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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 이야기(11) 원근법, 사진의 기원을 찾아서 (1-2)

 

◇ 르네상스, 만물의 중심은 인간

 

우리 인류세의 한 점인 르네상스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혁신적인 일로 보이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우리 마음에는 늘 어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이탈리아어 리내시멘토(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말로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다.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이탈리아에서 확실한 토대를 가지게 된 것은 지옷토(Giotto, 1266~1337) 시대의 일이었고 지옷토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유도해낸 인물로 칭송됐다.

 

다시 말해 중세의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지역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지옷토의 새로운 업적들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혁신으로 보였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모든 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4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고전시대에 번창했었으나,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북쪽의 야만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이 영광스러운 과거를 다시 부흥시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피렌체는 단테와 지옷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였기에 바로 이곳에서 15세기 초에 일단의 미술가들이 과거의 미술개념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E.H.곰브리치, 1999).

 

이와 같이 르네상스 운동은 이탈리아 피렌체가 그것의 근원지가 되었다. 이 운동은 과거의 노스탈쟈가 아니라 현재 현실의 절박한 과제로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피렌체 인문주의 정신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만물의 중심은 인간이다.”라는 것이었고, 신 중심의 중세의 가치와는 달리 인간이 역사와 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단테와 지옷토는 인문주의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중세의 긴장된 종교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 회복의 운동이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 hardt, 1818~1897)에 의하면, “중세에는 인간 의식의 양면(兩面)이 있었는데, 바깥 세계를 향한 의식과 인간 내면을 향한 의식, 이 두 가지가 안팎으로 베일을 쓰고 꿈을 꾸거나 반쯤 깨어난 상태로 신앙과 어린애 같은 집착과 망상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바라본 세계와 역사는 기묘한 색채를 띠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종ㆍ민족ㆍ당파ㆍ 단체ㆍ가족 따위의 보편적인 범주로만 이해하였다.”

 

14세기 초부터 유럽은 온갖 종류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러 차례의 기근은 사람들을 약하고 병들게 만들었고,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엄청난 인구가 죽어나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쟁 또한 잇따라 일어나 행정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시민들은 가중된 세금과 군인들의 약탈을 견뎌내야 했다. 사회적 상황이 극에 달하다보니 경제 성장은 곤두박질치고, 경제적 타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촌의 농민들에게 전가되었다. 농민들은 농토를 영주들에게 뺏기듯 팔고는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이루고자 했으나 거기에서 마주친 것은 오로지 빈곤과 고생뿐이었다. 결과는 모든 게 사회적 혼란으로 되돌아왔으며, 이런 현상은 전체 유럽 전역에 되풀이해서 나타났다.

 

13세기 유럽을 특징 지었던 통일성은 사라졌으며, 제국과 교회는 모두 분열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륙의 이 시기를 그저 파괴와 쇠퇴의 과정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13~14세기 두 세기의 걸친 봉건적 분열은 왕권국가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이로부터 다른 유형의 행정체계가 서서히 발전해 나갔다. 유럽의 번영이 점점 회복되어 상업과 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맞이했다. 1378년 프랑스 아비뇽에 새 교황청이 생기고, 또 로마에 교황청이 생기면서 두 명의 교황이 탄생하는 교회의 대분열(1296년~1417년)을 맞았지만 교회의 통일성이 회복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차지하면서 종교생활과 관계된 새로운 표현양식들도 발달하게 되었다. 

 

바자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에는 르네상스 시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도나텔로 등 세 명의 예술가가 있는데 젊은 예술가의 지도자는 필립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적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가 만든 주요 작품은 모두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으며,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술의 조형적 영역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은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하고 알베르티가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다.

 

이 원근법은 그 후로부터 600년 가까이 오늘날까지도 서양미술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원근법과 환영주의

 

“Perspectiva라는 말은 라틴어로서, ‘통해서 봄(透視, Durchsehung)’이라는 의미이다.” 알프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의 개념을 독일어로 처음 의역하고 있으며, 완벽한 원근법과 인체비례를 처음으로 북유럽에 들여온 이도 바로 뒤러였다. 그런데 이 라틴어는 보에티우스(Boethius)에게도 나타난다. 뒤러는 말한다. “눈은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라고.

 

미술사학자 어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투시법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투시법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러나 인간과 맞서고 있는 이 자립적인 세계를 인간의 눈으로 끌어옴으로써 인간과 사물의 거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파노프스키는 이 투시법을 화가가 자신을 들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행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이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 그것은 인위적으로, 또는 수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현한 그림으로 인식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시기에 들어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재현하려는 시도로 만들어 낸 것이 투시원근법이라는 사실이다.

 

레오나르다빈치는 원근법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선 원근법(線遠近法, perspective liniale):눈으로 볼 때 물체가 작아지는 크기를 다룬다.

색채원근법(色彩遠近法, perspective di colore):눈에서 멀어지면서 색이 변화하는(감퇴하는) 방식을 다룬다.

소멸원근법(消滅遠近法, perspective speditione):물체가 거리에 비례하여 덜 완성된 것(외곽선의 명확성으로 떨어져 보이는 것)을 다룬다.

 

“회화에서의 으뜸은 물체가 튀어나오듯 보여야 하고 그 물체를 둘러싼 상이한 거리에 있는 바탕이 그림의 전경과 수직면상에 있듯이 보여야 한다.” “선 원근법은 눈의 구조에 의한 것이고, 색채원근법과 소멸원근법은 눈과 눈에 보이는 물체 간의 거리 사이에 존재하는 대기(大氣:공기)에 의한 것이다“라고 다빈치는 말한다.

 

사실 투시도법(선 원근법)은 3차원의 대상물을 평면에 그리고 입체효과와 원근감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기하학적 원근화법이다. 즉 소실점(vanishing point)의 기하학적 의미를 명확히 포착하는 기법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하여 1410년경에 발견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근법에 있어서 우리가 마사초((Masaccio, 1401 ~ 1428)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그린 <성 삼위일체>가 처음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 프레스코 벽화로써 환영주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스물일곱 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성 삼위일체> 그림을 보면 십자가의 예수를 중심으로 위에는 하나님이, 좌우로는 왼쪽에 성모마리아, 오른쪽에 사도 요한이 있고, 아치 문 입구 좌우로 주문한 가문의 부부가 서 있는 모습이다. 천정은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두운 하단에는 석관 위에 해골의 시신이 누워 있고, 바로 그 위로 작은 글씨가 씌여있다. “나도 한 때는 그대였고, 그대 또한 내가 될 것이다.” 곧 당신도 나와 같이 죽어서 이런 해골의 모습이 될 것이다. 라는 경구이다.

 

미켈란젤로 제자이자 건축가이며 화가였던 지오르지오 바자리(Georgio Vasari, 1511~1574)는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말한다.

 

“옛날 피렌체에는 명성이 자자하고 근면한 생활을 즐기던 사람이 있었다. (……) 피렌체의 건축가 겸 조각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에 대해서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 당시 원근법은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었으며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는 이 원근법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한 끝에 투시도의 기본 지평선(地平線)과 표고(標高) 등의 교차선을 사용하였다. 이 천재적인 발견은 데생 기술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회화에서의 으뜸은 물체가 튀어나오듯 보여야 한다"는 이론은 원근법을 극대화한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미술에서 환영주의(幻影主義)라고 하는 것은 바로 비례의 정확성과 생생한 사실성에 기반을 둔 그림을 말하는 것이다. 환영주의의 시초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탄생한 원근법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화면이 2차원이라면 거기에 입체적인 형태를 그려 3차원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의 사물인양 착각하게 만드는 미술의 기법을 가르쳐 환영주의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게 된 원근법의 영향으로 거리감과 형태를 3차원으로 표현함으로써 19세기까지 줄곧 대세를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눈앞의 현실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미술에 매우 익숙해 있다. 1861년 구스타프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무릇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재하는 현실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회화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단어로 삼는 물리적인 언어이다.”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상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하고 촘촘하게 생동감 있도록 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라파엘로나 다빈치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사실적인 그림이라도 결국 2차원의 평면에다가 실재의 세계처럼 눈속임에 불과한 그림인 것이다. 환영주의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짜 현실세계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환영(幻影)’을 준다는 의미에서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부른 것이다.

 

 

그림에 대한 환영주의의 이론적 기원은 르네상스시대 원근법 옹호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窓)이라는 생각을 처음 암시한 사람은 L. B.알베르티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러한 생각에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했다. “원근법이란 아주 투명한 유리창 뒤에 서서 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유리창 표면에는 유리 뒤에 위는 물체들이 그려지게 될 것이다.”

 

서양미술의 전통은 20세기 현대미술이 도래하기까지 이 환영주의가 화면을 지배했다. 원근법에 기반을 둔 이 환영주의 미술은 19세기가 되면 초상화의 대체 수단으로써 마침내 화가들의 새로운 시도인 사진술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김정숙, 『연표로 읽는 서양미술사』, 현암사, 2021.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장 폴 리히터 편집, 루비박스, 2015,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대진 옮김, 아카넷, 2012.

B.크로체, 『사고로서의 역사 행동으로서의 역사』, 최윤오 옮김, 새문사, 2013.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옮김, 한길사, 2013.

박정자,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 기파랑, 2014.

스테파노 추피, 『신과 인간 르네상스 미술』, 하지은 외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1.

신준형,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 사회평론, 2015.

E.H.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외, 예경, 1999.

E.H.곰브리치. 『예술과 환영-회화적 재현의 시리학적 연구』, 차미례 옮김, 열화당,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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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티, 『회화론』, 김보경 옮김, 에크리, 2020.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기숙 옮김, 한길사, 2003.

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4.

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안인희 옮김, 김영사, 2019.

이언 자체크 책임편집, 『미술사연대기』, 이기수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9.

이상현,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삼화, 2017.

지오르지오 바자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李根培 譯, 한명, 2000.

G.G.콜링우드, 『서양사학사』, 김봉호 옮김, 탐구당, 2017.

프레데리크 들루슈 편, 『새 유럽의 역사』, 윤승준 역, 까치, 2009.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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