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괘(姤卦)
구(姤)는 약속하지 않고 만나는 것이다. 우연히 상봉하는 것이다. 만남은 인연이다. 찬스다. 좋은 기회이니 성공의 시작이다. 만남이 있어야 혈육 간의 정, 우정, 애정이 있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만남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만남이 늘 좋다고만 할 수 없다. 좋지 않은 만남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동무를 사귀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우리에게 말한다 : 만물에 두루 미치는 바람처럼 하라. 자신의 부드러움, 배려와 관심,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과 만나라.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게 된다.
만남은 인연이다. 소중하면서도 진귀하고, 쉽게 바꿀 수 없는 인연이다.
인연은 한 번 찬스가 주어지기도 하고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사람사이에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삶에서 엮어지는 많은 사랑과 원망, 얽히고설킨 정 또한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인과 관계다.
세상은 바둑과 같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나고 알게 되며, 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필연이면서 우연이다. 어둠 속에 본래 인연이란 것이 있다.
나는 장강 상류에 살고
그대는 장강 하류에 산다네.
매일 그대를 그리나 보지는 못하고
같이 장강의 물만 마실 뿐이라오.
이 강물은 언제나 마르고
나의 한은 언제나 끝날까.
오직 그대 맘 내 맘과 같기를 바랄뿐,
그리워하는 이 마음 저버리지 마시라.1)
장강 상류에 사는 그대와 장강 하류에 사는 나는 같은 강의 물을 마신다. 지연(地緣)이다. 애모하기에 두 나뭇가지가 한데 붙어서 하나로 되니, 그것을 천 리의 인연도 실 한 오리에 맺어진다. 남녀 간의 연분은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한다. 인연이 있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결국 맺어지게 되지 않던가.
불가에서는 말한다 : 같은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인연이다. 배를 타는 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배 위에 올라 함께 있다가 아무 일도 없이 강기슭에 닿은 후 각자가 자기 길을 가면 인연의 끝이다. 그 인연은 얕은 것이다. 배가 기슭에 닿을 때 갑자기 비가 와서 허선(許仙)이 백낭자(白娘子)에게 우산을 빌려주는 것과 같은 일이 생긴다면 연분의 끈이 맺어지는 것이다. 인연이다.
“백 년을 수양하여야 같은 배로 강을 건널 수 있고 천 년을 수양하여야 같은 베게로 잠을 잘 수가 있다.”2)
사람은 인연을 따라 세상에 왔다. 당신이 태어난 그 날부터 누구는 당신의 부모가 되고 누구는 당신의 형제가 된다. 이것이 친연(親緣)이요 혈연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다. 선택할 수 없다. 주어진 것이다.
이후에는 당신의 선생님, 동학, 이웃, 동료가 주마등처럼 당신의 눈앞에서 흘러간다. 이 또한 인연이다. 물론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십중팔구는 인연에 따라 모이고 인연에 따라 흩어진다.
어떤 때에는 당신이 주동적으로 좋은 친구나 좋은 동료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것들은 당신 어깨를 스치며 지나갈 뿐이다. 찰라 사이에 당신 눈앞에서 사라진다. 길 가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람 사이의 인연으로, 생활 중에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고 생활 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당신과 서로 마음이 통하기도 한다. 서로 붙잡아주기도 한다. 나중에 공간이 다르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인연은 깊어지기도 하고 얕아지기도 한다. 얕아지면 결국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인연은 실리를 거절한다. 우정에 있어서는 진정으로 표현되고 애정에 있어서는 청순함으로 표현된다.
인연은 가호(애호)가 필요하다. 말 없는 계약이다. 심령의 부름과 같다. 인연이 있는 까닭에 세상의 공명 있는 사업이 성공한다. 애정이 충만한, 원만한 많은 혼인가정이 존재한다. 사람끼리 왕래가 빈번해진다.
인연이 있어 함께 가기에 우리 감정의 별 속에는 영원을 맺어 마음을 합치는 승낙이 생겨난다. 비익조와 같은 낭만이 생겨난다. 인연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것에서 사람 사이의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다채로운 인생이 더 풍부해진다.
삶에 만남이 어찌 없을 수 있는가. 만남은 인연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 인연에 따라 오면 거절할 수 없고 인연에 따라 가면 아쉬울 일도 없다. 인연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인정의 아름다움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사람과 화목할 수 있다.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다. 아름다운 인연들을 넓게 만날 수 있다. 인정의 아름다움을 함께 얻을 수 있다.
만남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선택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친구가 있다. 어떻게 친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택권이다.
1) 我住長江頭,君住長江尾.日日思君不見君,共飮長江水.此水機時休,此恨何時已.只愿君心似我心,定不負相思意.(북송 이지의(李之儀), 『복산자(卜算子)』)
2) 百世修來同船渡,千年修來共枕眠.(『증광현문(增廣賢文)』)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