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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24)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잠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되묻기

 

우리는 생각을 하며 산다. 어느 오름이라고 이름을 들으면, 벌써 그곳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갈 것인가? 하고 아는 만큼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그 곳이 이름만 들어 알 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면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장소가 외국이면 그곳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어디? 어떤 곳인지 몰라 매우 당황하게 된다.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분명 알지 못하는 것에 늘 긴장한다. 우리 문명은 지금껏 알지 못하는 것들을 소통시켜 온 것에 다름 아니다. 이름이라도 있으면 유추하거나 짐작을 할 수 있을 텐데, 또 그 이름 자체에서 드러나는 의미를 찾으려고 할 텐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름은 의미를 쉽게 구분하거나 찾으려는 행위의 결과다.

 

어떤 이름인 경우 생긴 모양이나 혹은 어떤 사람의 사건과 관련이 있었거나, 아니면 무엇인가 특별함이 있는 이유가 있을 때 명명된다. 결국 이름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서로 알 수 있도록 공동 사용하기 위한 소통의 목적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이름에는 나름대로 스스로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한자 문화권에 사는 우리는 한글에 많은 한자를 병행해야만 이해하는 글이 많다. 이는 한글도 한자에게 많은 힘을 빌리고 있다는 말이다. 점심은 ‘點心’이라고 하여 낮 시간에 먹는 끼니를 말한다. 제주어로 알고 있는 ‘예점’이라는 말은 아마도 “짬을 내다”는 의미로 豫點(예점)일 것이다. “예점 갔다오켜(간편하게 다녀올게).” 하나만 더 말한다면 정신없게끔 부산떨면서 시끄러운 모습을 일러 ‘왕왕작작’이라고 한다. 한자어 조합으로 아마도 ‘往往灼灼’ 쯤 되겠다. “뜸하다가 갑자기 요란스런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헤르만 헷세의 ‘나는 별이다’라는 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시에는 대상에 빗대 우리 인간의 존재 의미를 되묻는 철학이 있다.

 

                  나는 별이다

                                    헤르만 헷세

 

나는 먼 지평선에 홀로 떠 있는 별이다.

그것은 세상을 살펴보며, 세상을 경멸하다가

스스로의 격정에 못 이겨 불타버리고 만다.

 

나는 밤중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다.

묵은 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바다.

그러면서 새로운 죄를 쌓아가는 바다이다.

 

나는 당신들의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자존심 하나로 자랐고, 자존심 때문에 속았다.

나는 국토가 없는 왕이다.

 

나는 침묵하는 정열이다.

살림도구 없는 집에서, 살육이 없는 전쟁에서,

나의 타고난 기력이 쇠약해진다.

 

자신을 분명히 표현하는 언어의 본질

 

미술은 형상적 인식의 열매로서 오랜 연원을 갖는 예술의 한 유형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예술가 자신이 경험에서 얻은 자기 인식의 형상을 가지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 거기에는 회화, 조각, 공예, 디자인, 사진, 영상, 설치미술 등 시대마다 만들어진 미술 언어가 나타난다. 미술은 예술가의 지성적인 결과이며, 그 표현에는 세계관에 바탕을 둔 미학, 이념을 머금은 시대정신 위에서 상징으로 반짝인다.

 

예술의 유형을 사람들은 순수예술과 대중예술로 구분한다. 이 분류에는 고귀한 왕실 사대부의 귀족예술과 속되고 하찮은 민중예술의 차별적 시선이 들어있다. 물론 둘 다 향유층이 다르겠지만 한 지역, 한 사회, 한 시대, 혹은 해당 사회 전체의 문화상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민족성향을 보여주는 것은 민중의 미의식일 것이다. 물론 이견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은 속성이 언제나 반체제적이며, 시대 전복적이어서 기술 진보와 더불어 사람들의 인식과 목적도 달라진다. 요즘에는 예술의 개념도 모호하게 돼 전통과 현대, 시간과 공간, 인간과 물질의 관계 개념이 뒤섞이며 혼성적이고,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문화 변동과정을 겪고 있다.

 

시대의 문화변동은 사실 생산력의 변화에 따라 언제나 있어왔다. 지금의 시대에는 빠르게 우리의 예술이 인간의 기억과 욕망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자유분방하게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검열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는지 명작이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이 경우 예술의 비극일 수밖에 없다.

 

작품은 한 시대의 얼굴을 담고 있다. 시대가 지나면서 양식적인 스타일을 갖게 되고 어떤 패턴을 보이게 된다. 이 스타일이 도상(圖像) 언어의 의미체계가 어떤 형식을 갖추면서 전승되고 현재에 해석되거나 소통·소비되는 것을 우리는 전통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하나의 양식, 즉 정리된 패턴을 의미체계의 계보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전 유물로 볼 때 15세기경 육지의 계회도(契會圖) 스타일이 18세기 <탐라순력도>와 19세기 <영주십경도>, <제주문자도>로 이어지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잠녀라는 기원의 언어가 시대의 권력관계 스펙트럼에 의해서 해녀라는 담론으로 바뀌는 과정을 알고 있다. 언어는 사물을 분류하거나 행위를 지시함으로써 만들어지는데 이 언어야말로 인간관계의 정치적 기호가 되고, 계급의 표정을 담고 있지만 그것의 의미를 바꾸는 것은 개인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라는 힘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능하게 된다.

 

언어에는 그 본질을 드러내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은 사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개인 표현의 차이가 있겠지만 현실이나 마음을 사실적으로 담으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잠녀와 해녀

 

잠녀(潛女)라는 말에는 '潛(잠길 잠)‘ 물에 잠기는 의미가 있다. '자맥질 하는 여자'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매우 특수한 일인 것이다. 사실적으로도 ‘물속으로 들어가서 노동하는 여자’를 말하는데 우리는 이를 ‘물질’이라고 한다. 물질은 ‘물일’의 발음상 변음이 된 것이지만 사실은 천한 행위를 나타내는 신분 비하된 의미를 띠고 있다.

 

잠녀라는 표현은 왕족 유배인 이건(李健,1614~1662)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1626)에 처음 나오는데 ‘미역 캐는 잠녀와 전복 따는 잠녀’가 있다. 그리고 허목(許穆, 1595~1682)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 ‘해처(海妻)’라는 말이 있는데 포녀(浦女), 어부(漁夫)의 처에 대한 육지식 표현이다.

 

잠녀라는 말의 계보를 보면, 1694년 숙종 때 제주목사로 왔던 이익태(李益泰, 1633~1704)가 지은 『지영록(知瀛錄)』에 점점 포작인이 줄어들자 미역 따는 잠녀를 전복 따는 잠녀로 대체하는 기록이 있으며, 170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병와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1703년에 그린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병담범주(屛潭泛舟)」에 ‘潛女’라는 표기와 함께 다섯 명의 잠녀가 물질하는 광경을 그림으로써 최초의 제주 풍속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형상의 「제주민폐장(濟州民弊狀)」에 ‘이 섬의 풍속은 남자가 전복을 채취하지 않고, 그 책임이 잠녀에게 있을 뿐입니다’라면서, 포작인의 역할이 잠녀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편(夫)은 포작(鮑作)에 곁꾼(船格) 노릇을 하고 있고, 부인(妻)은 잠녀로서 1년에 바쳐야 할 미역과 전복 때문에 그 고역(苦役)이 말테우리보다 10배나 됩니다”라고 하여 이형상은 잠녀의 비참한 처지를 지적하고 있다.

 

유배인 북헌(北軒) 김춘택(金春澤, 1670~1717)이 제주에 두 번 왔었다. 첫 번째는 아버지 김진구(金鎭龜)의 유배살이를 도우러 1689~1694년에 동천(東泉) 물가 적거지에서 체류했다. 두 번째는 자신마저 유배인 신분이 돼 1706~1711년까지 산지(山池)에 적거했다. 김춘택의 『북헌집(北軒集)』(1760)은 대부분 두 번째 제주 유배인 신분으로 왔던 6년 동안 쓰인 글들이다. 그가 「잠녀설(潛女說)」에서 '어떤 잠녀(潛女)라는 사람이 물에 잠겨 미역을 채취하거나 혹은 전복을 따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라고 ‘잠녀’라는 용어가 나온다.

 

제주 유배인 정헌(貞軒) 조정철(趙貞喆, 1751~1831)은 정조(正祖) 시해(弑害) 사건에 연루돼 1777~1782년 2월까지 제주목과 정의현에서 유배 생활 중 지은 시문집 『정헌영해처감록(貞軒瀛海處坎錄)』 「탐라잡영(耽羅雜詠)」 기(其) 십칠(十七) 주(註)에, '잠녀(潛女)는 천(布)으로 작은 바지를 만들어서 음부(陰部)를 가리는데 제주어(俗謂)로 소중의(小中衣)라고 한다. 알몸(赤身)으로 바다 속을 들고 난다'라고 했다. 이렇듯 잠녀는 물에서 잠수물질을 하는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해녀라는 말은 문헌에서 언제부터 등장하는 것일까? 해녀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숙종 40년(1714) 8월 '왜관(倭館) 관문 앞에 매일 아침 촌가의 부녀자들과 해녀(海女)들은 채소와 생선을 가지고 와서 시장에서 서로 사고팔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해녀라는 말은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1727~1798)가 1791년에 쓴 『존재전서(存齋全書)』 「금당도선유기(金塘島船遊記)」에 ‘해녀채복(海女採鰒)’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후 고종 때의 기록들과 20세기 초 일본인 지리학자 마수다 이치지(桀田一二)가 '제주 해녀(海女)의 출가지로 가장 오래된 곳은 도쿄부(東京府) 미야케지마(三宅島)로 메이지 36년(1903) 김녕의 사공 김병선(金丙先) 씨가 해녀 여러 명을 데리고 출가한 것이 시초'라고 했다. 그 무렵 일본 신문에서는 제주 ‘해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 테면 1906년 신호신보(神戶新報), 1908년 대판매일신문(大阪每日新聞)의 보도를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전까지 일본인들이 대거 해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이 있는데 잠녀라는 용어는 주로 유배인이나 제주 목사, 제주 어사들에 의해서 현지에서 불렸던 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해녀라는 용어는 왜관(倭館) 가까이에 있는 어부의 아내를 부르거나 남해안 섬에서 사는 포녀들을 부르고 있고 빈도수도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가 되면 해녀라는 말은 일본인 학자, 기자, 문필가, 조선의 문인들까지 마치 유행처럼 번져나가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양상을 보인다.

 

해녀라는 말이 대세가 되면서 일제강점기, 해방후 제주 미술인들의 시각도 당연하게 잠녀라는 말보다는 해녀라는 말에 익숙하게 되었다. 1971년 제주도에서 관광을 위해서 잠녀라는 어감이 ‘잡녀’처럼 상스럽게 들린다는 평가로 인해 일시에 ‘해녀’라는 용어를 공식 채택하면서 언어 교란이 일어난 것이다.

 

만약 세계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제주 잠녀가 일본 해녀(あま)와 함께 제주해녀로 세계문화유산에 공동 등재되면서 일제식민지였던 한국이 그 영향으로 해녀가 있는 것으로 세계인들이 착각하게 된다. 참으로 지식인이란 누구이고, 참된 학자가 과연 있는가라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사실 해녀 채택의 여파가 우리의 토착어인 잠녀(ᄌᆞᆷ녜, ᄌᆞᆷ녀)라는 용어를 사어화(死語化)시키면서 생활 속에서만 풍전등화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잠녀들이 숫자가 빨리 줄어들면서 머지않아 잠녀와 함께 용어마져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운명에 있다. 하기야 유기체는 영원한 것이 없고 그들이 만든 문화 또한 영속되지 않는다.

 

미술작품에서 잠녀와 해녀

 

미술은 때로는 나약하고 때로는 힘차다. 그 기운은 사상과 의지의 힘에 따라 결정된다.

 

 

엽해(獵海, 바릇잡이) 그림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화는 1703년 김남길의 <잠녀(潛女)>이다. 이 그림은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병담범주(屛潭泛舟)」의 하단 오른쪽에 작게 그려졌다. 각각 동작이 다른 다섯명의 잠녀들은 물소중이를 입고 한 손에 빗창을 들고, 테왁을 의지하여 이동하거나 잠수하며 물질하는 모습을 구륵담채(鉤勒淡彩)로 그려 321년 전 제주 물질 풍속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양화 화가였던 김인지(金仁志,1907~1967)는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이하 鮮展)에서 세 번을 입선했다. 1935년 제14회에 처음 입선함으로써 전라도에서 선전 입선 수상자로는 처음이었다. 1938년 제17회 선전 세 번째 입선작이 바로 <해녀>였다.

 

1948년 해방공간에 잠녀들을 그린 작품으로는 조병덕(趙炳悳)의 <해녀>라는 작품이 있는데 물소중이를 입고 불턱에 모여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잠녀들을 그리고 있다. 조영호(趙英豪, 1927~1989)는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하여 해방이 되자 귀도(歸島) 후 여러 번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전해 오는 조영호의 잠녀 소재 작품으로는 낭만주의 화풍으로 여인들의 공동물질 후 쉬고 있는 모습을 그린 <해녀들의 휴식>이 있다.

 

그리고 장리석(1916~2019)의 원시주의적인 시선은 잠녀들을 야성미 넘치는 여인들로 탄생시켰는데 대표작으로 1957년 유화로 그린 <해조음(海潮音)>이 그것이다. 고영만(1940~)의 물질을 마치고 온 잠녀들이 불턱에서 그날의 성과가 어땠는가 서로 말하는 장면을 그린 <하영 조물안디야(많이 잡을 수 있었느냐)>, 김택화(1940~2006)의 ᄉᆞ살(射殺)을 가진 <두 해녀>는 마치 비장한 전사처럼 서 있다. 청년화가 김산의 사회적 리얼리즘 시선으로 다가선 서촌 잠녀를 그린 <잠녀 김난춘>은 마치 한 화면에 음과 양의 가족사를 깊숙히 담고 있다.

 

 

야외 벽화의 운명이 단명이듯이 지금은 철거돼버렸지만, 1995년 제주항 여객선 터미널 1호 벽에 그려진 대형 벽화 <잠수도>는 리얼리즘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스케일면에서 압도적이었다.  기획에 미술평론가 김유정이, 주필에 박경훈이 맡아 MBC 본사에서 후원하고 탐라미술인협의회 소속 회원들로 구성된 벽화팀 10명, 특별참여에 강요배가 얼굴 그리는 것에 참여했다. 잠녀를 중앙에 배치하여 전방위적으로 잠녀들의 생활 모습을 그렸는데 주대종소(主大從小)의 배치법에 따라 마치 연환화적인 방식으로 잠녀들의 애환이 깃든 삶의 노래를 보여주는 벽화였다.

 

 

한국화가 강동언의 국전 특선작 <해녀의 꿈>은 바다로 나가기 위해 물질을 준비하는 제주 갯ᄀᆞᆺ의 잠녀를 그리고 있다. 공공미술 조각으로는 1982년 문기선, 송종원이 공동제작한 화강석 조각 <잠녀 군상>이 있는데 세 명의 잠녀들이 마치 물질의 전개과정을 보여주듯이 세 방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춘배의 <ᄌᆞᆷ녀>는 희망을 품고 바다로 나가는 젊고 발랄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젊은 미술가들이 채색조각, 철망조각, 브론즈 조각의 형식들로 제주 잠녀를 상징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조형미술은 내용과 형식, 재료에 따라 느낌, 분위기, 표현력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미학에 대한 관점 또한 미술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선명하게 말해줄 수 있으며, 표현기법은 어떤 의미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하나의 작품은 한 시대의 상징이며, 예술가 자신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방법론이라는 사실에서 총체적인 사회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시대정신인 것이다.

 

대개 육지 출신 화가들이나 요즘 세대들의 작품에는 <해녀>라는 제목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고, 제주 출신으로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작가들은 <잠녀>, <ᄌᆞᆷ녀>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제작하게 된다. MZ세대인 경우 해학적이고, 경쾌한 생활리듬으로 다가서는 <해녀>작품들이 많은 데 경험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표현방법 또한 바다 물질하는 여성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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