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담을 받으러 사무실에 오시는 분들은 참 다양하다. 어느 특정한 분야만을 전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동네 변호사를 표방하다보니 더 그런 듯 싶다.
상담을 받으시는 분들의 상황은 정말 다채롭다. 평소 믿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있었던 사소한 일부터, 세상이 변해서 범죄자가 되었다는 푸념까지. 나는 어느새 ‘굿 리스너’(Good Listener)가 되었다.
물론,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과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상담을 진행하며 ‘굿 리스너’의 역할에 충실하면, 오히려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마음에 법률상담을 받으러 오신 분들은 굳이 재판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소송이 아닌 더 신속하고 효율적인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내 수입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사건을 수임해서 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 그러나, 굳이 내키지 않는 사건은 수임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수임 여부를 오롯이 내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수임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법률적인 소신과 양심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신과 양심과 함께 이른바 ‘눈치’를 신경 쓰게 된다. 뉴스에 나왔던 사건은 정말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이상 피하게 된다. 법원 앞의 시위대가 나를 공격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은 차마 안고 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을 자의로 맡았던 경험은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다른 변호사들도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사건을 굳이 맡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흉악한 살인범을 변호하며 돈만 밝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특정 사건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참 마음이 복잡하다. 재판과정에서 대외적으로 공개될 수 있는 부분은 전체의 사실관계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당연히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을 가지고 해당 사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공개된 부분은 해당 사건에서 전혀 법률적인 쟁점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해당 사건을 맡은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감내하여야 한다. 속상하면서도, 변호사의 업(業)이겠거니 여길 수밖에 없다.
비난이 도를 넘어, 실질적인 위협을 겪는 변호사님들의 소식을 접할 때도 한다. 법조인들끼리 알음알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도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사건 이후에, 법률사무소 내 CCTV 설치와 삼단봉 공동구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안내 메일을 받아보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의 사명을 정한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고,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한다.
변호사의 사명감은 잊은 채, 불성실한 태도로 의뢰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변호사도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는 자신의 소신과 양심에 따른 사명감을 되새기며 살아간다. 업무에 대한 가장 큰 동기부여는 경제적 이득이 아닌 법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다수의 변호사들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오늘도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외적으로 변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저 변호사의 진심이 모든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묵묵히 1분 1초를 더욱 충실하게 채워 나간다.
☞이용혁은?
=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변호사. 변호사시험 합격 후 제주도청 특별자치법무담당관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제주지방법원 사거리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협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제주지방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제주도 지방노동위원회, 제주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의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지검 청원심의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민로스쿨 특별강연과 제주도 공무원을 위한 특강에도 힘쓰며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