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잘 쓴다는 말은 리더십의 기술을 얘기할 때 자주 사용한다. 사람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잘 쓰려면 먼저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 그 인물을 잘 임용하는 것이다.
사람 능력을 잘 파악하려면? 자신을 먼저 잘 알아야 한다. 그 다음이 타인에 대하여 잘 아는 것이다. 사람이 귀한 까닭은 자기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자신의 결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다.
유방(劉邦)은 교묘하게도 자신을 잘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지녀야 할 능력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부하들을 이끌었다. 자기 부하가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았다. 어느 부하는 어디에 능력을 발취하는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특징이 있는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느 위치에 있어야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하였다. 이것이 우두머리의 가장 큰 재능이다.
우두머리는 자신이 직접 가서 무슨 일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꼭 자신이 직접 일을 챙기는 우두머리는 좋은 우두머리가 아니다. 뛰어난 우두머리가 되려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어야 한다. 인재를 합당한 자리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도로 충분하게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면 성공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유방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방이 한 왕조를 세우는 데에 선도적 역할을 했던 혁명 세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삼국시대 때에 유비(劉備)는 관우(關羽), 장비(張飛), 조운(趙雲)과 같은 맹장이 있었지만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명령하던 조조(曹操)에게는 제대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삼고초려 한 후 공명(孔明)을 얻고서야 조조에게 새로운 안목으로 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유비는 여러 차례 얘기하였다.
“유비가 군사를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소.”
이 말은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 도원결의하였던 관우와 장비를 한동안 불편하게 만들었다. 관우와 장비는 맹장이다. 돌격하여 적진 깊숙이 들어가 용감히 싸우는 데에는 그 둘이 없어서는 안 됐다. 공맹은 서생이다. 닭 한 마리 붙들어 맬 힘도 없을 정도로 힘이 약했다. 적과 전투하는 것은 관우와 장비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나 장막 안에서 전술 전략을 세우고 천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승리하는 뛰어난 꾀를 내는 데에는 관우와 장비가 미치지 못했다.
유비는 인걸이다. 문은 제갈량보다 못했고 무는 관우, 장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권술에 능했다. 스스로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제갈량, 덤벙대는 장비, 스스로 대단하다 여기는 관우가 순종하여 신하를 칭하게 만들었다. 마음으로 따르게 만들었다.
유비는 장수를 잘 다스리는 장수였다. 이것은 유비의 뛰어난 능력이었다. 유비는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해 적재적소에 썼고 어진 이를 예의와 겸손으로 대했다. 그래서 군웅이 할거하는 당시에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명령하는 천시를 점유했던 조조와, 장강의 천연 요새에 지리적 장점을 점유하고 있던 손권(孫權)과 필적하여 천하를 다투었다. 천하를 삼분한 후 한 지역을 차지해 자신의 대업을 이루었다.
제갈량은 책략에 능했고 관우와 장비는 싸움을 잘했다. 능력이 재각각인 인재 중에서 자기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만들면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제갈량이나 관우, 장비가 미칠 수 없었다. 유비만이 그런 국면을 이룰 수 있었다. 유비가 삼고초려 하여서 예의와 겸손으로 대하면서 제갈량을 감동시켰다.
제갈량은 초려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천하삼분의 형세를 파악하고 있었다. 융중(隆中)에서 유비를 깨닫게 하여 중임을 위임하게 했다. 제갈량은 자신을 알아준 은혜에 죽을 때까지 온힘을 다했다. 유비가 왕조의 기틀을 닦는 데에 견마지로를 다했으며 나중에 유비 임종 시 자식을 부탁받아 심혈을 기울이면서 불충할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자신을 알아준 유비의 은혜를 잊지 않은 까닭이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전국책·조책(趙策)一』)
이와 마찬가지로 관우와 장비는 도원결의 이후에 대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미담을 남겼다. 조조는 관우에게 항복 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유비에게 충성을 다하는 관우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장비는 덜렁대기는 했으나 유비에 대한 충성은 변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유비 인격의 매력에서 비롯되었다.
예부터 지금까지 종관하면 대범하게 큰일을 이룰 수 있는 자는 남보다 뛰어난 인격을 갖추고 있었다. 성공한 자에게는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잘 쓰고 남을 능히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상의 정관지치(貞觀之治), 강건성세(康乾盛世)도 마찬가지다. 군주가 어질면 신하는 강직하였다. 군주가 먼저 현명하여야 했다. 그러면 신하는 강직하게 됐다. 군주가 어질지 못한데 신하가 강직하면 그 신하는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는 갈등이 늘 있었다. 서로 의존하기도 했고 대립하기도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런 갈등 속에서 핵심이 되는 인물은 군주였다. 군주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금은 순금이 없고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없다.”(宋·대복고(戴復古)『기흥(寄興)』)
각자 부족한 점도 있었다. 제갈량은 고결하였고 장비는 덤벙댔으며 관우는 고집불통이었다. 사람의 장점을 쓰는 것은 사람의 단점을 용납하는 것이다. 유비는 관우, 장비의 강함을 썼다. 제갈량은 책략을 썼다. 장점을 발양하고 단점을 피하는 것, 알맞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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鼎卦 ䷱ : 화풍정(火風鼎) 리괘(離: ☲)상 손괘(巽: ☴)하
정(鼎)은 크게 형통하다.(鼎,元(吉)亨.)
물건을 개혁함은 솥만 한 것이 없다.(革物者莫若鼎.)
구사는 솥발이 부러져서 공(公)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 그 얼굴이 붉어진다. 흉하도다!/ 구사는 솥발이 부러져서 공(公)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 형벌이 무겁다. 흉하도다!(九四,鼎折足,覆公餗,其形渥.凶.)
[傳]
정괘(鼎卦)는 「서괘전」에 “물건을 변혁하는 것은 솥만 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괘로 받았다”라고 하였다. 솥의 쓰임은 물건을 변혁하는 것이니, 날고기를 변하여 익게 하고 단단한 것을 바꾸어 부드럽게 만든다. 물과 불은 함께 처할 수 없는데 서로 합하여 쓰임이 되어 서로 해치지 않게 하면 이는 물건을 변혁하는 것이니, 정괘가 이 때문에 혁괘의 다음이 되었다. 정괘는 위는 리(離)이고 아래는 손(巽)이니, 솥이 된 까닭은 그 상을 취하고 그 뜻을 취한 것이다. 상을 취한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전체로 말하면 아래에 세워진 것은 발이 되고 가운데 채워진 것은 배가 되니 물건을 받아 가운데에 두는 상이고, 위에 짝으로 솟아있는 것은 귀이고, 위에 가로로 뻗어있는 것은 현(鉉)이니 솥의 상(象)이며, 위ㆍ아래의 두 몸체로써 말하면 가운데가 빈 것이 위에 있고 아래에 발이 있어 받드니, 또한 솥의 상이다. 그 뜻을 취하면 나무가 불을 따른 것이다. 손(巽)은 들어감이니 순종하는 뜻이다. 나무가 불에 순종함은 불태우는 상이 된다. 불의 쓰임은 오직 굽는 것과 삶는 것인데, 굽는 것은 그릇을 빌리지 않으므로 삶는 상을 취하여 솥이라고 하였으니, 나무로써 불에 순종함은 삶아 익히는 상이다. 그릇을 만듦은 그 상을 취하였는데, 도리어 그릇을 형상하여 괘를 만들었단 말인가? 그릇을 만듦은 상에서 취하였으나 상이 괘에 있는 것이고 괘가 반드시 그릇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인이 그릇을 만들 적에 괘를 본 뒤에 상을 안 것이 아니나 사람들이 상을 모르기 때문에 괘를 만들어 보여준 것이니, 괘와 그릇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이든 의리에 해롭지 않다. 어떤 이는 “솥은 자연적인 상이 아니고 바로 사람이 만들어낸 상이다.”라고 의심하는데,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진실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나 ‘삶아 익히면’ 물건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진 그릇의 형상이 이와 같으면 쓸 수 있으니, 이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것이니, 정괘(井卦)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릇이 비록 괘보다 먼저 있었으나 취한 것은 바로 괘의 상이고, 괘는 다시 그릇을 사용하여 뜻을 삼은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