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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방 오영관...조선 숙종 때 대정고을의 장사

장사 찰방 오영관(1694~1755)

 

오찰방의 아버지는 튼튼한 자식을 낳으려 해서 부인이 임신하니 소 열두 마리를 잡아 먹였다. 튼튼한 아들놈이 태어나려니 기대했는데, 낳은 것을 보니 딸이었다. 아버지는 약간 서운하였다.
다음에 다시 임신이 되었다. 오찰방의 아버지는 다시 소를 잡아 부인에게 먹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다시 딸을 낳을는지 모르니 아홉 마리만 잡아 먹였다. 그런데 낳은 것을 보니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열두 마리를 잡아 먹일 것을 잘못했다고 약간 서운해 했다.

 

소를 아홉 마리나 먹고 태어났으니 오찰방은 어릴 때부터 힘이 셀 수밖에 없었다. 대정 고을에서 씨름판이 벌어지면 언제나 오찰방 독판이었다. 제주 삼읍에서 내로라하는 장사들이 모여들어도 오찰방을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

 

오찰방은 어느 날 누님에게 힘센 자랑을 하였다. 제주 삼읍의 장사들이 모인 씨름판인데 자기를 당해 내는 놈이 하나 없더라고 뽐낸 것이다. 그러자 누님은,

 

“이번 한림읍에서 씨름판이 있을 터인데 거기 출전하면 반드시 너를 이길 장사가 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오찰방은 픽 웃어 넘겼다.

 

오찰방은 다시 힘을 과시하려고 한림읍 씨름판에 나갔다. 씨름이 벌어졌는데 과연 몇 사람이 달려들어도 오찰방을 이기는 장사가 없었다. 오찰방은 득의양양하여 군중을 휘둘러보았다. 이때 좀 연약해 뵈는 사내 하나가 구경꾼들 속에서 나왔다. 한판 붙어보겠다는 것이다. 오찰방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씨름을 붙었다. 연약해 뵈는 사내는 그러나 의외로 힘이 세었다. 이리저리 몰아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찰방은 있는 힘을 다 내어 사내를 들어올리려 했으나 오히려 자기가 넘어지고 말았다. 씨름판에서 처음으로 지고만 것이다.

 

‘세상에 나를 이기는 장사가 있다니!’
오찰방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 연약한 듯한 사내는 실은 오찰방의 누님이었다. 오찰방이 너무 안하무인이 되어 가니 한번쯤 기세를 꺾어주려고 누님이 남장을 하고 씨름 상대를 해준 것이었다.

 

오찰방은 그것을 몰랐다. 집에 돌아와 씨름에 진 게 억울하다 원통하다 누님한테 야단이었다. 누님은 그것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병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오찰방의 가죽신을 집의 서까래 틈에다 끼워 놓아두었다. 오찰방은 여전히 씩씩거리며 그 힘센 놈이 누구인지 찾아봐야겠다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가죽신은 서까래 틈새에 끼워져 있었다. 오찰방이 신을 빼내려고 아무리 힘을 써도 빼낼 수가 없었다.

 

그때 누님이 와서,
“뭘 그까짓 걸로 그리 힘을 쓰느냐?”

 

하며 서까래를 쑥 위로 들어올려서 신을 빼내 주었다. 그제야 오찰방은 누님의 힘을 알았고 그 씨름판의 연약해 뵈는 장사가 바로 누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 이석범, 제주전설집 1, 제주문화원, 2011

 

전설 속의 인물, 오찰방에 대한 전설의 한 토막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를 차치 하더라도, 실제로 전설 속 주인공인 오찰방이라는 인물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전설은 전설일 뿐, 현대문명 속에서 소위 과학적 사고의 신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에게는 전설은 단지 허구로서 옛날 사람들이 만들어낸 재미난 이야기일 뿐이라 치부되기 때문이다. 오찰방의 실존은 ‘구멍 난 치마폭 사이로 흘러내린 것이 360여개의 제주도 오름이 되었다’는 전설의 주인공 설문대할망처럼 그 실존을 믿으려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오찰방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오찰방(吳察訪)은 조선 숙종 때 대정 고을에서 태어나 종6품의 찰방이란 벼슬까지 지낸 인물로, 이름은 영관(榮寬)이다.

 

근래에 고쳐 세운 그의 비문을 통해 장사로써 비범했던 행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본관은 화순이로 숙종 갑술년(1694)에 생하셨으며 소년시절부터 타고난 자질이 英偉하고 성품이 쾌활하여 문무에 열중하고 孫吳兵法을 배우며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마함에 얼마나 초인적인지 산방산을 뛰어넘고 함이 나르는 새와 같으셨다. 공은 항시 닦은 실력으로 영조 즉위년에 반적 이인좌의 무리가 충청 경상 평안 3도에서 병을 일으키자 공이 이를 평정하니 수문장이 되고 의금부도사를 겸직 중 또 구월산에 騎牛賊이 한양에 침입하여 궁궐 내에까지 소란을 피우니 공이 군졸을 인솔하여 구월산까지 추격하여 적을 일망타진하니 임금께서 그 공로를 높이 칭찬하시고 선전관 활인서 별제와 내섬시 주부 및 벽사도찰방 어모장군을 임명하셨고 英廟 贈兵曹參議를 하셨다.…’

 

장사로서 비범했던 한 사람의 일대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전설 속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 우리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였던 것이다.

 

글=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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