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창신(創新)은 시대 변화에 따라가야 한다.
창신이 없으면 오늘 날 “천리 길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네”1)와 같은 교통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예처럼 걸음을 대신해 수레를 탔을 것이다. 창신이 없으면 오늘 날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 같네”2)와 같이 막힘없이 잘 통하는 통신이 있었겠는가. 낭연(狼煙) 같은 봉화로만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창신이 없었다면 오늘 날 “휘황찬란한 등불과 꽃불, 밤 없는 하늘”3) 같은 온통 불빛으로 환한 도시의 야경이 있겠는가. 형설지공만 있었을 뿐이다.
결국 새롭게 창출하지 못하면 인류는 지금까지도 어쩌면 털도 뽑지 않고 피도 씻지 않고 먹고 있거나 나무껍질 옷 입고 동굴에서 사는 원시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셋째, 풍격도 시대 변화에 따라가야 한다.
보검의 칼날은 부단히 연마하면서 만들어진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넘기면서 향기를 뿜는다. 풍격은 착실하여야 한다. 들뜨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 말은 어눌하나 행동은 민첩하여야 한다. 언행일치되어야 한다. 명리를 버리고 정확한 명예, 관점을 가져야 한다. 자중, 자성, 자경, 자립할 줄 알아야 한다. 감히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 되어야 한다. 옳고 그름 앞에서 입장을 명확하게 하여야 한다. 거리낌 없어야 하고 도량이 넓어야 한다. 권위를 두려워하거나 보복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시종일관 예기가 드높아야하고 올바른 기개를 지녀야 한다.
넷째, 관념도 시대 변화에 따라야 한다.
“관념은 행동을 변화시키고 행동은 운명을 바꾼다.”
시대가 변하는데 사상 관념만 기존 격식을 고수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의 동맥을 따라갈 수 없다.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관념을 세계와 접속시켜야 한다. 행위는 수정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모든 경험 이론은 발전 요구에 적응하여야 한다. 심지어 소비 관념도 방향이 이성적이고 정당하여야 한다. 모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정하고 적응하여야 한다.
다섯째, 시야도 시대 변화를 따라야 한다.
근시안적인 사람은 눈앞에 것만 따진다. 멀리 봐야 한다. 현재의 노력을 볼 뿐 아니라 내일의 방향도 계획하여야 한다. 올해 수확을 따져야 할 뿐 아니라 이후에 어떻게 수확할 것이냐 까지 생각하여야 한다. 요 근래 여러 대학이 ‘미래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학생에게 지금 발붙이는 것을 배우고 시야를 넓혀 미래에 시선을 두고 대응대책을 제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연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생각(포부)도 시대 발전에 따라야 한다.
현대는 교통이 편리하고 네트워크도 발달되었다. 정보 전달이 신속하게 발전하면서 서로 간의 접촉, 미치는 영향이 확대되었다. 그렇기에 생각도 시대 발전에 따라야 한다.
“아무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커다란 자비를 베푼다.”
“상대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무연대비(無緣大慈)’요, ‘동체대비(同體大悲)’다.
소수를 배려하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인류에게 배려하는, 동시에 식물을 보호하고 동물을 애호하는, 피차간에 서로 의존하면서 동체이고 공생하는 지구인이 되어야 한다. 미래 자손이 이 땅의 아름다움을 향유케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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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卦 ䷰ : 택화혁(澤火革) 태괘(兌卦: ☱)상 리괘(離卦: ☲)하
혁(革)은 시일이 지나야 믿을 것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워 뉘우침이 없다.(革,已日,乃孚,元亨,利貞,悔亡.)
(상육) 군자는 표범이 변하듯 변하고 소인은 얼굴만 바뀌니, 가면 흉하고 바름에 거처하면 길할 것이다.((上六)君子豹變,小人革面,征凶,居貞吉.)
「상전」에서 말하였다 : “군자는 표범이 변하듯 변함”은 문채가 성한 것이고, “소인은 얼굴만 바뀜”은 순순히 군주를 따르는 것이다.(象曰,君子豹變,其文蔚也.小人革面,順以從君也.)
傳
혁괘(革卦)는 「서괘전」에 “우물의 도는 변혁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혁괘로 받았다”라고 하였다. ‘우물’은 그대로 두면 더러워지고 썩으며 바꾸면 맑고 깨끗해지니, 변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괘(井卦䷯)의 뒤에 혁괘로 받았다. 혁괘(革卦䷰)는 태괘(兌卦☱)가 위에 있고 리괘(離卦☲)가 아래에 있으니, 못 속에 불이 있다. ‘혁(革)’은 변혁(變革)이다. 물과 불은 서로 없애는 것이다.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말려서 서로 변혁한다. 불의 성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간다. 만일 서로 떠나간다면 ‘규괘(睽卦䷥)’일 뿐이다. 마침내 불이 아래에 있고 물이 위에 있어서, 서로 찾아가서 서로 억누르며 서로 없애는 것들이기 때문에 ‘혁’이라 하였다. 두 여자가 한 곳에 같이 사나 그 돌아감이 각기 다르고 뜻이 같지 않아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혁(革)’이라 하였다.
1) 아침 일찍 백제성의 온갖 색의 구름을 이별하고, 천리 길 강릉을 하루에 돌아왔네. 양 쪽 물가의 원숭이 소리가 (귀에 남아) 울기가 끊이지 않는데, 가벼운 배는 이미 만겹의 산을 지났네. (朝辭白帝彩雲間,千里江陵一日還.兩岸猿聲啼不住,輕舟已過萬重山.) (李白, 「早發白帝城」)
2) 장안성은 삼진의 호위를 받는데 바람과 안개 속에 촉땅 바라보네. 그대와 헤어지는 마음 아프지만, 우리 모두 외지에서 떠도는 신세. 해내(海內)에 지기(知己)가 있음에 천애(天涯) 먼 이역이 가까운 이웃이라. 헤어지는 갈림길이 있다하더라도 아녀자마냥 눈물로 옷깃 적실 것까지야. (城闕輔三秦,風烟望五津.與君離別意,同是宦游人.海内存知己,天涯若比隣.無爲在歧路,兒女共沾巾.) (唐·王勃, 「送杜少府之任蜀州」)
3) 火樹銀花不夜天,弟兄姐妹舞翩躚,歌聲唱徹月兒圓.(柳亞子《浣溪沙》)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