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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와 비판이 사라진 그 결과...

인민재판이란 말이 있다. 6·25동란을 거친 우리 어르신 세대들에겐 흔한 말이다. 지주나 관리를 군중 앞에 내세우고 죄목을 나열한 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방식이다. 이미 군중 곳곳엔 앞잡이·모리배들이 포진하고 있다. ‘죽여라’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그게 전체 군중의 목소리로 뒤바뀌면 인민재판대에 오른 이는 총살형으로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무서운 현실이었고, 공포였다.

 

그들이 휘두르는 권력은 공포 그 자체였고, 아무 힘 없는 민중들은 그저 그 앞에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걸려들지 않는 게 최선이고, 잘 보여야 살 수 있었다. 춤추라면 춤추는 시늉을 해야 했고, 선동하는 소리엔 동조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 반대쪽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빨갱이’로 낙인 찍었는데 ‘아니다’란 헛소리를 하면 여지없이 총 개머리판이 날아왔다. 좌익분자 색출이 명분이었지만 평소 밉보였던 지식인이나 비판적 인사들은 ‘세트’로 청소됐다.

 

6·25 전란의 상처가 없는 듯 한 제주지만 4·3이란 아픈 상처는 토벌대와 무장대의 치열한 교전과정에서 깊게 패였다. 아군이 아니면 적으로 내모는 현실에선 사느냐 죽느냐만 존재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게 옳은 것인가는 생각하고 말할 여지도 없었다.

 

21세기다. 냉전의 시대도 아니요, 전란의 와중도 아니다.

 

곧이 곧대로 믿고 싶었다. 수많은 의혹이 불거졌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다.

 

그래도 제주도가 그렇게 열심히 나섰고, 정부 차원에서까지 거들었는데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했겠는가라며 스스로 위안까지 해봤다. 물론 ‘기다려보라. 낱낱이 밝히겠다’는 제주도의 해명이 있었기에 내심 기대도 해봤다.

 

이유는 하나였다. 제주도는 그래도 우리의 자랑이고, 우리가 나고 자란 꿈의 터전이기에 몇몇 인사들의 실수와 몇몇 인사들의 폄하로 흠집나리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믿는 게 어려워졌다. 기다리는 게 지쳤다.

 

이참에 박수를 보낸다. KBS <추적60분>팀의 노고에 제주인으로서 고맙게 생각한다. 늦었지만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동안 말도 많았고, 잡음도 거셌던 게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따른 파장이었다. 의혹이 꼬리를 물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리고 <추적 60분>은 그 의혹의 본류를 하나 하나 풀어냈다.

 

방송 다음날 제주도에선 뉴세븐원더스 재단 베르나르 베버 이사장이 한국을 찾아 해명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서울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의 회견을 녹화영상으로 봤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회견기사도 샅샅이 읽어봤다.

 

가관은 이런 걸 두고 가관이라고 한다. <추적60분>에 따른 베버의 해명을 보고, ‘해명’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다. 반복되는 부인과 궁색한 변명, 그리고 그 탓에 추가로 이어지는 의혹만 또 양산했을 뿐이다.

 

어떻게 이리 됐을까?

 

7대 자연경관 선정을 향해 제주도가 줄달음칠 때 제주엔 ‘상식’이 자리잡을 수 없었다. 혹이라도 문제를 제기하면 '빨갱이' 낙인 찍듯 몰아세울 분위기였고, 실제로 그랬다. 공무원이 근무시간 내내 전화투표에 매달려도 ‘애국이자 애향심’이었고, 마을마다 경쟁하듯 현수막을 내걸고 전화투표 총력전에 나설 때도 ‘애국이자 애향심’이었다. 제주로 관광을 왔든, 출장을 왔든, 고향방문을 왔든 가릴 것 없이 그들은 전화버튼을 누르지 않고선 제주 밖으로 떠날 수 없었다. 그걸로 제주와의 인연을 강조해야 했다.

 

‘1인1표’도 아닌 무한 중복투표가 가능한 게임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에게 시키면서 “제주도가 선정되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말해야만 했다. 솔직히 그 ‘중복투표 허용’인 투표방식에 열심히 매달린 우리들을 보고 아이들은 무얼 배웠을까라고 생각하니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제주에서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판적이었던 한 언론에게 제주도는 친절하게 ‘광고게재 중단’으로 화답했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7대 자연경관’ 이벤트에 동조, 열심히 격려와 성원을 보낸 언론에겐 ‘광고게재’란 당근이 쥐어졌다는 소리가 된다. 어찌 보면 ‘7대 자연경관’ 이벤트가 뒤탈만 없었다면 제주도 지방정부도, 신문도, 방송도, 통신사도, 그리고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 재단도 모두 ‘행복한’ 일이었을 것 같다.

 

행정전화비만 400억원을 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각종 홍보·광고예산은 빠진 금액이다.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우리가 낸 세금을 갖고 쓴 거다. 이것도 모자라 민간부문에서 돌린 전화비용까지 합치면 순간 1,000억원 정도의 돈이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예측은 쉽다.

 

시민단체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한다고 한다. 제주도감사위원회에 감사청구를 했는데 감감 무소식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근자열(近者悅) 원자래(遠者來)-. 가까이 있는 제주도민들이 마음이 괴로운데 멀리 있는 사람들이 찾아올 턱이 없다. 애당초 그저 민간부문이 벌일 이벤트를 지원하는 정도로 끝났으면 될 일을 근대화기 새마을운동을 하듯 총력전을 폈기에 후폭풍이 이리 거세져 버렸다. 관광브랜드 급상승을 기대했는데, 최소한 한국에선 ‘희대의 사기를 당한 제주’가 돼버렸다. 브랜드 수직하락이다. 솔직히 부끄럽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빨갱이’ 소리에 짓눌려, 인민재판식 ‘옳소’란 군중에 뒤섞여, 체념하고 방조·방관했던 건 우리다. ‘완장’ 찬 인간들의 권력에 눌려 조금이라도 이익을 챙겨보고자 눈치를 본 것도 우리다. 이런 행정이, 이런 리더십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도 결국은 우리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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