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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한라산 높이가 낮아지고 있다? ... 현재 공식 한라산 해발고도는 1947.269m

숨겨진 제주섬 이야기 뭉치를 펼칩니다. 그동안 알았던 제주가 아닌 신비의 세계 뒤에 숨겨진 제주의 이야기와 역사를 풀어냅니다. ‘제주 톺아보기’입니다. 그렇고 그렇게 알고 들었던 제주의 자연·역사, 그리고 문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리워진 보석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사회사·경제사·사회복지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박사가 이야기꾼으로 나서 매달 2~3회 이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한라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1901년 10월, 드디어 겐테가 제주로 왔다. 오랫동안 꿈꿔왔던 한라산에 오르기 위해서다. 1900년 가을 의화단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에 파견되어 북청사변 현장을 돌아본 후, 다음 해 조선을 답사했다. 겐테는 당시 황실 고문이던 미국인 샌즈의 소개로 제물포에서 현익호를 타고 3일간 항해 끝에 제주에 도착했다. 그의 손엔 일종의 ‘출입 허가증’인 고종황제의 칙서(勅書)가 쥐어져 있었다.

 

제주 목사(牧使) 이재호는 “외국인이 한라산을 오른다면 재앙이 생길지도 모르며 민란(民亂)이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이 외국인을 싫어하는 상황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도중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등반 자체를 반대했다.

 

섬에 들어온 지 나흘, 목사의 만류에도 통역관과 마부·안내자는 행군 준비를 마쳤다. 말안장이 채워지고 짐꾼은 등에 짐을 졌다. 주민들이 적대감을 드러내 어려움 처할 때를 대비해 중재할 신분 높은 분이 합류했다. 목사가 백방으로 수소문해 비록 정상에 올라간 본 적은 없지만 길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을 한 명 보내 주었다. 이 사람은 화산 꼭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는 커다란 호수의 신비로움에 대해서도 그럴듯하게 설명했다.

 

겐테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마당에 지금 떠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맑고 청명한 하늘이 우리를 산으로 유혹하고 있다. 기압계도 꾸준히 올라가서 모든 조건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졌다. 이건 분명히 흔히 오지 않는 완벽한 기회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봤을 때도 완벽한 판단이다. 밑에서 한라산 봉우리를 볼 수 있는 날, 즉 쾌청(快晴) 일수는 114일, 일 년의 1/3도 안 된다. 게다가 밑에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막상 오르고 나면 변화무쌍한 한라산 고산 기후 때문에 시시각각이 예측 안 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다들 경험해 봐서 잘 안다.

 

대규모 수행원들의 호송 받으며 서문을 나섰다. 하지만, 아무리 가봐도 빈 암자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안내인이 산 중턱쯤 올라가면 폐허가 된 암자를 만날 수 있을 거다. 그 암자는 오랫동안 내버려 두어 사람이 살지 않지만 그래도 지붕과 벽은 일부 남아서 아쉬운 대로 야영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짐꾼들은 점점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짐꾼들은 짐을 버리고 도망갈 태세였고, 안내인도 이런 파업 분위기에 동조했다.

 

상황이 점점 험악해 갈 무렵,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나무꾼 가족들이 모여 사는 집이라 했다. 이상한 복면에 두꺼운 털옷을 입고 귀마개가 달린 커다란 모자를 얼굴까지 뒤집어쓴 한 무리 남자들과 여자, 아이들이 한 곳에 몰려 있었다. 그들은 동굴 안에 살고 있었는데, 겐테 일행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다. 조선 시대에도 숙박이 변변치 않을 경우, 산속에서 장막을 치거나 바위틈에서 추위와 싸우며 노숙으로 해결했던 사례가 자주 있다.

 

동굴에서 하룻밤을 지낸 겐테는 다음날 새벽, 목사가 주선해 준 안내인 대신 정상으로 가는 길을 잘 아는 나무꾼의 안내로 길을 나섰다. 통역 관리도 자진해 가겠다고 나섰다. 일행 중 반은 동굴에 남았다. 다들 지친 데다 정상에 오를 마음이 없었다. 이를 아는 겐테 역시 굳이 같이 정상에 오르자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차고 습한 동굴바닥에서 야영한 탓에 밤새 코와 목, 위가 완전히 한기에 얼어 버린 데다, 산 정상까지 몰아치는 살을 에는 듯 찬 북동풍 바람에 겐테 일행은 가는 내내 시달렸다. 이윽고 낭떠러지와 암각, 절벽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환상적인 바위 오백 장군을 지나 드디어 정상 바로 아래에 이르렀다. 정상에 접근할수록 급경사를 이뤘다. 마지막 300m 구간을 오르기 위해 겐테는 두 시간 반 동안 사투를 벌어야 했다. 등반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당시 상태에서 이런 켄테의 백록담 암벽 등반은 ‘젊음과 도전’이 아닌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라산 정상에 오르자, 겐테는 250년 전 네덜란드 하멜 일행이 섬 한쪽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산을 정복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몇몇 유럽인이 지나가면서 쳐다보기만 했던 섬이기에 의미가 더욱 컸다. 멀리 독일에서 제주로 어렵게 찾아온 켄테의 기쁨과 감동은 오죽했을까?

 

“드디어 정상이다. 사방으로 웅장하고 환상적인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을 지나 저 멀리 바다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파노라마였다. 제주도 한라산처럼 형용할 수 없는 웅장하고 감동적인 광경을 제공하는 곳은 지구상에서 그렇게 흔하지 않다. 거칠 것 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가파르게 우뚝 솟은 한라산 정상에는 확 트인 시야에 온 사방을 둘러 볼 수 있다.”

 

1901년 10월, 백인 최초로 한라산 정상을 등정한 겐테는 정상 정복 감격을 누릴 틈도 없이 곧바로 아네로이드 기압계를 꺼내 한라산 높이를 측정했다. 분화구 맨 가장자리 높이가 해발 1950m. 이렇게 측정된 우리가 알고 있는 한라산 높이 1950m는 2008년 개정 고시되기 이전 100여 년 동안 공식기록으로 사용되었다.

 

“250년 전 난파된 네덜란드인들이 처음 보았던 이 산을 이제 너는 온갖 인내와 끈기로 그 정상에 올랐다. 몇몇 유럽인들이 지나가면서 들렀던 섬, 너 이전에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여기 넓은 바다 위의 신기한 화산을, 너는 스케치하고 사진으로 남기며 고도를 측량하지 않았는가?”

 

겐테가 본 분화구(백록담)는 예상 밖으로 작았다. 직경 400m, 높이 70m 암벽에 둘러싸인 작은 분화구였다. 호숫가에는 난쟁이처럼 작고 튼튼해 보이는 야생마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수도 없이 백록담에 가봤지만 단 한 번도 겐테가 말한 야생마들을 본 적이 없다. 노루인지, 사슴인지를 자주 보기는 했다.

 

한라산 등정을 마친 겐테는 ‘원치 않은 제주도 체류’와 목포로의 ‘위험한 귀향’ 이후 독일로 귀국한 다음 자신의 여행기를 1901년 10월 13일부터 1902년 11월 30일까지 ‘쾰른신문’에 실었다.

 

한라산 높이가 낮아지고 있다?

 

겐테 이전에도 한라산 높이를 측정한 사람들이 있다. 다만 이들은 주로 배 위에서 한라산 높이를 측정했다. 1787년 5월 21일 제주도 남단에 도착한 프랑스 라페루즈 제독의 함대가 측정한 한라산 높이는 약 1949m(1000투아즈)이다. 1845년 동아시아 해상을 탐험한 탐사선 사마랑호를 이끌고 제주도와 거문도 해역을 탐사한 영국 해군 함장 에드워드 벨처는 한라산 해발 고도를 1955m(6544피트)로 기록했다.

 

2005년 국토지리정보원은 GPS 측량을 통해 한라산 높이를 1947.26m로 바로 잡고 2008년 12월 한라산 삼각점 높이를 1947.269m로 고시했다. 현재 공식적인 한라산 높이는 1947.269m이다. 2016년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학술조사 조사진이 항공기에서 레이저를 쏘는 라이다 촬영 방식으로 측정한 한라산 최고 높이는 1947.06m다.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100년 만에 한라산 공식 높이가 대략 3m가 줄어들었다. 한라산이 매년 5~6차례 한반도로 불어 닥치는 태풍을 온몸을 막아 내느라 그랬다고도 하고,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백록담에 올라 하도 다져 진(답압, 踏壓)) 탓에 그랬다고도 했다.

 

남한 최고봉 1950m는 어디에?

 

현재 등산객이 접근할 수 있는 백록담 분화구 동쪽 능선 꼭대기 해발 고도는 1929.4m로 한라산 정상이 아니다. 실제 정상은 서벽 분화구 꼭대기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다. 1950m에 대한 상징성이 너무 크다 보니 표지나 안내판은 물론 탐방 지도에 달라진 높이를 표시하지 않고 고치지 않은 탓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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