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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 이야기(3) 백록담의 흰사슴

 

지금으로부터 1464년 전 발행된 『북사(北史)』에 '탐모라국에는 노루・사슴 등이 많으며 백제에 부용(附庸)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옛 기록들에 보면 '한라산에는 호랑이나 표범, 곰, 이리와 같은 사나운 짐승은 물론 여우와 토끼도 없으며, 날짐승에는 황새, 까치, 부엉이가 없고 산중에는 기괴한 새들이 보인다.'고 했다. 조선시대 진상으로 바쳤던 짐승으로는 사슴, 돼지, 해달(海獺)이 있다. 한라산에 사슴과 고라니가 멸종된 후에 노루만이 남아 있다.

 

지금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지구 생태계 최대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그가 경영하는 환경은 너무나 악화돼 있다. 이미 오래 전에 인류세라는 불안한 시대가 열리면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기 1600년대에 지구상에서 멸종된 포유류 수는 약 60여종이나 되었고, 이들 중 대부분이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사라졌다. 한라산의 사슴은 19세기에 자취를 감췄으며 한반도에서는 20세기초에 그 사슴이 멸종되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인상(印象)은 하나의 관념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상상력의 동물이어서 존재하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유토피아가 없으면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를 만드는 것처럼. 사슴이 있었기에 백록이 나오고 ‘백록을 타고 다니는 신선〔白鹿仙人〕’이 등장하면서 백록담이라는 이름이 전해지게 되었다. 물론 조선시대에 알려진 이야기이다.

 

사슴, 산에서 가장 온순한 야생동물

 

옛날 우리나라에 살던 사슴은 모두 다섯 가지였다고 한다. 사슴과의 고라니(Hydropotes inermis argyropus), 노루(Capreolus capreolus), 대륙사슴, 붉은 사슴 등 네 종과 사향노루과의 사향노루(Moschus moschiferus) 한 종이다. 우리나라에는 사슴과의 고라니가 많고, 현재 한라산에는 사슴은 없으며 노루가 뛰놀고 있다.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동짓달에 사슴의 뿔이 빠진다'라는 말이 있는데 청나라 5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재위:1662~1722)는 사슴이 5월에 뿔이 빠지는 것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슴 종류를 잡아 동산에서 기르며 시험해 보았는데, 고라니만 뿔이 빠졌다. 고라니는 사슴 등속으로 꼬리가 길다. 그래서 시험 결과를 근거로 「월령(月令)을 고치려다가 그만 두었는데 이때부터 사슴과 고라니의 구별이 분명해졌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슴이 있는 줄만 알고 다른 종류가 있는 줄은 몰랐다.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나오는 말이다.

 

물론 『예기(禮記)』의 기록은 강희제가 생각한 것처럼 잘못되지는 않았다. 고라니를 제외한 사슴과에 속하는 종의 수컷은 뿔이 있다. 한국과 중국 동북부에 분포하는 고라니는 뿔이 없는 대신에 커다란 송곳니가 있다. 사슴의 뿔은 소나 염소와 달리 번식 주기에 따라 매번 새로 생겨나고 떨어지며 일반적으로 늦은 봄에 새뿔이 생긴다고 한다.

 

처음 생긴 뿔의 겉면을 혈관이 발달된 해면질(海綿質) 조직이 감싸고 있어서 그것을 벨벳(velvet)이라고 하는데, 이때 자른 뿔을 한방에서는 녹용(鹿茸)이라고 한다. 시간이 갈수록 뿔은 커지고 단단해지면서 사슴은 나무에 문질러서 벨벳을 제거한다. 이렇게 완성된 뿔은 번식기에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거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 사이에 다툼에 이용된다고 한다.

 

번식기 이후 뿔은 머리에서 떨어지는데 종에 따라 뿔이 떨어지는 시기가 다르다. 사실 동짓달에 빠지는 종이 있고, 5월에 빠지는 종도 있으므로 『예기(禮記)』의 언급은 틀리지 않았지만 다만 고라니는 뿔이 없고 글에서 처럼 꼬리가 길지 않다.

 

궤자(麂子)는 고라니를 말한다. 충청도 홍주(洪州)에 궤자도(麂子島)라는 곳이 있었는데 고라니를 기르던 섬이었고 17세기에 녹도(鹿島)는 사슴 국영목장으로 이용되었다. 사슴류의 수급이 불안하여 만든 조치였다. 고라니는 노루와 흡사하지만 약간 작고 고기는 무척 맛이 좋다고 한다. 또 가죽은 매우 질겨 신을 만들면 좋다고 하여 옛날 사람들은 다른 짐승 가죽으로 신발을 만든 뒤 고라니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라고 속여 팔 정도였다(김홍식・정종우:2014).

 

사슴과 사람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관계였다. 신석기 유적에서는 종종 사슴 이빨, 사슴뿔이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의 사냥감으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슴은 번식이 빠르고 수초(水草)를 좋아해서 그들의 생활 환경이 사람과 가까워 언제라도 쉽게 잡을 수 있는 동물이었다. 성질이 온순하고 인간을 해할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했던 야생동물이다. 그래서 고대부터 사슴의 가죽, 뿔, 뼈, 고기 등은 사람의 생존에 크게 기여했다.

 

사슴뿔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훌륭한 장식품이 되고 있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의 사슴은 애써 가꾼 밭 농사일을 방치는 괘씸한 동물로 여겨져 수렵의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사슴이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은 그것이 말안장, 신발, 깔게, 활손잡이 등 고급 생활자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록담에서 흰 사슴을 타고 물 먹이는 사슴테우리 신선

 

지금의 한라산에는 노루 밖에 없지만, 옛날 사슴이 많아서 장졸(將卒)을 동원하여 사냥을 하고 그것을 공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시인 묵객들은 신선사상과 관련 지어서 흰 사슴을 탄 신선에 대해 노래했다. 사실 신선 사상은 우리들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픈 욕망에서 나온 유토피아적 발상이다. 그만큼 현실에는 소유하고 잇는 것들이 소중하고 귀해서 두고두고 그것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사람 마음을 그리 깊게 알아주지 못한다.

 

“삶이란 그것을 귀중히 한다고 해서 존속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몸이란 그것을 사랑한다고 해서 두터이 건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을 귀중히 여겨도 그렇지 않으며, 그것을 천대하여도 또한 그렇지가 않다. 자연히 생존하고 자연히 죽으며, 자연히 건강해지고 자연히 박약(薄弱)해지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자라는 것은 증가하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짧아지는 것은 손실이 아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열자(列子)』는 말한다.

 

1463년(세조 9) 2월 제주(濟州)에서 한 마리 흰 사슴을 바쳤다. 흰 사슴은 무척 희귀하여 세상에서는 신선이 타고 다니는 영물(靈物)로 여겼다. 신선과 백록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말에는 “노자(老子)가 흰 사슴(白鹿)을 타고 내려와 이모(李母)를 통해 태어났다”라거나, “선인(仙人) 한중(閑中)이 흰 사슴이 끄는 수레〔白鹿車〕를 타고 다녔다”는 기록 등이 전해온다. 사슴은 학과 더불어 십장생 중 하나로 수천 년을 사는 장생(長生)의 영물(靈物)이다. 사슴은 천년을 살면 청록(靑鹿)이 되고 500년을 더 살면 백록(白鹿)이 되고, 다시 500년을 더 살면 흑록(黑鹿)이 되는데 검은 사슴은 뼈도 검어 이를 얻으면 불로장생한다고 기뻐했다.

 

 

실제로 18세기에 그려진 옛지도에는 백록담 가운데에서 흰사슴을 타고 윤노리 나무 회초리를 든 신선이 한가하게 사슴 무리에게 물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선은 ᄆᆞᆯ테우리처럼 사슴테우리인 셈이다. 백록담은 바람이 불면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좌측 물가에 활을 들고 매복한 응큼한 사냥꾼이 사슴을 노리고 금방 화살을 쏠 기세다. 백록담의 신선 그림 소재는 18세기 두 개의 옛지도에서 패턴이 비슷하게 그려진 것으로 보아 당시에 백록 전설에 대한 정형화된 스토리텔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577년(선조 10)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는 과거에 급제하자 당시 제주목사였던 아버지 임진(林晋)에게 문안 인사차 제주에 왔다가 섬을 둘러보고 「남명소승(南冥小乘)」이라는 글을 남겼다. 백호는 1578년 2월 12일 구름이 짙게 끼어서 한라산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영실 존자암에 머물고 있었을 때 노승(老僧)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여름밤에는 사슴이 못가로 내려와 물을 마시곤 합니다. 근래에 산척(山尺:사냥꾼)이 활을 가지고 못가에 엎드려 엿보니 사슴이 떼로 몰려와서 그 수효가 백 마리인지 천 마리인지 셀 수 없는 지경인데 그 중 한 마리가 제일 웅장하며 털빛도 흰빛을 띠었습니다. 이 사슴의 등 위에는 백발노옹이 타고 있었지요. 산척은 놀랍고 괴히 여겨 감히 활을 쏘지 못하다가 뒤에 처진 사슴 한 마리를 쏘아 잡았습니다. 이윽고 노옹이 사슴 떼를 점검하는 것 같더니 한가락 휘파람을 불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답니다.”

 

이 이야기는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실렸고, 백호 임제로부터 282년이 지나 1860년 우암(寓庵) 남구명(南九明)의 저서에 약간 변형돼 전해온다. 이처럼 제주의 신선은 한라산에 백록 무리와 함께 살고 있다. 백록담의 옛 이름은 백록홍(白鹿泓). 이름에 못이 높은 곳에 있어 맑고 깊다는 의미가 있다. 맑은 것은 백색의 순수한 이미지로서 숭고함이 있고 깊다는 것은 그윽하고 심오하다는 표현에 걸맞다. 또 백록담 북쪽 가에는 가뭄이면 비오기를 기원하던 ‘도우단(禱雨檀)’이 있는데 아마도 옛 산신단(山神壇) 자리라고 유추할 수 있겠다. 거기서 조선 초기까지 실제로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겨울 추위에 자주 동사(凍死)하자 해발 400고지 아래 현재의 산천단으로 제사를 옮겼다.

 

 

백록담은 하나의 커다란 솥모양의 연못이다. 신선은 백록을 타고 마치 사슴들을 말떼처럼 몰고 와 그곳에서 물을 먹이곤 했다. 백록 신선은 수염이 길고 윤노리 회초리를 들고 있으며 휘파람을 잘 분다. 하나의 전설은 꿈결같은 신비주의를 만들어냈고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할 우리가 오늘 지구 재난의 위기 앞에서 놓인 것은 무위자연이라는 인간의 길을 잊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시작도 자연이었기에 끝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은 자연스런 귀향풀이가 될 것이다.

 

흰 사슴은 보기가 귀한 만큼 매우 상서롭게 여겨져 자연 상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동물의 피부, 털 눈동자에서 나타나는 짙고 어두운 색은 멜라닌이라는 색소 탓이다. 멜라닌은 티로시나아제(tyrosinase)라는 효소에 의해 합성되는데 일부 개체들에서 티로시나아제 유전자가 결핍된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백피증(Leukoderma), 또는 백색증(白色症)이라하고 유전자에 의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질환이다. 이 백피증은 자연 상태에 있는 동물 집단에서 보기가 쉽지 않은데 포식동물의 눈에 잘 띄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19세기 한라산 사슴의 멸종

 

우리나라에서 사슴 그림이 맨 처음 나오는 것은 5세기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와 춤무덤의 수렵도에서이다. 제주의 사슴 그림은 옛 <제주지도>와 <탐라순력도><관덕정> 대들보에 사슴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제주에서는 사슴류를 록(鹿:사슴), 궤자(麂子:고라니), 미록(麋鹿:큰사슴), 장(獐:노루)으로 부르고, 특히 사서(史書)에서는 “궤자(麂子)와 미록(麋鹿)은 제주에서만 살고, 가죽이 세밀하여 질기어 가죽신을 지을만 하다”고 했다. 사슴을 진상할 때 크기를 구분하여 대록(大鹿)·중록(中鹿)·소록(小鹿)으로 나누었는데 해마다 사슴가죽(鹿皮)과 사슴꼬리(鹿尾), 사슴혀(鹿舌)를 공물로 바치기 위해 사슴류까지 모조리 잡다보니 사슴류가 귀해졌다.

 

중종 14년(1519) 6월 13일 “무릇 산물(産物:사슴가죽)이 예와 지금은 다르니, 대록비(大鹿皮) 및 녹포(鹿脯:말린 사슴고기) 등의 물품을 지금부터는 줄이고 다만 제주(濟州)의 세 고을(제주, 대정, 정의)로 하여금 대신 공상(貢上)하게 하기 바랍니다”.라는 대책이 나오기도 했지만 일곱 개 도(道)는 줄여졌지만 제주만은 그대로 진상이 유지되었다.

 

1571년(선조4) 영암(靈巖)ㆍ강진(康津)ㆍ해남(海南) 세 고을에는 녹미(鹿尾)ㆍ녹설(鹿舌)ㆍ쾌포(快脯)가 생산되지 않으니 노루와 사슴이 많이 생산되는 제주도로 정해졌다. 또 1625년(인조 3년) 2월 28일에는 전라감사가 공물(貢物)의 기한이 넘어도 소식이 없자 믿을 만한 군관을 제주로 들여보내 숙마피(熟馬皮:성숙한 말가죽) 50장, 대록비(大鹿皮)・중록비(中鹿皮)・소록비(小鹿皮) 각 10장 등의 것을 전라감사에게 다시 독촉하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17세기 중엽 제주목사 이원진의 『탐라지(耽羅志』에 의하면, 제주목에서는 사슴가죽을 관(官)에 바치는 사람인 ‘추록(追鹿)’ 15명에게 20개월 이상 부임한 사또의 몫으로 중·소록비(中・小鹿皮) 52령(令)과 사슴꼬리(鹿尾) 62개, 사슴혀(鹿舌) 64개를 진상하고, 또 왕의 삼명일(탄생일, 동지, 설날)에 활에 매는 노루가죽(結弓獐皮) 60령을 나누어 진상케 하여 그 댓가로는 물품을 나누어 받았다.

 

그리고 제주목 내수사 노비들은 신역(身役:군역, 노역) 대신, 중록비(中鹿皮) 40령을 진상하고, 공조(工曹)의 몫으로 고라니 가죽(麂子) 2령을 바친다. 대정현에서는 내수사 노비의 신공(身貢:신역)으로 중록비(中鹿皮) 5령을 진상한다. 정의현에서는 공조의 몫으로 고라니 가죽 1령을 진상했다.

 

1703년 10월 11일 제주목사 이형상은 두 현감과 감목관과 같이 진상할 물품을 채우기 위해서 마군(馬軍) 200명, 보졸(步卒:보병) 400여명, 포수 1백 20명을 동원하여 사슴 177마리, 노루 101마리와 그 외 멧돼지 11마리, 꿩 22마리를 잡았다. 가히 하루 만에 한라산 야생동물들과 전쟁을 벌여서 1백 20명에 달하는 포수들에 의해서 동물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나서 영조는 1769년 8월 9일, 탐라에서 진공하는 사슴꼬리(鹿尾)만 진상하는 것을 멈췄다. 임금이 말하기를, "꼬리[尾]가 60조(條)이면 몸통 또한 60인데 만약 1년에 두 번 진공할 경우 사슴[鹿]은 장차 1백 20마리가 될 것이니, 알지 못하겠지만 본도(本島:제주도)에 전례가 있었는가?“라고 묻고 있다. 그러나 사실 있었다. 이보다 많은 전례가 바로 제주목사 이형상 때였던 것이다. 영조가 전국 사슴의 남획을 보고 급기야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그러나 이후의 사슴 사냥을 멈추지는 않았다. 평역미로 내는 세금 대신 사슴으로 대체해주는 바람에 더욱더 사슴의 멸종을 부추긴 것이다.

 

 

여전히 1780년대 후반에도 목사가 임지에 도착했을 때 바치는 공물 가운데 궤자(麂子:고라니)와 장피(獐皮:노루가죽)가 있었으며, 또 체임할 때는 진상물품으로 녹피(鹿皮), 녹미(鹿尾), 녹설(鹿舌)이 있었고, 내수사(內需司)에 중간 크기의 뿔이 있는 사슴〔中角鹿皮〕을 바쳤으며, 공조에는 다시 고라니와 노루 가죽을 따로 바쳤다.

 

예나 지금이나 한번 시행된 제도는 여간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 세금이란 것은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는 않았다. 그래서 제주 목사로 탐관오리가 오면 세금 항목이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공정한 명관(明官)이 오면 늘어난 세금 혁파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1814년(순조14) 5월 28일 제주어사 이재수는 제주에서 진상(進上)하는 말안장용 장피(獐皮) 50여 령(領)·녹피(鹿皮) 20여 령을 아병(牙兵)에게 곡물 대신 해마다 사슴으로 바치게 하자 너나없이 사슴을 남획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슴으로 받는 세금 가격을 헐값으로 쳐주는 바람에, 징수하지 않는 해에는 녹피가 1004~5백령이고, 달피(獺皮:수달가죽)는 300여 령이나 되어서 사슴과 수달이 멸종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제주어사는 크게 우려했다. 머지않아 이재수 어사의 염려는 사실이 되었고 그 후 한라산에는 사슴의 울음소리도, 신선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한라산에 사슴이 보이지 않는 것은 자연 스스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조선시대 과다한 진상 때문에 일어난 인재였다. 한라산에 사슴이 사라지면서 신화와 함께 장수신앙이라는 신비주의도 역사의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김동진, 『조선의 생태환경사』, 푸른 역사, 2017.

김홍식・정종우,『조선동물기』, 서해문집, 2014.

葛洪, 『神仙傳』, 李民樹 譯, 明文堂, 1994.

金尙憲, 『南槎錄』, 洪琪杓 譯注, 濟州文化院, 2008.

金千亨, 『耽羅史料文獻集』 , 도서출판 디딤돌, 2004.

金惠右・高時洪, 『高麗史耽羅錄』, 제주문화, 1994.

리영순, 『우리 문화의 상징세계』, 푸른 역사, 2006.

엘리자베스 콜버트, 『여섯 번째 대멸종』, 김보영 옮김, 쌤엔파커스, 2022.

프란츠 M. 무케티츠 지음, 『멸종, 사라진 것들』, 두행숙 옮김, 들녘, 2005.

『備邊司謄錄』

『朝鮮王朝實錄』

『承政院日記』

『列子』

『濟州邑誌』

『耽羅志』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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