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괘(剝卦)
박(剝)은 싹둑 자르다, 벗겨내다, 쇠패(衰敗)하다 뜻이다. “삼십년은 황하의 동쪽이요 삼십년은 황하의 서쪽이라.”(『유림외사(儒林外史)』)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처럼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발전과 쇠패는 결국 상대적이다. 정상적이다. 발전했다고 우쭐거릴 필요 없고 쇠패했다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태연하게 맞이하라.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라. 적절하게 도움을 구하면 난관을 빨리 벗어날 수 있다.
쇠패하게 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다 ‘연기처럼 없어지거나 사라지’게 된다. 얼마나 많은 산이 평지가 됐는가? 높다란 건물이 얼마나 많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가. 그렇다. 견고한 성벽도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리 완벽하다 하여도 결국은 쇠패(衰敗)할 시간은 도래한다.
속세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 당신이 사물 발전의 규율을 파악했다면 쇠패는 늦출 수 있다. 심지어 쇠퇴(衰退)해 가는 형세를 만회할 수 있다.
쇠패를 마주하면 우리는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면 된다.
『주역』은 말한다.
“박(剝)은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
“박(剝)은 깎아냄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것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멈추는 것은 상을 보았기 때문이고 군자가 사라지고 자라나며 차고 빔을 숭상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벗겨내는 것은 싹둑 잘라낸다, 없앤다는 뜻이다. 괘가 음이 다섯이고 양이 하나이니, 음이 처음 아래에서 생겨 점점 성대한 극치까지 자라나 여러 음이 양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음이 양을 바꾸는 것이다. 행동하는 데에 불리하다. 소인이 일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온순하다. 걸음을 멈추고 나아가지 않는다. 상황을 관찰하여야 한다. 군자는 쇠락과 생장, 만족과 결손을 중시한다. 그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이화희(李化熙, 1594~1669)는 명나라 숭정(崇禎) 7년에 진사가 됐다. 그가 관리로 있을 때는 바로 틈왕(闖王) 이자성(李自成, 1606~1645)이 봉기한 시기다. 숭정 황제는 그를 유림(楡林, 섬서성 북부 명나라 장성 9진鎭의 하나) 삼변(三邊) 총독에 임명하고 10만 대군을 통솔해 틈왕의 봉기군을 방어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화희 부대가 다 배치하기도 전에 파죽지세로 달려온 틈왕의 대군이 북경을 공격하자 숭정황제는 매산(煤山)에서 목매어 죽었다. 이화희는 어쩔 수 없이 부대를 이끌고 고향인 산동 주촌(周村)으로 내려갔다. 시국의 변화를 자세히 살피기 위해서였다.
당시에 주촌은 전란의 고통을 겪을 대로 겪은 상태였다. 이화희가 군대를 이끌고 주촌에 도착하자 군수품을 가지고 오게 되면서 현지의 구매력을 증대시켰다. 전란으로 혼란한 시기에 상대적으로 안정된 대피소 역할도 했다. 주변의 향신(鄕紳), 관료, 상인과 백성이 잇달아 주촌으로 이주하였다. 인구가 증가하자 소비 요구가 대폭으로 증가하였다. 주촌은 전대미문의 번영을 맞으면서 산동 최고의 상업 중심지가 됐다.
청 왕조가 북방을 평정하였을 때 명 왕조가 쇠패하는 것을 본 이화희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해 청 왕조에 귀순하였다. 공부우시랑이 됐다. 나중에는 계속 승진해 형부상서가 되어 지위가 명 왕조보다도 현저하게 높게 됐다. 그런 중에 이화희는 요직에 앉아 있었으나 만주족 통치자가 한족 관원을 차별대우하는 것을 느꼈다. 청 순치(順治) 11년, 순치황제는 영대에서 여러 신하와 연회를 베풀었다. 대신들에게 부모의 상황을 물을 때 이화희는 곧바로 땅에 엎드려 황제에게 자신의 모친이 83세라 고향으로 돌아가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황제는 감동받아 당장에 그의 청구를 윤허하였다. 그렇게 이화희는 청 왕조에서 주동적으로 사직해 귀향한 한족 관리가 됐다.
당시 황제가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고향의 세금이 너무 중하니 황상께서 은혜를 내려 특혜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한다. 황제는 잠시 생각하다가 국가의 세금을 면제할 수 없지만 그가 국가에 공이 많으니 하루 세금을 면하도록 해주겠다며 친필 지시를 내렸다. 이화희는 성지를 받들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마음속으로 하루 면세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였다. 곧바로 사당 아래에 묻어두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매일 밤 성지를 묻어둔 곳에서 붉은 빛이 사방으로 발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닌가. 이화희는 어쩔 수 없이 꺼내서는 집으로 가져갔다.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황제께서 하루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것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 곧바로 지방 관리를 불러 성지를 비석에 새기게 하고는 큰길 북쪽 끝에 세우도록 했다. 그렇게 하니 사람들은 아무 날이라도 그 비석을 보기만 하면 ‘오늘은 면세’가 됐다. 이때부터 감히 터무니없이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으면서 주촌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민간전설이다. 가공한 흔적이 어찌 없으랴.
사물의 흥망성쇠는 사회가 발전하는 필연이다. 사람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방법이 없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면서 온힘을 다하여 일을 더 완벽하게 처리하려 노력할 뿐이다.
쇠패는 사람에게 훼멸적인 타격을 주는 경우가 많다. 개인 역량으로는 근본적으로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럴 때는 외부의 도움을 얻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도움을 얻어 자기의 역량을 증대시켜야 한다. 외부의 힘과 함께 쇠패가 가지고 오는 충격을 흡수하면서 손상을 최대한 줄여서 가볍게 하고 신속하게 원기를 회복하여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평상을 가로댄 나무에서 깎음’은 함께 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침대 다리를 없애버리면 지탱할 것이 없게 되어 버린다.
그렇다. 사람이 다리 한 쪽이 없는데 외부적으로 지탱할 것이 없으면 일어설 방법이 없다. 최소한 지팡이로 지탱해야만 다시 곤경을 벗어날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위의 모든 외부의 힘을 빌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여 빠른 시일 내에 쇠패에서 벗어나야 한다.
쇠패와 곤경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쇠패한 후 가지는 의기소침이다. 쇠패에 당면하였을 때 꿋꿋하여야 한다.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원조의 손이 당신의 손바닥 한가운데로 향할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외진 곳에서 혼자 방향을 잃게 되었을 때, 당신은 윗옷을 벗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큰소리로 도움을 청하면서 한쪽으로는 윗옷을 흔들어야 한다. 도움을 구하는 신호를 보내면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의 주의를 끌어내야 한다.
마음의 평형을 잃어 가치관과 신념이 거대한 충격을 받았을 때,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은 친한 사람과 시원시원하게 얘기를 풀어내어 그 속에서 가르침을 얻는 것이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미국의 잭 캔필드(Jack Canfield) 등〕를 먹는 것처럼 마음을 치유하여야 한다.
사업이 쇠패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마땅히 시대의 추세에 순응하면서 적절하게 외부의 도움을 구하여 다시 진용을 재정비하고 동산재기 하여야 한다.
인류의 행위는 대자연의 운행 규율에 순응하여야 한다. 위난이 잠복한 시기에는 앞질러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여러 가지 담대한 결정과 마주하라.
어느 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연속적으로 당신에게 정면으로 다가오거들랑 온힘을 다하여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라. 과정에 전력투구하라. 결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아쉬움을 남기지 말라. 그러면 족하다.
흔들리며 변화를 구하는 시대에 처하였다면, 지향성이 있고 포부가 있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참선해 삼매경에 이른 것처럼 하고 고인 물처럼 마음을 고요히 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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剝卦 ䷖ : 산지박(山地剝) 간(艮: ☶)상 곤(坤: ☷)하
박은 가는 것이 이롭지 않다.(剝,不利有攸往.)
「단전」에서 말하였다 : ‘박(剝)’은 깎아냄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변화시킨 것이니, ‘가는 것이 이롭지 않음’은 소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彖曰,剝,剝也.柔變剛也,不利有攸往,小人長也.)
따라서 멈추는 것은 상을 보았기 때문이고, 군자가 사라지고 자라나며 차고 빔을 숭상하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順而止之,觀象也,君子尙消息盈虛,天行也.)
「상전」에서 말하였다 : 산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위에서 그것을 본받아 아래를 두텁게 하여 집을 편안하게 한다.(象曰,山附於地,剝,上以,厚下,安宅.)
‘평상을 가로댄 나무에서 깎음’은 함께 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剝牀以辨,未有與也.)
[傳]
박괘(剝卦䷖)는 「서괘전」에서 “비(賁)는 꾸미는 것이다. 꾸밈을 다한 뒤에 형통하면 다하기 때문에 박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사물이 꾸밈에 이르면 형통함이 다하고, 다하면 반드시 되돌아가기 때문에 비괘(賁卦䷕)가 끝나면 박괘다. 괘가 음이 다섯이고 양이 하나이니, 음이 처음 아래에서 생겨 점점 성대한 극치까지 자라나 여러 음이 양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박괘가 됐다. 두 몸체로 말하면 산이 땅에 붙어 있다. 산이 땅위로 높이 솟아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땅에 붙어 있으니, 무너져 깎이는 상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