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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필...조선초 첫 제주출신 향교 교수

 조선초 제주교육의 기틀을 다진 김양필 

 

 유교국가인 조선의 건국원년(1392)에 제주향교가 세워졌다. 조선의 흥망과 함께 그 성쇠를 같이 하였던 제주향교. 그 흥망의 세월 속에 제주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제주향교의 교수(敎授)가 된, 현 제주시 영평동 출신의 김양필이 있었다.

 

심재는 김양필(金良弼:생몰년 미상)에 대해 「탐라인물고」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양필의 본관은 경주이다. 문장에 능했고 글씨를 잘 써서 충암(冲菴) 김정(金淨)이 일찍이 -원문에 5자 삭제-라고 일컬었다. 중종 때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여 본주(제주)의 교수(敎授;종6품)로 임명되어 주자(朱子)의 백록동강규(白鹿洞講規)를 모범으로 삼아 후진을 권면(勸勉)하고 장려하였다. 1536년(중종 31)에 목사 심연원(沈連源)을 도와 (제주 남성 안에) 향학당(鄕學堂)을 새로 짓고 제주향교를 수리하였는데, 모두에 지화(指畵;내력을 밝힌 記文을 뜻함인 듯)가 있다. 명륜당(明倫堂)의 게판(揭板) 위에 다음의 율시 1수가 있다.

 

유학이 기울까 그 누가 걱정할까(誰憂斯學向頹傾)

 

공부할 학교가 새로 다시 지어졌다네(致使黌堂得再成)

 

촉군(蜀郡)엔 문자(文子)의 교화가 더해지고(蜀郡幸沾文子化)

 

원주(袁州)는 조군(祖君)의 다스림을 기꺼이 받아(袁州欣見祖君營)

 

한 근원의 도리를 의지하고 탐구하여(一源道理堪憑討)

 

변치 않는 인륜 이어 밝힐 수 있었으니(萬古彛倫可繼明)

 

바다고을 좁고도 멀다 말 하지 마오(莫謂海邦褊且遠)

 

참말로 뛰어난 평판 서울까지 이르리라(定應聲譽達天庭)’

 

-원문, 심재집 2, 402쪽

 


 

※ • 촉군(蜀郡) : 현재 중국 사천성. 변방을 뜻함. 문옹(文翁)이 태수가 되어 크게 교육을 일으킨 곳. 제주를 비유한 말. 문자(文子) : 한(漢) 때, 촉군(蜀郡)의 군수가 되어 교화(敎化)를 숭상하고 학교를 일으켜 문풍이 크게 진작되었다. 이에 따라 무제(武帝) 때 군마다에 명하여 나라에 모두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 원주(袁州) : 강서성에 속한 고을. 지금의 의춘현(宜春縣). 제주를 비유한 말. • 조군(祖君) : 조무택(祖無擇). 송(宋) 때, 원주의 지사가 되어 향학을 처음 지은 사람(『古文眞寶』袁州學記 참조).

 


 


 

 변변치 못한 박봉의 지방 관료. 조선시대 내내 지방향교의 교수라는 직함은 언제나 이런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하여, 변방의 섬 제주의 관학(官學)은 그 이후의 쇠락은 차치하고, 당시 ‘문장에 능했고 글씨를 잘 썼던’ 제주사람 김양필에 의해 중흥(中興)의 기틀이 다져지게 된 것이다.

 

글=백종진/ 제주문화원 문화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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