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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3) 거지와 공안(公案) ⑥

사기는 거지가 쓰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틈만 나면 상용한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며 기회 있을 때마다 사기 친다. 다음 사례를 보자.

 

나이가 많은 귀머거리 거지가 무릉(武陵) 성문 밖 번화한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성문을 닫으면서 신호기를 올리며 징을 칠 때 즈음, 군선(軍船) 한 척이 정박하였다.

 

 

선실에 앉아있던 5품 관리가 고개를 내밀어 기슭에 있는 귀머거리 거지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사람을 보내 선실로 데리고 오게 하였다. 선실에 들어서자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A씨의 큰아들 아니십니까? 이전에 저를 수양아들로 삼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공명을 얻어, 지금 관리가 됐습니다. 양아버지가 궁핍하게 되어 이런 지경에까지 전락했다니. 실로 저의 죄입니다!”

 

늙은 거지는 관리가 사람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짐직 맞장구 쳤다.

 

“나는 나이가 들어 흐리멍덩해졌소. 지난 일은 모두 꿈속 같구려.”

 

5품 관리가 말했다.

 

“이리저리 떠다니며 객지에서 고생했지만 모습이나 체격은 크게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찌 몰라보겠습니까?”

 

그러고서는 사람을 시켜 거지에게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군선이 외지고 조용한 곳으로 이동할 때까지 1개월 넘게 봉양하였다. 머리를 빗질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게 고무 분말로 색을 입히니, 거지는 환하게 빛나는 영감으로 변했다. 그때 관원이 거지에게 말했다.

 

“제 옷을 입기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시장에 가서 비단을 사와야겠습니다. 잘 입으셔야 저와 함께 임지에 부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양부께서 현지에서 구걸하면서 지내셔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체면이 서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점포에 가서 물건을 볼 때, 마음에 들면 고개를 젓기만 하시면 됩니다. 말은 절대 하지 마시구요.”

 

거지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둘은 5품 의관을 차려 입었다. 가마 두 대에 올라 종복 2명을 대동하여 기슭에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먼저 금은방에 들러 4량이나 나가는 금팔찌 2쌍을 샀다. 점주에게 비단가게에 가서 한꺼번에 은량으로 값을 쳐서 주겠노라고 했다. 그러고는 비단가게로 들어가서 사려고 하는 품목 표를 점주에게 건넸다. 표에 적혀있는 물품을 보니 3000여 원에 달하지 않는가. 손 큰 구매자였다. 당장에 객실로 청하여 정성스럽게 접대하였다.

 

점주는 은밀하게 함께 온 종복에게 사실을 탐지하였다.

 

젊은이는 관원으로 엄주(嚴州) 이부(二府)이고 늙은이는 그의 부친이라 하였다. 이부의 누이동생이 수군(首郡) 지부의 아들과 혼약했는데, 도시에서 결혼식 올리러 가는 도중이라 하였다. 사려고 하는 물품은 시집갈 때 가져가는 혼수품이라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점주는 각별히 비위를 맞추며 술상까지 차려 융숭히 대접하였다.

 

그 관원이 금은방 주인을 초청하여 같이 앉아 어울리면서 자기의 좋은 친구라고 추켜세웠다. 점주도 연거푸 대답하며 순응하면서 자신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였다.

 

연회가 파하자 비단가게 점주는 여러 가지 비단, 모직물을 꺼내어 늙은 거지에게 일별해 선택하라고 보여주었다. 늙은 거지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급해진 점주는 곧바로 물었다.

 

“이것들은 고급 물품입니다. 황상께 올리는 공물로도 쓸 수 있습니다. 옷을 만들어 입어보도록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때 젊은 관원이 말했다.

 

“내 부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누이동생이 있는 곳으로 보내어 마음에 드는지 알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곧바로 가마꾼을 불러 물품을 들게 하고 시종 한 명을 붙여 호송하도록 해서 보냈다. 오랫동안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재촉하라고 다른 시종을 보냈다.

 

그때 가마꾼이 소식을 알리러 왔다며 먼저 돌아왔다. 아가씨가 보낸 여러 색깔의 비단이 마음에 들어 모두 남겨두라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어떤 품질의 은량으로 지불해야 좋은지 모르니 관원이 직접 가서 점검해 달라한다고 전했다. 그 관원이 늙은 거지에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잠시 여기에 계셔주세요. 제가 가서 은자를 골라 가지고 오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가마를 타고 떠났다.

 

군선에 도착한 후 관원이 가마꾼들에게 두둑하게 챙겨주면서 고생했으니 먼저 이 돈으로 식사를 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가마꾼들이 떠나자마자 군선은 출항하였다.

 

늙은 거지와 점주는 오랫동안 점포에서 기다렸으나 돈을 가지고 돌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제야 금은방 주인과 비단가게 점주가 당황해서 늙은 거지에게 캐물었다. 늙은 거지는 켕기는 것이 있었기에 대답하는 말이 군색하고 억지스러웠다. 결국 상대방에게 붙들려 현아로 끌려갔다.

 

현령이 늙은 거지를 심문한 후 사기 당한 사실을 확인했으나 달리 처리할 방도가 없었다. 쫓아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늙은 거지가 현아에서 석방될 때 여러 사람이 모여들어 입은 옷들을 전부 벗겨내어 가져가 버렸다. 5품 관원의 신발과 모자는 시의에 맞지 않았고 일반 백성이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남겨 두었다.

 

이후 그 늙은 거지는 머리에는 5품 관모를 쓰고 발에는 관원의 신발을 신고서 벗은 몸으로 여전히 길거리에서 구걸하였다. 그런 늙은 거지의 모습을 보면서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야기 속의 늙은 거지는 원래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된 것을 그대로 계속 밀고 나가며 사기 칠 기회를 엿보다가, 그중에 사기꾼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고 결국 사기꾼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한 차례 안락한 생활과 존귀함을 누리기는 했으나 마침내 찾아온 좋은 상황이 그리 길지 않았으니. 낡은 옷조차도 입지 못하고 또다시 예전처럼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야했다.

 

거짓으로 양아버지로 삼아 가짜를 진짜로 성심껏 모시면서 사기 칠 계책은 세운 사기꾼은, 일찍부터 거지들이 기회만 생기면 사기 치려한다는 것과 무뢰한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다. 네가 나에게 사기 치려니 나도 네게 사기 치는 것, 한패가 되어 못된 짓을 하는 것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진상이 다 밝혀지니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슬픈 희극이 아닌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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