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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주역이 말하는 지혜와 철학(3)

◆ 중부괘(中孚卦)

 

중부(中孚)는 내심의 신용, 신용을 지키다 뜻이다. 어떤 일에 성실하지 못하고 신용을 지키지 못하면 일을 잘 마무리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도 환영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신용을 지키고 온 마음을 다 기울이면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

 

신용을 잃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중국의 전통 윤리문화 중에 ‘성신(誠信)’은 풍부한 함의(含意)를 가지고 있다. 어의(語義)에서 보면 ‘성(誠)’과 ‘신(信)’은 상통한다.

 

『설문해자』의 해석이다.

 

“성(誠, 정성)은, 신(信, 믿음)이다. 언(言)을 따르고 성(成)은 소리다.”

 

“신(信, 믿음)은, 성(誠, 정성)이다. 인(人)과 언(言)을 따른다.”

 

그런데 실제 사용하는 데에 겉으로 드러난 특징, 즉 표징 의미는 차이가 있다. ‘성(誠)’은 도덕 주체에 내재된 일종의 품질, 신념이다. 이른바 “안으로 자기 마음에 성실하다”이다.1) ‘성(誠)’은 진성(眞誠), 성실(誠實), 정성(精誠) 등으로 표현된다. ‘신(信)’은 도덕 주체가 사회생활 중에 타인 혹은 사회 전체와 교류할 때 표현하는 구체적 행위 및 그 가치 지향을 가리킨다. 이른바 “밖으로 남의 믿음을 얻는다”이다. ‘신(信)’은 신의(信義), 신용(信用), 승낙 등으로 표현된다.

 

‘성(誠)’과 ‘신(信)’을 합쳐서 사용하면 성실하게 신용을 지킨다, 안팎이 같다, 도덕 행위와 도덕 품성이 서로 통일되다 등 풍부한 함의를 가지게 된다. 성신(誠信)은 윤리범주다. 가장 기본적인 함의는 성실이 근본으로 하는 언행일치(言行一致)다.

 

『주역』은 말한다.

 

“중부(中孚)는 돼지와 물고기까지 하면 길하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고, 곧게 함이 이롭다.”

 

무슨 말인가? 내심의 성심은 돼지와 물고기를 감동시키니 그래서 길상을 얻는다. 큰 강, 큰물을 건너기에 알맞다. 중정의 도를 굳게 지키는 데에 이롭다.

 

성실함과 신용을 지킴은 통일된 것이다. 신용을 지키는 데에 성실이 기초가 된다. 성실을 떠나서는 신용을 지킨다고 말할 수 없다. 성실은 사람됨의 기본 준칙이요 사회 공덕과 직업 도덕의 기본 준칙이다.

 

성실하게 신용을 지키는 것, 즉 ‘성신(誠信)’은 중국의 우수한 전통이다. 수천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성신을 강구하였고 성신을 추앙하였다.

 

우리는 자주 원고시대를 그리워한다. 인격 매력이 충만한 시대였다. 그때 군자의 품위 있는 풍도의 배후에는 성실, 신용, 신념이 있었다. 성신의 풍조는 질박 순수하였다.

 

역사가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성신의 기풍은 빛을 발했다. 중국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성신의 기풍은 일찍이 중국 민족문화의 혈액에 융화되었다. 문화 기본 요소 중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 됐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했다 : 인생이란 성실, 우호, 신임을 주고받으며 계속 순환하는 것이다.

 

다음은 중학생이 쓴 글이다. 충신인의(忠信仁義)가 후대에 끼친 영향을 알 수 있다 :

 

건안(建安) 26년, 서기 221년, 관우(關羽)는 맥성(麥城)에서 패하여 포로가 됐다. 항복하기를 거절해 손권(孫權)에게 죽임을 당했다.

 

어느 날 마충(馬忠)이 표를 올렸다 : 적토마(赤兎馬)가 수일동안 절식하고 있어서 오래지 않아 죽을 것 같습니다. 손권이 크게 놀라 강동 명사 백희(伯喜)를 급히 찾았다. 백희는 백락(伯樂) 이후에 말이 하는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마충이 백희를 데리고 왕부의 마구간으로 데리고 갔다. 적토마는 땅에 엎드려 슬프게 울고 있었다. 아무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지만 백희는 알았다. 백희는 사람을 내보낸 후 말의 등을 쓰다듬으며 탄식하였다.

 

“지난 날 조조가 『구수수(龜雖壽)』에서 읊지 않았는가.

 

‘준마는 마구간에 있다 하여도 뜻은 천리를 달리고, 열사는 나이가 늙었으나 그 뜻은 그침이 없다.’

 

나는 그대가 관우장군의 은덕을 잊지 못하여 장군을 쫓아 지하로 내려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런데 여봉선(呂奉先, 여포)이 백문루(白門樓)에서 죽을 때 그대가 이처럼 함께 하려 했다는 것을 듣지 못했는데, 어째서 오늘에서야 이렇게 목숨을 가벼이 하는가. 어찌 군의 천리를 달리려는 뜻을 저버리려 하는가?”

 

적토마는 애달프게 탄식하고는 말했다.

 

“내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새가 죽을 때가 되면 그 울음이 슬퍼지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착해진다.’ 지금 다행히 선생을 만났으니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말을 알려야 하겠습니다. 나는 서량(西涼)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동탁(董卓)이 거뒀습니다. 그 사람은 제멋대로 횡포하게 굴다가 소제(少帝)를 죽이고 용상에 드러누웠으니, 실로 도적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심히 증오합니다.”

 

백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중에 들으니 이유(李儒)의 계책으로 그대를 여포에게 보냈더군. 여포는 천하의 첫째가는 용장이지. 모든 사람이 말하잖은가. ‘사람 중에는 여포요, 말 중에는 적토마다.’ 생각해보니 군의 뜻에 어긋난 모양이로군.”

 

1) “안으로 (자기) 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남의 믿음을 얻는다.”(內誠於心,外信於人)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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