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망각(忘却)의 동물이라고 하니 그럴 수 있다. 세상일이 워낙 변화무쌍하니 범인(凡人)들이 그 세세한 변화의 계기와 시작점을 기억한다는 건 사실 무리다. 하지만 모두가 다 잊더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도 한 나라, 한 지역을 이끈 지도자가 자신이 내놓은 정책으로 인해 해당 국가와 지역에 엄청난 변화가 나타났다면 아마 그의 뇌리에 그 정책에 대한 기억은 꽂히고도 남는다. 한때 ‘업적’이라고 자부하던 그 정책이 비록 ‘졸작’으로 후일 판명났다손 치더라도 그가 그걸 잊을 리는 만무다.
1998년 민선 2기 지사로 선출됐던 이는 2002년 6월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자 의욕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2002년 1월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출범했지만 아마도 그에게 당시의 제주 행정체제는 곳곳에서 암초와 같은 걸림돌이었고,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마침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이 터지면서 '시·군의회 무용론'이 일던 때였다. 더욱이 도지사였던 그는 그 시절 기초단체장인 제주시장과 각종 정책추진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11년 전이다. 2002년 9월17일 도지사였던 그는 제주발전연구원에서 작성한 ‘제주도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위한 기본계획’을 근거로 본격적 행정구조 개편작업을 추진한다고 언론에 알렸다. 그는 그 시절 의회 도정질의 답변에서 “지역적 한계 극복을 위해 제주도의 행정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과거를 잊지 않은 박희수 제주도의회 의장이 지난 22일 “시·군을 없앤 단초는 현 도지사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은 바로 이 대목에 근거한 것이다.
제주발전연구원은 당시 여러 안을 제시했다. 제주·서귀포시와 북·남제주군 체제를 유지하되 도와 시·군간 사무를 재조정하는 방안과 남·북제주군을 동·서제주군으로 개편하는 방안, 그리고 제주도를 광역 제주·서귀포시 등 2개 시로 통합하는 방안, 시·군만 남겨두고 도를 폐지하는 방안이다. 그 외 시·군을 폐지하되 광역 도 안에 읍·면·동만 남겨두거나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시장·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주도는 당시 “연내 도지사 직속으로 ‘제주도 지방정부 개혁위원회’를 구성, 2004년까지 ‘가칭 제주도 ’특별도‘ 설치에 관한 특례법’ 제정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행정구조 개편은 2004년 중 도민투표에 준하는 방법으로 확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그 후로 그 정책은 수많은 파장과 논란을 불러왔다. “지방자치 본뜻과 역행하는 어이 없는 발상”이란 시각과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 개혁”이란 시각이 첨예하게 맞섰다.
2002년 10월에 만들어진 제주도 행정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조문부 제주대 총장)는 다음해 4월에 이르러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개편방안 용역을 맡겼다. 그해 10월에 이르러 지방행정연구원은 단일계층의 광역체제로 ‘제주특례시’ 모델을 제시하고, ▶시·군을 폐지하고 광역시에 읍·면·동을 두거나 ▶당시 4개 시·군을 행정구로 전환하는 방안 ▶4개 시·군 경계를 조정해 남·북제주군을 동·서제주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미 상황은 꼬여가고 있었다. ‘특별도’와 ‘특례시’ 등 ‘특별’에 무게를 두고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행정구조만 개편하면 만사가 풀리는’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중앙정부로부터 특별한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추진한 ‘특별도’ 구상의 한 방편으로 거론되던 시·군폐지 논의가 돌연 ‘목표’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특별도’ 구상은 연원이 있었다. 애초 행정구조 개편을 추진한 지사의 전임자가 1997년 7월 민선 1기 도지사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중앙정부의 관점에서 제주개발을 위한 체계와 내용을 담고 있는 ‘제주개발특별법’을 전면 개정해 세계화·지방화 시대에 걸맞은 지역 종합발전 및 지원법의 체계와 내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에는 21세기 제주도의 위상과 역할, 지방행정체제의 실효성 확보와 시범자치지정 개념의 도입, 자율적인 조례제정권의 확보, 제반 경제규제 입법에 대한 특례의 설치, 교육·대학·경찰 등 국가권한의 시범적 재배분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라고 거론한 사안이다. ‘특별자치도’ 구상의 발원이자 민선 1기 제주도지사가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에게 “독립운동하느냐”고 타박을 들었던 이유다.
그러나 그 구상은 그렇게 오로지 행정시스템 개편논의로 둔갑하더니 논란 속에 아무런 진전도 없이 시간만 질질 끌었다. 오히려 2003년 2월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제주의 지역토론회에 참석, “제주도가 먼저 분권과 자치권에 강한 의욕을 보인다면 제주도를 ‘분권의 시범도, 자치권의 시범도’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그해 10월31일 제주도민과의 대화에서 ‘1국 2체제에 버금가는 특별차지도 지원구상’을 밝히면서 다시 원론적인 ‘특별자치도’ 재론의 단계로 돌아가는 듯 했다. 제주도는 그 시절 미로 속에서 헤매는 꼴이었다. 더욱이 그 일을 추진하던 지사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으로부터 당선무효형을 확정선고 받아 2004년 4월 낙마했다.
행정계층구조 개편이 급물살을 탄 건 2004년 5월 재선거로 취임한 김태환 도정에 이르러서다. 2년여를 질질 끌어온 문제를 그는 어떻게든 매듭짓고 싶었던 것 같다. 무성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필요도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 측에서도 제주에서 그동안 논의돼온 ‘자치분권’ 문제는 중대사안이었다. ‘행정학계의 마이너리티’로 불리던 국민대 교수 출신인 노무현 정부의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은 제주에서의 논의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싶었다. 물론 제주차원의 시범적 성공이 필요했다. 그 점에서 노무현 정부와 비록(?) 한나라당 후보로 당선된 김 지사는 그런대로 ‘죽’이 맞았다.
그후론 우리가 잘 아는 일정대로 돌아갔다. 2005년 3월에 이르러 김태환 도정은 여론조사를 거쳐 행정구조 개편 방향을 2개의 안으로 압축했다. 2005년 7월27일 주민투표의 보기가 된 ‘점진안’과 ‘혁신안’이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거릴지 모르지만 점진안은 당시 4개 시·군 체제를 유지하는 현행 유지안이었고, 혁신안은 지금의 시스템인 바로 2개 행정시만을 둔 제주도 단일 광역체제다.
선출직 시장·군수 등이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구더기(비리 시·군 의원)가 무서워 장독(의회)을 깨부수듯 풀뿌리 민주주의를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란 항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점진안과 혁신안으로 포장된 행정계층구조 개편안은 주민투표에 부쳐져 투표참가자의 57%인 8만2919명의 찬성으로 혁신안이 채택됐다. 주민투표법 시행 후 처음 치러진 주민투표였다.
그 결론을 근거로 제주도는 다음해인 2006년 민선 4기 지방선거부터 도지사와 도의원만을 선출했다. 4개 시·군은 폐지됐고, 시·군의회도 사라졌다. 남·북제주군은 각각 제주·서귀포시로 통합됐고, 2개 행정시의 시장은 도지사가 직접 임명했다.
그러나 예상한 문제는 고스란히 나타났다. 2006년 7월1일 4개 시·군을 걷어 치우고 단일 광역자치단체인 특별자치도가 출범했지만 ‘무늬만 특별자치도’란 비판이 수없이 이어졌다. 이미 시민단체들은 2003년 행정계층 구조 개편 논의가 불거질 무렵부터 “주민의 생활편의를 위한 서비스 확대와 자치·참여 확대에 대한 구상은 보이지 않고 목적도 불분명한 관료사회의 자의적 경계획정 논의만 판치고 있다”고 비난했었다. 당시 8개 제주도내 시민단체로 구성된 ‘자치개혁과 지방분권을 위한 제주협의회’는 2003년 10월14일 도민토론회 끝에 “행정구조 개편 방향이 제대로 된 자치의 실현이 아니라 국제자유도시 운운하며 투자자에 대한 통합 행정서비스만을 고려하고 있을 뿐 도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애초에 잘못 꿰맨 단추는 어줍짢게라도 옷을 입은 것만으로 만족할 노릇이었다. 기괴한 몰골, 우스꽝스런 모양의 특별자치도 제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민 민원불편이 곳곳에서 제기됐고, 수사권 조차 없는 기형적인 자치경찰이 등장했으며, 행정시인 제주·서귀포시 공무원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자 늘 자치권을 가진 제주도만 쳐다봤다. 오죽하면 시위를 하는 단체도 권한이 있는 제주도청 앞으로만 몰려들 뿐 제주·서귀포시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더욱이 도지사에 의해 임명되는 제주·서귀포시장 자리는 지금도 그렇듯 언제나 '선거공신' 몫이었다. 1~2년 단위로 그 자리를 꿰찬 시장이 어떤 일을 했는지도, 무슨 사업을 폈는지도 아는 이가 드물다. “도 국·과장보다 못한 시장”이란 소리가 이젠 정설로 굳어져가는 이유다.
그만큼 제주도민들은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을 염원했다.
황당하다는 건 이럴 때 나오는 소리다. 2010년 6월 선거판의 화두는 바로 이 문제였다. 그리고 당선자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여겨진 후보였다. 그리고 그는 11년 전 해왔던 것처럼 다시 여러 학자들로 행개위(위원장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를 꾸려 3년여를 용역과 논의를 진행하는데 다 썼다. 그리고 불과 내년 선거를 10개월 앞두고 ‘행정시장 직선제’란 간판을 들이댔다.
2010년 선거시절 “‘기초자치단체·자치권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운 건 맞지만 엄연히 제주형 특별자치 모형 안에서의 설계를 말했고, 임기 초반부터 줄곧 행정시장 직선제를 설파했다”며 “오랜 기간 행개위의 연구용역 결과를 받아들여 추진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친절하게도 “용어와 표현상의 오류와 혼동은 다소 있었다”고 시인했다. 그리곤 곧바로 주민설명·보고회에 착수, 10여일 만에 의견수렴 절차를 뚝딱 마무리했다. 그 마저도 “공무원을 동원한 자리 채우기”란 비난을 들으면서다.
한 겨울 보는 공포영화처럼 느껴진다. “난 지난 가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악령의 소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묻고 싶다. 헌법상, 국내 법률체계상 누구도 법적 지위를 인정해주지 않는 ‘직선 행정시장’을 선출하면 ‘제주형 특별자치’가 성취되는 것인가? 11년 전 시·군 개편과 폐지를 골자로 한 행정구조 개편 논의의 물꼬를 터놓고 이제 와서 ‘행정시장’만 주민이 선출하도록 놔두면 잃어버린 ‘자치’의 주민염원이 진정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가? “내가 말한 건 원론적 기조자치단체의 부활이 아니라 제주형 자치모형 안에서의 기초자치권 실현”이라고 주장하면 그게 진정 '자치'가 맞긴 한 건가?
1972년 유신헌법을 내세워 민주인사들에 대한 억압과 탄압의 광풍이 몰아칠 무렵 독재의 악령에 사로잡힌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식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식 민주주의가 진정 민주주의인가?"란 물음과 같은 격이다.
묻고 싶은 이들은 또 있다. 11년 전 행정개편 권고안을 만들어낸 다수가 사실 행정학자들이었고, 그들은 이번에 마련한 ‘행정시장 직선제’ 안을 권고할 때도 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주요인사들은 동일인이다. 학자적 양심은 그때 그때 다른가? 그들의 학문적 식견은 용역을 발주한 기관의 입맛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가?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의 전·현직 지사는 지금 이 문제와 맞물려 서로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현직이 공약이행 논리에 급급한 나머지 ‘행정시장 직선제’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반면 주민투표를 치러 특별자치도를 출범 시킨 다른 전직 지사는 “특별자치의 완성을 향한 전진”을 부르짖고 있다. 여기에 애초 ‘특별도 발상’을 제공한 다른 전직 지사는 “탐라 천년 이후 하늘이 준 기회를 되살리기 위한 과감한 전략수정”을 설파하고 있다.
어느 편에도 가담하고 싶지 않다. 다만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될 일이다. 거짓과 진실을 ‘편’의 문제로 혼동하면 재앙은 기필코 다시 찾아온다. 망각의 동물이 인간이기에 행복한 점도 있지만 그 망각으로 불행을 반복하는 것도 인간이다. 그래서 인류는 역사를 기록한다. 잊을 건 잊는 게 좋지만 기억할 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제주도가 여론조사를 앞두고 ‘행정시장 직선제’를 알리는 여론몰이 총력전에 나섰다고 한다. 제주도민 모두를 ‘망각의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제이누리=양성철 발행·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