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암의 제자...문세걸(文世傑:1487~1521).
오현(五賢)의 한 분인 충암(冲菴) 김정(金淨:1486~1521)의 제자로 34세에 요절한 인물, 문세걸(文世傑:1487~1521). 충암은 그를 탐라의 호걸[耽羅之傑]이라 일컬으며 애도시(哀悼詩)를 남겼으니, 심재의 탐라인물고에 전해지는 충암의 시를 통해 그의 사람됨을 가늠해볼 따름이다.
심재는 문세걸에 대해 「탐라인물고」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문세걸의 자는 사호(士豪), 왕자 창우(昌祐)의 후손이다. 사람됨이 활달하고 …(원문 3자 삭제). 34세에 세상을 떠났다. 충암 김정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어 애도하였다.
술 깨고 그대를 생각하니 / 눈앞에 떠오르는 그대의 모습 / 백 년 인생 그 의미 어찌 알리 / 급히 지은 기장밥은 다 익었고 / 두다 만 바둑은 그대로인데 / 누가 와서 바둑판을 정리할거며 / 술 모임 어찌 없으리오만 / 마음을 붙일 곳 정녕 아닐세 / 기개는 귀신도 물리칠만하여 / 만나는 사람들은 허리 굽혔지만 / 순박한 기질로 밭을 일구니 / 가슴을 터놓을 상대였는데 / 그대는 지금 저 세상에서 / 어디에다 마음을 열어두었나 / 탐라에 있던 이 사람 / 아아!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 어머니는 늙고 딸은 어린데 / 모든 일이 부질없이 되 버렸구려 / 가련한 뜬 구름 같은 인생 / 내일을 점칠 수도 없으니 / 황천에서나 만날 수 있을까 / 저승이 아득하여 만날 수 없다면 / 꿈에서나 만날 수 있을까 / 빈 집에서 외로움 참아내는데 / 쩌억 쩍 쩌억 쩍 / 옛사람의 나무 베는 소리처럼 /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 모두가 한 소리로 통곡을 하네’(원문, 심재집 2, 402쪽)
도덕과 학문과 절의 면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추앙되어졌던 오현의 한 분인 충암 김정이 절명사(絶命辭)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던 제주에서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할 만한 상대’였다는 문세걸에 대한 심재의 기록은 위와 같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충암도 문세걸을 보낸 그해 10월 억울하게 사사(賜死)되고 만다. 꿈에라도 볼까 오매불망 그리던 사제 간의 애틋한 정은 저승에서나마 호연(浩然)한 가슴을 풀어헤치고 그간의 회포를 나누었으리.
글=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