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 보기가 무섭다.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흉기난동’, ‘살인예고’ 등 살벌한 단어들이 쉴새 없이 쏟아진다. 치안 좋기로 유명했던 우리나라에서, 장갑차와 경찰특공대가 곳곳에 보인다. 사소한 시비가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보도된다.
법은 최소한의 규범이다. 예의범절을 갖추고 삼강오륜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즉,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말 최소한의 규범을 법이라는 형태로 정하고 이에 위반하는 경우 국가가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특히,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전제로 하는 ‘죄형법정주의’는 우리나라 형사법의 근간이다. 법에서 정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확정되지 않는 이상 범죄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저지른 행위가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기까지 절차는 복잡하고 시일이 소요된다.
국민의 법감정과 법체계의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당장 대로변에 흉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단순히 흉기를 소지한 채 돌아다니기만 했다면, 형사소송법상 바로 체포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대로변에 있던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는 사정은 고려되기 어렵다.
결국, 어떤 범죄사실이 벌어진 이후에 사후적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계처럼, 범죄 직전에 현장으로 투입되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형사사건을 수행하며 느낀 점은, 범죄는 자연재해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폭우와 태풍을 막을 수는 없지만, 안전한 곳에 머물며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국민이 투철한 준법의식을 모두 갖고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범죄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오늘만 사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접한 적이 있다. 구속영장실질심사 단계의 국선변호인으로 지정되면, 종종 볼 수 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술에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지르고,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피해자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오늘만 사는 사람이, 최소한의 치료비 또는 합의금을 지급할 여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나 하면 다행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범죄의 대상은 경찰공무원, 응급의료진인 경우가 많다. 사회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분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사명감을 가지고 현장 일선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오히려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제대로 된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한다.
이런 사건을 종종 접하다 보니 사람을 믿지 않고 무서워하는 경향이 생겼다. 법조인이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되새기며 시비를 애초에 피하고자 노력한다. 술자리를 갖게 되더라도, 최대한 조용히 마시고 일찍 자리를 마무리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참 씁쓸하다. 스스로 우리 사회의 안전을 신뢰하지 못하고 사람을 불신하는 데에서 나오는 이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 매사에 모든 순간을 의심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 중에, 젊은 날의 객기로, 안전불감증 등에서 비롯된 범죄 피해는 오롯이 내가 감내하므로, 피할 수 있는 범죄는 피해갈 필요가 있다. 범죄를 당하면 당연히 나만 손해다.
☞이용혁은?
=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변호사. 변호사시험 합격 후 제주도청 특별자치법무담당관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제주지방법원 사거리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협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제주지방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제주도 지방노동위원회, 제주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의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지검 청원심의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민로스쿨 특별강연과 제주도 공무원을 위한 특강에도 힘쓰며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