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괘(否卦)(1)
비(否)는 좋지 않다, 불가하다, 불만, 불선의 뜻이다. 좋지 않은 길은 바로 가로막힐 수 있다. 가로막히면 곳곳이 통하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일도 천지를 뒤엎을 기세로 다가온다. 앞길은 깜깜하게 된다. 중요한 길에서 한 걸음 잘못 나아가면 곳곳이 장애다. 그리하여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며 견디지 못할 정도로 피곤하게 된다.
그렇기에 분투하는 과정에서 때때로 생각하여야 한다. 일마다 숙고하여야 하며 끊임없이 자기의 앞길을 위하여 넓고 평탄한 길을 닦아야 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 그렇게 해야 운무를 거둬낼 수 있고 때가 되어 좋은 운이 돌아오게 되면서 내내 막힘없이 잘 통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 편안하고 무사태평한 희열을 향유하게 된다.
진퇴유곡에 빠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사람에게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다. 달에는 흐리고 맑고 차고 이지러짐이 있다.
비관에 빠졌을 때, 헤어졌을 때, 우리 마음이 검은 구름에 휩싸였을 때에 어떻게 하여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비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니, 군자가 올바름을 지키기에는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올 것이다.”
순조롭지 못한 것이나 장애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 운행의 규율이다. 인위적으로 자연 규율을 고치려 한다면 불리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길이 갈 수 있는 길이면 가고 올 수 있는 길이면 오면 된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평상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방관자적 마음으로 생활 속의 불균형을 대해야 한다. 마음을 느슨하게 하여야 한다. 머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는가?
“화라는 것은 복이 의지하는 바이고 복이라는 것은 화가 잠복하는 곳이다.”1)
옛날 어느 날, 정체불명의 말이 갑자기 어떤 집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날 듯 다가온 그 횡재를 보고는 가족 모두 좋아 어쩔 줄 몰랐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 집안의 어린아이가 말을 타고 밖으로 놀러나갔다가 일순간 실수로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가족이 가슴 찢어지게 슬퍼하였다. 다시 세월이 지나, 북방에 전쟁이 벌어졌다. 그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로 군인이 들이닥쳐 군대에 충원하기 위하여 장정을 잡아갔다. 온 마을의 건장한 청년은 모두 잡혀갔는데 오직 예전에 다리가 부러져 절음발이가 된 청년만 그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새옹지마(塞翁之馬)』)
사람들은 늘 말하지 않던가.
“화로 인하여(화를 토대로) 복을 얻는다.”
“재물 손실은 액땜이다.”2)
‘태(泰)’의 앞길이 ‘비(否)’이다. ‘비’도 ‘태’를 위해서 있다. 장애가 오래되면 반드시 통한다. 통하고 난 후 다시 적체되고 막힌다. 이것이 규율이다.
『주역』에서도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순조롭지 못한 데에서 근원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순조롭지 못한 일은 마음을 좋지 않게 하는 근원이다. 인생의 십중팔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순조롭지 못한 일을 피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자신의 심경과 상태를 고치고 자신의 사유방식을 조정하며 자기의 사상(생각, 관념)을 바꿔야만, 비로소 자신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상태까지 빠져들지 않게 할 수 있다.
순조롭지 못하고 막혀 있는 상태에 빠졌을 때 초조하고 불안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대단히 낭패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냉정이다.
눈을 감으라. 심호흡 하라. 평정을 찾으라. 번잡한 일은 하늘 저 멀리 날려버려라.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다면 결사적으로 안쪽으로 파고들지 말아야 한다. 멈추고 얼마간 제대로 쉬어야 한다. 어쩌면 다른 풍경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면 고개를 돌려 새로운 출구를 찾아보라. 그러면 무의식중에 확 밝아질 수도 있다.
“산 겹겹 물 겹겹 더 이상 길이 없는 줄 알았더니, 버드나무 그늘 짙고 꽃 밝게 핀 곳에 다시 한 마을이 있구나.”3)
바로 그런 도리를 말하고 있다.
이때에 우리 한번 뒤돌아서서 이전에 자신이 가장 기뻤던 일을 회상해 보자.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추억,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회상해 보자.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포옹하는 상상을 해보자.……
알고 보면 우리는 행운아이다.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가치가 우리에게 있다. 비관할 이유가 없다. 상심하고 고통스러워하여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저 기쁨만 있을 뿐이다.
화와 복이 서로 전환되고 순조로움과 순조롭지 못함이 서로 맞물려있으며 장애(막힘) 뒤에 거침없는 통함이 숨어있다.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지 않던가. 고통과 시련이 끝나면 좋은 시절이 오고 좋은 시기가 극에 달하면 고난의 시기가 다시 온다4)고 하지 않던가.
기왕에 그렇다면 우리가 자신의 순조롭지 못한 상황에 있는 자신을 마음에 둘 필요가 뭬 있겠는
가? 자신을 믿어야 한다. 순조롭지 못한 상태가 되거들랑, 막힘없이 통하는 것과 순조로움이 우리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점차 다가오고 있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하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처음 길을 만들 때는, 출발할 때는 곳곳이 장애다. 막혀있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야한다.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야하기도 한다. 그리하면 막힘없이 통하게 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禍兮福之所倚,福兮禍之所伏 : 화복의복(禍福倚伏)(『노자老子』)
2) 因禍得福 ; 재물 손실로 재앙을 면하다(破財消災).
3) 山中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육유陸游『유산서촌遊山西村』)
4) 物極必反 ; 否極泰來,剝極而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