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식품을 섭취하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이를 식품의 3대 기능이라고 한다. 식품의 1차 기능은 영양 기능으로 생명유지와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1차 기능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맛, 향 등이 우수하고 기분 전환에 좋은 식품을 찾게 된다. 이것이 식품의 2차 기능인 기호 기능이다. 우리나라도 힘들던 시절에는 끼니만 해결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맛집 탐방을 다닐 정도로 식품의 기호성을 중시한다.
또한 소득 수준이 증가하면서 식품을 생존과 기호를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리활성 물질을 섭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식품의 3차 기능인 생리활성 기능이다. 이를 강조한 것이 홍삼, 오메가3, 프로바이오틱스 등의 건강기능식품이다.
이렇듯 소비자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식품을 선택하는데 건강기능식품뿐만 아니라 식품의 기호성을 강조하는 술, 커피, 차 등의 기호식품도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호식품 중에서도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술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술은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술은 주로 곡식과 과일로 만드는데 원료에 따라 발효 과정이 달라진다. 쌀과 같은 곡식의 주성분은 수천~수만개의 포도당이 결합ㆍ연결된 다당체인 전분(녹말)이고, 과일에는 주로 포도당, 과당, 설탕과 같은 당류가 들어 있다.
미생물인 효모(yeast)는 당류를 대사하여 에탄올을 만들지만 전분은 잘 분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포도주와 같은 과일주를 만들 때는 효모만 넣어주면 되지만 쌀과 같은 곡식을 이용하여 술을 만들 때는 효모와 누룩곰팡이가 같이 들어가야 한다. 누룩곰팡이가 전분을 분해시켜 포도당을 내어주면 효모가 포도당을 먹고 부산물로 에탄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에탄올 발효 시 탁주, 청주와 같은 술은 누룩곰팡이와 효모가 같이 필요하고, 포도주 등의 과일주는 효모만 넣어도 발효가 일어난다.
그런데 곡식인 보리를 사용하는 맥주는 효모만 넣고 발효를 시키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보리에 싹을 틔운 맥아를 원료로 하기 때문이다. 보리가 발아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체적으로 전분을 분해시켜 맥아당, 포도당과 같은 당류를 만들고 효모가 이를 먹고 에탄올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에탄올을 술로 즐기기도 하지만 소독 작용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코로나(COVID19) 시절에도 손 소독을 위해 에탄올을 달고 살았는데 에탄올은 미생물과 바이러스에 대한 살상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효모가 에탄올을 만들기는 하지만 에탄올 농도가 일정 이상이 되면 자신도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 되기 때문에 발효주들은 일반적으로 도수를 15% 넘기기 어렵고 물의 함량이 훨씬 많다.
사람들은 에탄올의 도수를 높이기 위해 발효주를 가열ㆍ냉각하는 증류 방법으로 증류주를 만들어 냈는데 전통 소주, 위스키, 브랜디, 고량주, 보드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증류주의 맛과 향은 원료, 발효 과정, 증류 및 숙성 과정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12년산 위스키로 표시된 증류주는 오크통 속에서 12년 이상 숙성시켜 향과 맛을 향상시킨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구입하여 병 속에 5년을 더 묵힌다고 해서 17년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소주는 증류주라고 하지 않고 희석식 소주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고구마와 같은 전분을 발효시킨 뒤 연속 증류를 통해 에탄올 도수 95%의 주정을 만들고 이를 물로 희석하여 제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정은 순수한 에탄올에 가깝기 때문에 원료와 발효 과정에서 오는 맛과 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감미료 등을 첨가하여 맛을 내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인류는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만들어 왔고 즐겨 마시고 있다. 커피나 차 같은 기호식품은 맛과 향 이외에도 폴리페놀 등의 유용한 물질이 들어 있어 항산화 효과를 갖는 생리활성 기능이 알려져 있지만 술은 인체에 긍정적인 기능이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최근 국제보건기구(WHO)에서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발암물질 2B군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로 소비자들의 발암물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술이 발암물질 1군임을 아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발암물질 2B군은 인간에게서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가 제한적이고, 동물실험에서 인과관계 입증이 불충분하여 인간에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반면, 발암물질 1군은 인간에게서 암 유발의 인과관계가 충분하여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이 확실한 물질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적당한 음주는 혈관질환 발생을 낮춰준다는 보고를 근거로 술을 마시면서 위안을 삼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소량의 음주도 암의 발생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 편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술 마실 일이 많고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먹다 보면 주량이 는다’라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이 말은 사실일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주량은 유전이기 때문에 자주 마신다고 느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에탄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전환된다. 독성이 매우 강하고 숙취를 유발하는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는 아세트산으로 전환되어 오줌으로 배설되거나 에너지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술이 센 사람들은 알데히드 분해효소의 활성이 높아 아세트알데히드를 빠른 시간 내에 아세트산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술에 잘 안취하고 숙취에서 빨리 깨게 된다. 술이 약한 사람들은 알데히드분해효소의 유전자에 변이가 있어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게 되어 쉽게 얼굴이 붉어지고 구토, 어지럼증 등의 숙취가 심하게 나타난다.
또한 술을 많이 마시게 되면 과잉의 에탄올을 처리하기 위하여 제2의 에탄올산화시스템이 활성화되는데 이때는 아세트알데히드뿐만 아니라 건강에 해가 되는 활성산소도 같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간이 더 힘들어지게 된다.
마실수록 술이 는다고 느끼는 것은 인체에 내성이 생겨 아세트알데히드에 의한 생체반응이 느려지기 때문으로 뇌세포가 덜 취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즉 술을 자주 마신다고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 분해능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술이 느는 것이 아니라 간과 뇌세포가 손상을 입고 있는 것이다.
주량과 술에 의한 독성의 해독 능력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술이 약한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스스로도 술 한두잔에 얼굴이 빨개지거나 숙취가 나타난다면 술을 되도록 마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