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괘(觀卦)
보다, 관찰하다, 시찰하다, 쳐다보다, 우러러보다, 의식에 참관하다 등이 모두 관(觀)이다. 본 후에야, 확실해질 수 있고 명확해질 수 있다. 인생을 꿰뚫어 볼 수 있고 삶을 느껴 깨달을 수 있다. 자아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타인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하여 경험을 총결하고 자아를 완벽해지게 할 수 있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의 최대의 적은 타인이 아니다. 자신이다. 자신을 이해할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자아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늘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자기의 부족과 잘못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을 고치고 자아를 높일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내가 내는 행동을 보되(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니 군자는 잘못도 없고 재앙도 없다는 말이다.
자신만이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사실 어떨 때에는 자기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기만하고 남을 속이기도 한다. 앞쪽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장 부딪쳐 들어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에 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려면 반성하고 자아를 살펴야 한다.
반성은 성공의 가속기이다. 늘 자신을 반성하면 마음속 잡념을 없앨 수 있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인지할 수 있다. 사물에 대하여 똑똑하게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을 일깨워 잘못을 고칠 수 있다. 전면적으로 반성해야만 진정으로 자신을 인지할 수 있고 자신을 완전해지게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매일 반성하여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 중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여야 한다. 제때에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원인을 되돌아봐야 한다. 이것이 삶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 되어야 한다.
자주 자신을 반성하여야 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고 사유를 활발히 할 수 있으며 자신감을 증대시킬 수 있다. 반성의 질은 생활의 질을 결정한다. 자아 반성은 행복과 성공의 원천이다.
자기 정서의 특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서를 최적 위치로 조정하는 데에 능숙하고 타인의 정서와 기교에 조화하거나 순응하는 데에 능하다. 그리하여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
자신의 정서를 인지하고 장악하면 자기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서 자기 인생의 중심이 되어 처리할 수 있다.
호전적인 무사가 선사에게 천당과 지옥의 함의에 대하여 물었다.
선사가 말했다.
“당신 성격이 급하고 행동이 거칠지 않소. 난 당신과 같은 사람과 도리를 논할 시간이 없소.”
무사가 수치심으로 부아가 나 칼을 뽑아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네가 감히 나에게 이렇게 무례를 해! 내 단칼에 네 놈을 죽이리라.”
선사가 천천히 말했다.
“이것이 지옥이요.”
무사가 문득 크게 깨달았다.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해 져서 칼을 칼집에 꽂았다. 땅에 엎드려 절하며 선사에게 가르침을 주어 고맙다고 인사하였다.
선사가 또 말했다.
“이것이 천당이요.”
사람이 어떤 정서에 빠졌을 때 때때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의식적으로 반성하고 나서야 알아차리곤 한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은 타인이 자기에 대한 평가와 생활 경험으로 자신을 인식한다. 자신을 인식하면 우리는 일생 중 있어야 마땅한 풍모를 펼칠 수 있다. 자아를 인식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 얘기할 수 있다.
자성은 자기의 동기와 행위를 자세히 살피고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결점을 정리하고 극복하여 마음을 정화시키고 심리상의 건강과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다. 자성은 자아를 초월한다는 기본 전제 아래 현실 수준 위의 자기를 초월하려면 반드시 담백하고 성실하게 자신을 대면하여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인생의 길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은 여러 번 탈바꿈을 하지 않은 자가 없다. 탈바꿈의 과정은 자아의식의 제고요 자아각성이요 자아개조며 자아 완성의 과정이다. 자신을 더 정확하고 더 깊게 인식하면 할수록 성공의 기회가 더 많아진다.
매일 한 번씩 자신을 성찰하면 1년에 자신의 잘못을 고칠 기회가 365차례나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반성하면, 아니 하루에도 수 없이 자성하면 자신에게 남겨진 기회도 상대적으로 더 증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성을 여러 번 한다는 것은 겉으로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끝까지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따져보면 위인과 보통사람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차이라고 한다면 위인은 우리보다 하루에 여러 번 좀 반성한다는 데에 있을 뿐이다. 바로 매일 눈에 띠지 않는 ‘좀’이 위인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벌여 놓는다. 점점 더, 둘 간의 차이는 더더욱 멀어진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휘황찬란함과 용속함이란 두 극단까지 벌어지게 된다.
‘일일여삼추’라. 다른 사람은 저리도 빠르게 진보하는데 우리는 왜 느릿느릿 더디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자신을 자세하게 살펴야만, 자신을 이해해야만 정확한 목표를 만들 수 있고 정확한 신념을 굳힐 수 있다.
약간 더 자신을 고치고 자아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타인을 관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을 자신의 거울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내는 행동을 보되(니) 군자다우면 허물이 없으리라.”
무슨 말인가? 타인의 행위를 관찰하면 약간 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니, 군자는 잘못도 없고 재앙도 없다는 뜻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