어생활을 하면 좋겠다’. 한마디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쓰고 그러지 않은 경우, 제주말로 쓰게 하자는 얘기다.

 

제주어 블루스

 

제주어 사용 확산과 보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이 펼쳐지고 있다. 제주어로 연극도 하고, 오페라도 하고, 노래도 하고, 힙합도 한다. 어른들도 잘 모르는 제주어를 놀이처럼 노래 부르고 그 뜻을 익히는 어린이도 많다.

 

제주어 교육 확산은 물론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 수립, 제주도 방언집 발간, 제주어 표기법 제정, 제주어 말하기대회, 제주어 주간 등 지자체는 물론이고 민간에서도 제주어 보존을 위해 활발히 노력하고 있다. 때맞춰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본격적인 제주어의 등장도 제주어 대중화에 큰 보탬이 되었다.

 

2022년 4월 9일에서 6월 12일까지 방영됐던 ‘우리들의 블루스'는 배우들이 제주어로 열연하여 제주도민뿐 아니라 국내외 많은 시청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고맙게도 제주어를 자막 처리하고 사투리나 호칭에 주석을 달아주었다.

 

이는 제주어가 가진 무궁무진한 매력과 현실성 있는 감성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내와 나는 대배우들이 구사하는 제주어가 어색하거나 왜곡되지는 않았는지를 매회 본방송을 사수하면서 눈 부릅뜨고 지켜봤다. 결과는 ‘푼드랑’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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