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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29) 도조작가 유종욱

 

언어가 있어야 세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든 것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혹은 무언가 닮은 모양의 추상(抽象) 형태와 확실하게 사물을 지칭할 수 있는 구상(具象) 형태로 구분할 수가 있다.

 

형태와 언어는 매우 밀접하다. 먼저 자연(우주)이 있었고, 사람이 있은 후 감탄사든 공포의 비명이든, 앓는 소리든 어떤 소리가 있었다. 자연 주변에 형태가 있으므로해서 비로소 사물에 대한 언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을 전제로 발달했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사물의 이름이 그렇게 해서 명명되었고, 언어가 있으면 대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말(馬, horse)’이라는 언어는 가리키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만일 그런 대상이 없었다면 말(馬)이라는 언어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앞에 말(馬) 조각이 있다. 실제 말(馬)은 아니어도 모두 말(馬)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들은 실제 말(馬)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말(馬)이라고 불러도 누구 한 사람 이의(異義)를 제기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아는 말(馬)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말(馬) 작품에 대한 ‘변형(deformation)’이나 ‘왜곡(distortion)’은 그것이 작품이라는 또 다른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형태로 말하는 조각가

 

언어는 세계를 말하고, 세계의 구성은 형태들로 정리된다. 조각가는 우리 세계를 형태로 말하는 예술가이다.

 

유종욱은 흙과 대화한다. 부드러운 흙은 대지의 살갗이자 혹은 자신의 살로 느끼는 작가다.

 

처음 흙이 자신의 손에 전해지면 촉감은 비로소 생각하게 한다. 촉감은 감각 가운데 가장 직접적인 몸의 경험이기 때문에 어떤 지각보다도 빨리 상상력을 자극한다. 흙의 상상력은 각양각색의 말(馬)들을 탄생시킨다.

 

예술가는 창조적이어야 하고 그 저변에는 즐거운 놀이가 있다. 놀이의 본질은 자아의 즐거운 해방이다. 형식이 자유로우면 즐거움이 되고 그 형식이 도덕이나 윤리를 갖게 되면 의례(儀禮)가 된다. 예술가는 놀이하는 인간이면서 끊임없이 자아를 해방시키는 인간이므로 의례가 아닌 즉흥적인 즐거움을 택한다.

 

모든 아름다움에는 즐거운 상상과 유희가 있다. 만드는 사람은 이미 상상력 속에서 그것의 쾌를 느끼고, 감상자는 완성된 작품에서 그 쾌와 교감한다. 사실상 쾌는 아름다움에 내재돼 있으며, 이름다움에는 선정적인 감정이 숨겨져있다.

 

형태에는 생명이 있다. 무기질이 조각가를 만나면 생명을 부여받아 그 형태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흙이 아니라 대상(조랑말)으로 사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유기체로 인식한다. 예술의 위대함이란 사물의 대반전에 있다. 작품의 형태에서 흙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으며, 조랑말이 있어 스스로의 내레이션을 만들어간다. 형태의 삶은 새로운 이야기와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말, 조랑말의 작가

 

“저는 어릴 때부터 동물들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초기 작품들은 주로 동물들이었습니다. 조용히 동물들과 나누는 무언의 대화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나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말(馬)의 상징성 연구를 통해 제주 조랑말을 깊이 알게 되었고, 그래서 곧장 홀린 듯이 제주로 향했습니다. 조랑말은 바로 나였고, 한국의 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유종욱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회화, 조각, 도조(陶彫)를 전공한 통섭적인 작가이다. 한국말(馬)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제주 조랑말을 재해석하여 역사 속의 말의 의미를 통찰할 수 있었다.

 

 

제주 조랑말은 1986년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데 제주마는 ‘제주조랑말, 조랑말, 탐라마’ 등으로 불렸다. 일찍이 탐라국시대에 이어 신라시대, 그리고 11세기 고려시대에 제주마를 공물로 바친 기록이 있으며, 충렬왕 2년(1276)에 몽고마 160필을 지금의 성산읍 수산평에 목장을 개설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 말과 관계된 사람은 고득종, 김만일과 그의 후손들 감목관들이 있었고, 조선시대 제주도 목장의 체계는 10소장을 기반으로 하여, 제주목에 1∼6소장과 우도장, 대정현에 7∼8소장과 모동장, 정의현에 9∼10소장과 녹산장, 산장, 침장이 있었다.

 

조랑말은 작은 체고(體高), 다리가 짧고 배가 볼록한 신체 부조화의 대명사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웃음뿐이었을까? 아니다. 사실상 체격은 왜소하나 체질이 강건하고, 지구력과 내병성(耐病性)이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질 또한 온순하여 사람을 잘 따른다. 나쁜 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번식력도 강하다.

 

옛 제주에서는 조랑말을 운반용으로 사용했다. 매우 어질어서 아이들도 조랑말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었다. 물을 먹이는 일, 촐(꼴)을 주는 일, 말을 들판에 매러 다니는 일, 간단한 마차 운행 등이다.

 

조랑말은 보는 것과 다르게 매력적인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종욱은 자신을 닮은 짐승이라고 생각하여 통섭적 접근으로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조각형식을 고민하게 된다. 회화와 입체의 만남이 가능한 길, 색과 형태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도조조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작업이 동양 전통에 진용(秦俑)이나 당삼채(唐三彩), 신라의 토용(土俑)과 같은 고대의 부활일 수도 있으나 반전을 노렸던 그는 전통의 해석을 현대적인 의미의 위트와 해학미로 바꿔 오롯이 조랑말의 습성과 형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 두 가지 의미로 나타난다. 그것은 여전히 성장기의 동물과의 만남에서 즐거운 놀이로 각인된 점, 제주에 이주한 후 제주 오름과 초가의 선(線)이 한국의 선과 중첩되면서 조랑말의 동글동글하게 궁굴린 신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점이 그것이었다. 어쩌면 추에서 미로, 부조화에서 완숙한 선으로 탄생한 것이다.

 

결국 로컬리즘의 향방은 수평선 너머 글로컬리즘과의 만남일 것이다. 유종욱은 이를 위해서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중국, 홍콩, 서울, 제주에서 개인전 30회와 국내외 그룹 및 단체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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