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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 이야기(10) 원근법, 사진의 기원을 찾아서 (1-1)

◇ 현재사로서의 역사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가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가 있다.” E.H.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는 역사는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고 했다. 이런 인식 속에는 모든 역사는 현재사라는 베네데토 크로체의 역사의 개념이 숨어 있다.

 

콜링우드는 역사를 과학으로 생각했다. “과학이 무지(無知)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역사는 과학이 된다.” 그래서 역사는 ‘행해진 것(res gestae)’, 즉 과거에 행해진 인간의 행동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를 과학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수많은 상상력 더미로 덮이지만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늘 사실(事實)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해석(interpretation)의 문제가 따른다.

 

우리는 흔히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소설 쓴다’라고 한다. 소설이 상상적 허구(imaginary fiction)라는 점에서 꾸며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현실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행위와 사건의 결과라는 점에서 증거로 말하는 사실이 있고, 그 사실은 각 문서와 편지, 전적, 비석, 사진, 영상 기록 및 증언, 기억술이 있다. 콜링우드는 역사의 목적을 인간의 자기인식에 두고 인간이 무엇을 했으며, 따라서 인간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데 역사의 가치를 두었다.

 

◇ 역사에서 기원이라는 말

 

뿌리가 없으면 줄기도 없고 꽃을 피울 수 없게 된다.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이 뿌리로부터 나온 의식일 것이다. 뿌리란 근원이다. 이 근원에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있다. 세상에 시작 없는 출발은 없다. 어디에서 출발하건 시작하면 멈추든 간에 멈춘 그 자리까지의 결과에 대한 성과가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것에 목적까지의 거리가 목표가 된다. 하기야 너무 길면 부러지기 쉽고, 너무 짧으면 이르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래서 적절하게 마디가 생기면서 천천히 다음 단계로 이동하며 커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과정(process)이라고 여기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과정에는 실패와 좌절이 따른다. 그러나 우리 역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인류세(Anthropocene)가 호모 사피엔스의 실험적인 장(場,camp)들이 모여 만든 결과이고 그것이 지금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든 것이다. 세계는 공간이다. 공간은 우리 앞의 눈에 보이는 세계이다. 시간은 그 공간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고 여전히 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을 같이 사유하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는 탄생이라는 시작이 있고, 죽음이라는 유한의 끝이 있다. 여럿의 손자가 태어날 때가 되면 부모가 돌아가시고, 이어 자신의 순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순환 속에서 개인의 시작의 의미가 새로 생겨난다. 죽은 고목이 썩어서 새싹이 나고, 물이 있음으로써 해류라는 흐름이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기원, 곧 시작이 있다. 이 사물의 기원에 대한 생각은 헬레니즘 시대 에피쿠루스학파의 시인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기원전 99~기원전 55)의 인식처럼 “자연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다시 만들며, 다른 것의 죽음으로 도움을 받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생겨나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물은 사물에게서 시작된다는 진화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起源)이란 맨 처음이라는 의미를 말한다. 이 기원이 있기 전에는 모든 것을 ‘자연 상태(status naturalis)라 불렀는데 자연 상태란 말 그대로 온갖 문명이 없는 상태에 있는 인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자연 상태란 매우 곤궁한 상태였다.

 

도구의 기원에서는 인간이 손을 사용하게 되면서 삶을 위해 선택한 것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나무, 돌, 뼈를 가짐으로써 최초의 도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도구들은 사용했던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는데 보강하거나 다른 것을 발견하면서 대체(substitution) 되고,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1차 변형과 자유변형이 일어나며, 또 지식이 늘어남에 따라 교차변형(Cross Mutation)이 일어나면서 도구의 진보가 있게 된 것이다.

 

미술의 시작은 작은 조약돌에 새겨진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이 얼굴을 최초의 미술품이라고 불렀다. 1925년 어떤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남아프리카의 마카판스가트(Makapansgat) 동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종의 잔해가 있는 층위에서 붉은 갈색의 둥그스름한 벽옥을 찾아냈다. 그것은 길이 8cm, 폭 7cm, 높이 약 4cm에 250g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돌로서 연대가 300만 년이나 된 것이다. 그 돌은 평평하게 닦인 면에 눈 2개, 입 하나가 새겨진 얼굴이었다. 

 

종교의 기원 또한 애니미즘(animism)이 시초였으며, 정령이라고 말해지는 비인격적 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애니미즘(Animism)이란 정령신앙(精靈信仰)과 비슷하며, 해, 달, 별과 같은 천체나 돌, 바위와 같은 암석, 수목, 숲, 샘, 우물, 연못, 내, 강, 바다 등 자연물에 신격을 부여하여 자연현상을 영(靈)과 생명의 작용으로 해석하려는 원시적인 종교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애니미즘이란 자연계의 만물에는 영성과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종교의례로 보이는 최초의 매장된 사람 유골은 1823년 1월 윌리엄 버클랜드 목사가 영국 남부 웨일즈의 스완지 시에서 서쪽 15km 떨어진 가위(Gower)의 ‘염소동굴’을 탐사하던 중 그 속에서 조가비와 동물 이빨, 그리고 뼈들과 함께 유골을 발견했다. 버클랜드는 부장품을 토대로 머리 없는 유골이 매장자세로 놓은 여성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뼈는 검붉은 색으로 물들었는데 시신을 감쌌던 천이 썩으면서 물든 것으로 추정했다. 또 시신 옆의 작은 조가비들과 동물 뼈로 만든 고리들, 3~10cm 길이의 앏은 상아 막대 등도 역시 같은 색이었고, 시신 주변의 흙도 같은 붉은 색이었다. 그 후 이 유골은 ‘파빌랜드의 붉은 유골(Red Lady of Pavilland)’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여성은 약 스무 살 정도의 나이에 죽어 그 동굴에 매장된 가장 오래된 호모사피엔스의 한 표본으로 판명되면서 추상적인 종교의 기원에 대한 가설 이후 가장 오래된 종교의 증거가 되었다.

 

기원에 대한 애매한 개념을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는 “먼 옛날의 사실을 가지고 최근의 사실을 설명하려는 태도는 마취 상태에 이를 만큼 우리의 연구를 지배해 왔다”라고 하면서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숭배하는 가장 특징적인 이 우상은 ‘기원(origins)’이라는 고정관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기원’이란 단어는 그 의미가 모호하고 무언가 분명하지 않다”라고 했다. 사실 우리는 맨 처음 시작한 것에 대해서 신비하게 들리는 마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것을 아무도 생각지 않을 때 처음 누군가가 시작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르크 블로크의 표현대로 “그것은(기원)은 단순히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는 두 가지로 기원을 설명한다. 첫째, “대부분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특히 파악하기 힘든 것이므로 이를 따로 제쳐 놓는다면 이 ‘기원’이라는 말과 의미는 어느 정도 분명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는 기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 관한 문제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의 정의를 내리는 일을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둘째, 반대로 기원이라는 단어를 ‘원인’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 묻고 있는데 본질상 원인을 탐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단어를 정의 내리는 것’과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라는 이 두 가지 의미로는 ‘기원’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혼란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용어로 볼 때 ‘기원’이란 “원인 이유를 설명하는 발단”이라는 뜻이거나, 더 나아가 “설명하기에 충분한 시작”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마르크 블로크는 바로 여기에 모호함이 있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역사적 시간은 편의상 각 시대구분으로 설명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원은 한 사건이 등장하는 시작, 또는 하나의 개념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지점을 말하는 것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최근 역사에서 ‘디지털 시대’라는 말과 같이 과거에는 없었던 개념이 새로 열리는 그 시간의 시작점을 찾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일 때는 발단이 되고, 또는 인류세라는 용어의 개념을 처음 주장했던 인물이 첫 발표시점을 개념의 기원이라는 의미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괴테가 말한 “현재란 없다. 단지 변화만 있을 뿐이다”라는 표현처럼 마르크 블로크의 말대로, 현재의 과학이라는 것도 매순간마다 ‘과거의 과학’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늘 시작이지만 늘 과거가 되며, 과거 또한 현재에서 그 얼굴을 확인할 수가 있게 된다. 기원은 맨 처음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인 시간 속 간극에서 새로 생기는 분절된 마디에서 출발하는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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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장 폴 리히터 편집, 루비박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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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기숙 옮김, 한길사, 2003.

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4.

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안인희 옮김, 김영사, 2019.

이언 자체크 책임편집, 『미술사연대기』, 이기수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9.

이상현,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삼화,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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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들루슈 편, 『새 유럽의 역사』, 윤승준 역, 까치, 2009.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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