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정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1)

  • 등록 2022.01.11 10:27:16
크게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주역이 말하는 지혜와 철학(2)

◆ 건괘(乾卦)(1)

 

건은 하늘이다. 건(乾)괘가 위아래로 되어 있다. 건(乾)은 원형이정(元亨利貞)〔으뜸 원, 형통할 형, 이로울 리, 곧을 정〕이다. 「문언전(文言傳)」에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원은 착함이 자라는 것,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인을 체득해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에 합치시킬 수 있으며,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군자는 이 4덕을 행하는 까닭에, 건은 원형이정이라고 한다.”1)

 

원형이정은 보통 만물이 처음 생겨나서 자라고 삶을 이루고 완성되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말한다. 여기서 원은 만물이 시작되는 봄(春), 형은 만물이 성장하는 여름(夏), 이는 만물이 이루어지는 가을(秋), 정은 만물이 완성되는 겨울(冬)에 해당된다고 한다. 원형이정은 인(仁)·의(義)·예(禮)·지(智)를 뜻한다고도 한다.

 

건(乾)은 하늘(天)을 상징한다. 높고도 크다. 무궁무진하다. 정도를 헤아릴 수 없다. 변화무쌍하다.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시작한다. 끊임없이 순환한다. 한결같이 규칙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강대함에 탄복하고 하늘의 만능과 신성에 감복한다.

 

이렇게 하늘이 위대하다면 사람들은 마땅히 좇아야 한다. 순응하여야 하고 우대하여야 한다. 근원을 밝혀야 한다.

 

하늘은 혜안으로 우리 모두를 시시각각 관찰하고 있다. 당신이 힘들 때 사랑의 마음을 바치면 묵묵히 두터운 은혜를 내려주실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자리를 정하여 행동하면 행복의 꽃은 당신을 위하여 피어난다.

 

‘자리’가 정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당신은 인생의 길에서 방향을 잃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은 여태껏 자신의 ‘자리’ 문제로 전전하거나 흐리멍덩해 있지는 않는가? 당신이 그것 때문에 더 이상 멍한 상태로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주역(周易)』이 당신의 삶에 복음을 내릴 것이다.

 

백조 알은 나면서부터 만리장천을 날 수 있는 백조가 되기로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 백조 알이 닭장에 버려져 미운 오리새끼가 되더라도 끝내는 커다란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게 된다. 당신이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수확할 것이요 콩을 심었다면 수확할 때 보이는 것은 샛노란 콩알이다.

 

이것이 정해진 자리다. 이런 자리는 한 번 정해지면 변하지 않는다. 숙명적이다. 천도(天道)요 자연이다. 그러나 어떤 자리는 시간과 지점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윤통성이 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다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오른다. 이전 성적에 만족해 교만에 빠져 하루 종일 잠만 잔다면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뒷사람이 벌떼처럼 몰려와 당신을 앞지르게 된다. 자신보다 못한 무리와 어울려 다니면서 그럭저럭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며 꾸준히 공부하지 못하면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날이 가물 때 강물이 줄어들어 수위의 경계선에 한참 못 미칠 때 강물은 둑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마실 물을 얻지 못하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바람과 비가 알맞아 강물이 많지도 적지도 않고 수위가 위험경계선을 벗어나지 않고 내렸다 올랐다 한다면 정치가 잘 이루어져 백성이 화합하는 국태민안의 세상을 이루게 된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고 산의 홍수가 위력을 떨칠 때에는 강물은 급격히 불어나서 수위를 넘어 둑을 허물게 되면서 재앙이 닥친다.

 

그런 ‘자리’는 쉽게 변한다.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기 인생의 자리를 정해야 할까?

 

『주역』 속에서 구체적인 답을 찾아보자.

 

『주역』은 나이에 따라 다른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든 것이 과거를 이어 미래를 열어 간다. 서로 맞물려 있다. 서로 위배돼서도 안 되고 초월해서도 안 된다. 받아야 할 고통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 세상 경험할 때 매 걸음마다 정성들여야 한다. 일정한 범위(한계)를 초월해서는 안 된다.

 

“잠룡은 쓰지 마라, 양이 아래에 있다.”2)

 

인생이 시작될 때의 자리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 시작하기 전에, 아직 날개를 다 펴지 못했을 때, 절대 우쭐거리지 말고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도 말아야 한다. 약삭빠르게 굴지도 말고 잔꾀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성실히 힘써 공부해야 한다. 영양을 흡수해 자신을 강화시키고 재능을 닦아야 한다.

 

왕안석(王安石)은 어떤 문장에서 방중영(方仲永)을 신동이라 하였다.(『상중영(傷仲永)』) 어릴 적 다섯 살 때 물건을 가리키면 곧바로 시를 쓸 줄 알았기에 그렇다. 실로 보기 드문 천부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부모가 더 좋은 교육을 시키고 바르게 이끌었다면 천하의 대문호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부모는 아이 앞에서 본보기가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은 물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잠룡은 쓰지 말아야’할 때에 부모는,
“매일 중영을 도처에 데리고 다니면서 마을사람에게 자랑하기만 하면서 공부시키지 않았다.”

 

청춘을 허비하게 만들면서 천부적 자질은 사라져 갔다. 사고력은 매몰되었다. 끝내,
“재능이 완전히 사라져버려 일반인처럼 되어 버렸다.”

 

실로 슬프고도 애석한 일이다. 아니 무섭기까지 하다.

 

이러한 비극은 이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다. ‘망자성룡(望子成龍)’, ‘망녀성봉(望女成鳳)’3)이라 했던가. 아이가 성공하기를 비는 부모의 절실함이 너무 일찍 자식을 앞세워 자기 뜻대로 춤추도록 만들고 있다. 자식이 공부를 포기하게 만들면서 아이의 청춘을 망가뜨린다. 어찌 걱정스럽고 두렵지 않으랴.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덕의 베풂이 넓다.”4)

 

이때의 용은 이미 땅에서 올라와 광야에 나타났다. 용은 지하의 정화를 흡수해 ‘우모(羽毛)’가 풍성해 졌다. 충분한 영양을 받아들였기에 천지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한다. 덕행으로 천하에 감사하여야 한다. 은혜로 만물에 널리 베풀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의 신체가 건장해지고 능력이 굳건해 졌으면 집에서 나와 사회로 들어가라. 자신의 재능을 만물생령에게 공헌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우러러 볼 것이다.

 

일대의 효웅 조조(曹操)는 정치, 군사, 문화 모든 방면에 거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현룡재전’이란 문장의 의미를 최대한으로 운용하였다. 조조는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하늘의 뜻〔천도(天道)〕을 위함’이라는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명확하고 엄격한 군령을 내린다.

 

“모든 장병은 훈련하고 행군할 때 농작물을 밟아서도 안 되고 백성을 때리거나 욕해서도 안 되며, 부녀자를 희롱해서도 안 되고 백성의 이익을 마음대로 차지해서도 안 된다. 명령을 위반하는 자는 참수한다.”

 

어느 날, 행군하다가 조조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놀라 이리저리 날뛰면서 보리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조조는 슬픔이 극에 달했다. 곧바로 말에서 내려 군사법관 앞에 꿇어앉아 자신을 군법으로 다스려달라고 요청하였다. 군사법관은 감히 법령을 집행할 수 없었다.

 

“승상, 어찌 죄를 논하십니까?”

 

조조는 낯빛을 굳히며 엄숙히 말했다.

 

“내 스스로 법을 만들었는데 어찌 복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을 마치자마자 보검을 꺼내 자결하려 했다. 주변 장수들이 극구 말리자 조조는 자결하려던 마음을 버리고 군졸들에게 말했다.

 

“내가 비록 참수하지는 못하더라도 치죄는 해야 한다.”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보검을 빼어들고 손쓸 틈도 없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 땅에 내던졌다. 옛날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관념이 있었다. 머리카락은 부모에게서 온 것으로 부모의 정혈을 받은 것이니 인격과 존엄을 상징하였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스스로 목을 베는 것과 같았다. 조조는 그런 뜻으로 머리카락을 잘라내었다. 그런 후 군장이 삼군에게 알렸다.

 

“승상께서 보리를 밟았으니 마땅히 참수해야하나, 지금은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듣는 장병은 옷깃을 여미었다. 이때부터 장병들 사이에 조조의 명망이 높아졌다. 그렇게 조조는 대업을 쌓은데 굳건한 기초를 닦았다.

 

이것이 바로 “용이 밭에 나타났으니 덕의 베풂이 넓다”의 매력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君子行此四德,故曰,乾,元亨利貞.

 

2) 潛龍勿用,陽在下也. 

 

3) 아들은 용이 되기를 바라고, 딸은 봉황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인데,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4) 見龍在田,德施普也.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jeju.ac.kr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노형5길 28(엘리시아아파트 상가빌딩 6층) | 전화 : 064)748-3883 | 팩스 : 064)748-3882 사업자등록번호 : 616-81-88659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제주 아-01032 | 등록년월일 : 2011.9.16 | ISSN : 2636-0071 제호 : 제이누리 2011년 11월2일 창간 | 발행/편집인 : 양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성철 본지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1 제이앤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uri@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