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3일 앞둔 22일 오후 2시쯤. 기온도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었다. 게다가 햇빛도 비치지 않은 추운 날씨.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제주시 동문로터리 부근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졌다.
산지천 분수대 광장으로 다가갈 수록 캐럴은 더욱 커졌다. 캐럴을 부르는 목소리는 영락없는 여자다. 캐럴은 분수대 광장에 설치된 하얀 천막 안에서 계속해서 나왔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한 그룹사운드(밴드)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40대쯤 돼 보이는 여성들로 구성된 밴드는 모두 산타모자를 쓰고 있었다. 천막 앞에는 어린이 3명이 같은 산타모자를 쓰고 모금함 주변에 서 있다.
이 여성들은 왜 기타와 드럼, 키보드를 치면서 추운 날씨에 광장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을까?
공연을 하는 이들은 올해 3월 결성된 아줌마(주부) 밴드 ‘토마토’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동안 공연을 펼쳤다. 차가운 날씨에 구경하는 이들은 별로 없지만 열정적인 목소리와 악기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노래를 하면 할수록 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오히려 이마에 땀이 맺힌다. 열기는 지나가는 이들의 주머니를 열게 해 모금함에 정성을 담게 했다. 그렇다. 연말을 맞아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토마토’는 5명이다. 밴드의 리더인 드럼의 윤명숙(42), 키보드의 오영희(42), 보컬의 양희(40), 기타에 홍경애(40), 베이스에 오은주(39)씨로 구성됐다. 이들은 모두 주부이자 직장인들로 자녀도 있다.
밴드 이름 ‘토마토’는 겉과 속이 빨간 색을 가진 토마토를 지칭한다. 색깔이 열정적인 빨간색이기 때문에 아줌마들의 열정적인 마음을 담고 있다.
이들은 ‘토마토’를 봉사하기 위해 만들었다. 취미이기도 하지만 가진 재능을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쓰고자 결성한 자원봉사 밴드인 것이다.
이들 중 윤명숙씨와 오영희씨는 대학 음악학과 피아노 전공을 한 음악 전문가들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초보. 결성 당시 초보자여서 강사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연습은 매주 2회 하지만 공연이 있을 경우 매일 한다고 한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이들은 한 달 전부터 매일 연습을 했다.
공연자금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일단 주변의 도움을 받았다. 드럼·키보드·음향장치 등은 모두 고가다. 일도 하지만 무슨 돈이 있겠나. 그들의 뜨거운 마음에 주변의 지인들이 도움이 됐다.
그래도 모자란 자금은 서로가 조금씩 보탰다. 가족들도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추운 겨울 거리에 나왔다.
리더 윤명숙씨는 “취미생활로 하려고 했지만 취미생활로 하기에는 재능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가진 재능을 불우한 이웃에게 베풀면 좋겠다는 멤버들의 뜻을 모아 봉사와 취미를 같이하자는 취지에서 결성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가족을 돌보고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은 주로 퇴근하고 밤늦게 했다”며 “그래도 가족들이 이해해주고 힘이 돼 줘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오늘 모금한 성금은 전액 불우이웃을 위해 쓸 계획이다. 추운 겨울 누군가에게 우리의 열정과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기쁘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토마토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선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윤씨는 “주로 양로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봉사공연을 할 예정이다. 아직은 창작곡보다는 대중가요 위주로 할 예정이다. 어르신들은 트롯을 좋아하니까 트롯도 연습을 많이 할 것”이라고 했다.
자선공연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기공연도 펼치기로 했다. 많은 이들에게 아줌마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일·가정·음악·봉사를 모두 해내는 대한민국 최강 아줌마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