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또 형식적이었다. 행정이 하는 것이 '다 그렇지'라는 말이 실감나는 보고회였다. 요식행위가 따로 없었다.
제주도가 행정체제개편에 따른 도민의견 수렴을 위한 도민보고회가 말 그대로 ‘보고회’로 그쳤다.
제주도는 12일 행정체제개편위원회(행개위)가 제시한 권고안에 대한 ‘행정시장 직선제’에 따른 도민보고회를 제주시청 제1별관 대회의실에서 가졌다.
이날 도민보고회는 오후 2시부터 진행됐다. 이에 앞서 시민단체들은 보고회장 입구에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요구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며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보고회는 행정체제개편추진단장인 제주도 오홍식 기획관리실장의 인사말과 행개위에 참여했던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의 설명, 질의·답변 순으로 진행됐다.
오 실장의 인사말 이후 정 교수의 행정체제개편의 추진과정과 권고안인 ‘행정시장 직선제’ 결정 과정, 향후 추진계획 등에 대한 설명회가 1시간 10여분 동안 이뤄졌다. 오홍식 부시장의 인사말 시간까지 포함하면 1시간 20여분 동안 진행된 것이다.
정 교수는 “행개위 위원으로서 그 동안 결정하게 된 것을 소상하게 설명 드려 도민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와드리기 위해 왔다”며 행정체제 개편에 따른 추진배경, 활동, 조례개정 및 제주도의회 부대조건, 3개 대안 내용 및 검토, 최종안 권고 및 방향, 시장직선·의회미구성안 주요 내용, 향후 추진계획 순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설명은 행정시장 권한강화, 시장직선·의회구성(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해서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만 이뤄졌다.
그는 “‘행정시 기능강화’안은 행정시장의 기능을 강화하는 보완책에 그친다. 또 시장직선·의회구성안은 이론상으로는 바람직하나 제주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의 비전 훼손, 인구 60만 명의 특수성에 적합하지 않다.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장점과 함께 단점을 설명했다.
이에 반면 행개위가 권고한 ‘행정시장 직선제’와 관련해서는 “제주특별자치도와 국제자유도시의 비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장 민주성 요구에 부합한다. 제주도민의 변화 욕구에도 부합해 현실적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한 단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행정시의 재정 건전·안전성을 위한 국비확보의 어려움이나 풀뿌리 민주주주의 실현의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한마디로 일방적인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한 홍보였다.
더구나 의견수렴이라는 명목의 보고회 였지만 의견을 꺼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할당된 시간은 고작 10분.
이날 정 교수의 설명이 끝난 뒤 청중들은 대거 빠져나갔다. 몇몇이 질문을 하려했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소극적이었다.
결국 일부 시민이 질문하기 위해 마이크를 달라고 해서야 질문이 이뤄졌다.
한 시민은 “부시장에 대한 인사권이 (직선 행정시장에게)는 없다. 또 동·서부로 나눈 특수성을 감안해 부시장을 3명 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다른 시민은 “기초의회가 없는 행정시장은 현재의 도지사와 같이 제왕적 행정시장이 될 것이다. 견제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지역의 작은 일에도 귀를 닫아 버릴 것이다. 때문에 기초의회도 같이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시민은 “진짜 행정시장이 직선제로 선출되면 예산권과 인사권이 시장에게 오느냐”며 확인했다.
이에 정 교수는 “육지의 경우도 부시장·부군수는 도지사가 임명한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로 행정부지사는 정부가 임명한다”며 “이는 도와 시의 인사교류다. 양 기관이 업무 연계를 위한 것이다. 만약 시장이 부시장을 임명하면 인사의 융통성을 훼손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또 “행정시장의 인사권·예산권을 특별법에 집어넣겠다는 것이다. 조례에 규정하면 다른 도지사가 와서 생각이 달라 도로 가져갈 우려가 있다. 이를 특별법에 집어넣어 생각이 다른 도지사가 손을 못 대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초의회 부활과 관련 “도의회가 도지사와 시장을 감독 통제한다. 주민들이 뽑아준 시장인데 주민들의 의견에 소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박재철 자치행정국장도 “행정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한 것은 공감한다. 도의회에 행정시를 담당하는 특별위원회나 별도 상임위원회를 두면 해소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질문과 답변이 오간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했다. 질의 답변 도중 정 교수가 "시민이 뽑은 시장이 민의를 벗어나서 방치하는 제도는 만들지 않는다. 맡겨 달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기도 했다.
정 교수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사회자는 “나가시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서면으로 질의서를 받겠다”며 서둘러 보고회를 마무리 했다. 그러자 오히려 답변을 하던 정 교수도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도는 질문자가 더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도민보고회의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부분은 또 있다. 도는 현장에서 질문을 받지 못할 경우 ‘서면질의’를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받은 서면질의서는 단 2장에 그쳤다. 1장은 ‘자료를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고 또 다른 1장은 ‘잘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참석자 대부분 통장 등 자생단체장들이었기 때문이다. 평일 낮에 한 탓에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이다. 게다가 동원된 공무원들도 있었다.
통장이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며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제이누리=김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