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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결과는 민주적 제도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는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다. 미국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다. 폴란드 출신으로 이제 만 72세다. 민주주의의 본질, 민주화 이행의 조건, 민주주의와 시장의 관계 등에 관한 주요저작을 냈다. 한국정치학계에서 이론가로 꼽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스승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미국 유학시절 박사학위 논문을 지도한 이가 바로 그다.

 

그는 2010년 말 아프리카의 5개 신문과 인터넷 미디어 아프로온라인(Afronline)과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코트디부아르·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 아프리카 지역에서 민중의 정치적 열망이 번지면서 정치적 위기와 대중혁명으로 나라마다 체제가 흔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선거’(election)와 ‘민주주의’(democracy)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직에 재임 중인 자가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고, 패배하면 사무실을 떠나는 것이 민주주의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적어도 정치적 자유를 유지하면서 갈등을 평화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것은 갈등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내전(civil war)보다 더 나은 방법임이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다. 언제나 청렴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민중(people)들이 평화와 자유 속에서 살도록 한다.”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짚어보다 보면 두 가지가 또렷해진다. 적어도 민주주의는 이념(ideology)이 아닌 제도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민주주의를 유지·작동시키는 데 있어서 선거는 대단히 중요한 제도적 장치라는 것이다.

 

좀 쉽게 풀어 쓰면 우리 사회엔 언제나 갈등이 있을 수 있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무력으로 서로를 제압하기 위해 총·칼을 동원하는 것보다 선거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가 된다. 이를 깨끗이 인정하는 것이 민주적 해결방식이란 소리다. 완벽하진 않지만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는 차선책이 민주주의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쉐보르스키가 선거에 대해 설파한 저서의 제목도 『Paper Stones』다. 투표용지를 저항의 상징인 ‘돌’에 빗댄 것이다.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싶으면 투표함을 향해 돌을 던지라는 메시지다.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죽기 살기로 싸운다. 여러 정파가 있지만 그 힘은 결국 여와 야란 두 축으로 양분된다. 두 세력 모두 선거 때만 되면 상대방이 집권했을 때 마치 나라가 도륙이 나고, 민생이 파탄나는 것처럼 서로를 공박한다. 유권자들에게 그렇게 설득한다. 이에 맞춰 언론도 좌파와 우파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싸운다. 민주 대 반(反)민주의 대결구도로 만들어 선(善)과 악(惡)의 싸움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어떤 언론은 친절하게 한반도 지도에 색깔을 입혀 마치 삼국지를 연상하는 영토구분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지역대결을 조장하는 것이다.

선거종반전으로 접어들 무렵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전남대 강연에서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했다. "(총선에서) 진영 논리에 빠져서 정파적인 이익에 급급한 분이 아닌, 국민과 국익을 생각하는 그런 분을 뽑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안 원장은 "사회가 커지면 다수의 개인 의사가 반영되기보다는 소수의 조직화한 이익집단 의사가 반영되기 쉽다"며 "그걸 물리치고 다수 개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적극적인 선거 참여"라고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선거에 대한) 가이드 라인은 있을 수 있다. 자꾸 과거에 대한 이야기보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분이 있다면 적격자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원장은 또 "대립, 분노보다 원만하고 따뜻하며 인격이 성숙한 분을 뽑는 것이다"며 "그런 면에서 어쩌면 정당, 정파보다는 오히려 개인을 뽑는 것이 낫다"고 부연했다.

살벌한 선거판에서 이 얘기는 대립의 양축인 정당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오히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강연을 전해들은 대학생들은 환호했다. 대학 강당을 가득 메우고, 인터넷 공간에서 그를 추종하는 세력과 소통하는 팬들은 열광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진술로 받아들였다.

 

그의 강연내용을 두고 반응이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답은 바로 안 원장의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영 논리에 빠져서 정파적인 이익에 급급하다 보니’ 그런 것이다. ‘국민과 국익을 생각하면’ 될 일을 정당정치의 영역에선 진영논리로 문제를 보고, 유권자들마저 그 진영논리에 갇혀 같이 편을 가르고 다툰다. 그러다 보니 무한갈등만 있고, 무한 분열만 있고, 도무지 통합이 어렵다. 공익을 추구하는 교집합을 봐야 하는데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적 이익만 보고 서로를 향해 삿대질만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통합’과 ‘제3의 길’이 출현할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인 것이다.

 

4월11일 우리를 대변할 국회의원이 확정된다. 그 선거는 쉐보르스키의 표현을 빌면 ‘마지막 의식’(final ceremony)이다. 선출된 사람들은 국회에서 대한민국의 진로를 논의한다. 그 일을 할 그들의 수준은 유권자인 우리들의 수준과 비례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을 지역 간 영토구분선의 틀로, 좌·우의 틀로, 보수·진보의 틀로, 여·야의 틀로 선택한다면 국회에서 그들의 역할도 그 틀에 한정된다. 그 틀을 벗어나고 싶어도 만약 그렇게 했다간 다음 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표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쉐보르스키의 얘기로 다시 돌아간다. 그는 아프리카 언론만이 아니라 국내 언론과도 이메일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지난해 초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다.

 

그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민주주의론에 대해 더 정확한 정의를 내린다.

 

“민주주의는 규칙에 따라 갈등하는 메커니즘이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결론에 도달하고 이 결론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구조에 불과하다. 규칙이 중요하긴 하지만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과물은 투입물(inputs)에 의존한다. 한 사회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이 제도적인 통로로 흡수되고, 이러한 갈등들이 규칙에 따라 전개될 때 민주주의는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경제적 평등이나 권리를 보호하게 될 것인가 아닌가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집단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적 혹은 경제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주체는 민주주의 자체가 아니라 민주적 제도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변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고루한 틀은 곤란하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철이 없다고 하는 것도 맞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우리네 기성세대도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을지 모른다.

 

늘 하던 대로만 하면 결국 우리 제주도 역시 그 수준에 머무른다. 돌아오는 답은 변방이고, 막내다. 고작 1% 지역으로 취급받는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에서 대접받고 싶으면 제주도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다른 논리’가 강한 곳이어야 한다. 무작정 어느 정당, 어느 진영, 어느 지역의 틀로만 선택한다면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거기에 걸맞은 답만 돌아온다.

 

그게 싫다면 변화해야 한다. 보는 눈부터 달라야 한다. 새로워야 한다. 제주도의 변화는 우리 제주도민이 달라질 때 시작된다. 그 때부터 미래는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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