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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2) 거지와 공안(公案) ②

청나라 때 장조(張潮)〔내산(山來)〕는 『우초신지(虞初新志)』 권5 『걸자왕옹전(乞者王翁傳)』에 고상한 품격을 지닌 거지를 기술하고 있다. 초군(樵郡)의 명족인 왕 씨의 선대가 거지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날, 거지 왕 씨는 구걸하다가 나구(挐口) 지방의 진(陳) 씨 장자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 날이 아직 밝지 않아 어떤 집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계집애종이 물 대야를 들고 나와 물을 뿌렸다. 무슨 물건인지 물과 함께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살펴보니 금팔찌였다.

 

왕 모는 크게 기뻐하며 주워들고는 돌아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 금팔찌는 여주인이 세수할 때 대야에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계집애종이 모르고 물과 함께 뿌린 것이다. 여주인이 금팔찌를 찾지 못해 계집애종을 의심하면? 성급히 고문까지 하면? 분명 뜻밖의 사고가 생길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나 이 가난한 사내놈이 횡재한 것이 행운이라고 만은 할 수 없지 않은가. 계집애종이 예측하지 못한 재난을 당하게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거지는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지나니 그 집안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꾸짖어 책망하는 소리도 들렸다. 곧바로 머리털이 마구 헝클어진 계집애종이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 뛰쳐나와 문 앞 시냇물에 몸을 던지려고 했다.

 

거지가 급히 나서서 안고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계집애종이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하면서 울며 말했다.

 

“여주인이 금팔찌를 잃어버렸는데 내가 훔쳐갔다고 하잖아요. 원통해 죽겠어요. 내가 어디서 무슨 금팔찌를 가져갔단 말이에요. 맞아 죽느니 물에 몸을 던져 죽는 게 낫지요.”

 

왕 모가 듣고는 예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겁내지 말라고 달래면서 소매에서 금팔찌를 꺼내어 건네며 말했다.

 

“나 여기서 한참 기다렸어.”

 

계집애종이 들어가 주인에게 보고하니 주인은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고 머슴애에게 나가 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닌가. 진 씨 집안 주인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세상에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단 말이냐!”

 

곧바로 왕 모를 불러서 보니 거지이긴 하지만 장년의 남자가 아닌가. 그래서 동의를 얻은 후에 왕 모를 머무르게 하여 대문을 지키도록 하였다.

 

맡은 직책을 능히 감당하는 것을 보고는 밖으로 나가 물건도 사오게 하거나 세금을 받아오는 일을 시켜봤다. 능히 다 해냈다. 계집애종을 그에게 시집보내어 가정을 이루게 했다.

 

이때부터 왕 모는 한층 더 주인에게 충성을 다했고 근면하게 일을 해줬다. 주인도 그를 집안사람처럼 여기고 예로 대했으며 재산을 관장하는 중책을 맡겼다.

 

시간이 흘러, 왕 모는 재산을 모았고 아들도 몇 명 낳았다. 아들들 모두 총명했다. 아들들이 성장한 후 나누어 외지에 나가 장사하게 만드니, 각자 돈을 벌어 거부가 되었다. 그렇게 되자 온 가족이 주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고향에 돌아가 편안하게 살았다.

 

장조가 평가하여 말했다.

 

“소동파가 하늘에서는 옥황상제와 더불어 있을 수 있고 땅에서는 비전원의 거지와 더불어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거지와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옥황상제와 더불어 있을 수 있겠구나. 모든 거지가 다 어리석고 불필요한 사람만은 아니다. 대자비를 갖추고 지켜주는 사람도 있다. 창녀, 배우, 하인, 졸개를 하찮게 여기고, 기계적으로 사람에게 재물을 얻으려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걸식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고 있을 따름이다. 왕옹의 고상한 행동은 이 중에서도 특출하다.”

 

거지로 전락한 사람 중에 우매하고 무능한 무리 이외에,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하지 않으려 하고 길에서 구걸하면서도 인격과 절조를 지키려는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왕 씨 거지는 전형적인 인물이라 결국 보은을 받았다는 뜻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거지 중에는 선인과 악인이 섞여있다. ‘사상이 있는 사람’이나 고상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구걸하는 지경까지 전락했지만 그런 인생 역경 속에서도 옥돌 중의 옥처럼 모래 속의 금처럼 끝끝내 그 광채를 잃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거지 중에는 분명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쓸모없는 인간이 섞여 있고 인간쓰레기가 많이 끼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오물이 사회에 끼치는 해로움은, 반복적으로 사기치고 죄악을 저지르는 행동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측은지심에 깊은 상처를 입혀 거지에 대한 경계심과 멸시하는 관념을 촉성하고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진다고 어찌 무고한 세상 사람들에게 책임지우겠는가!

 

역대로 사람들은 거지에게서 손해를 보면서 깊은 교훈을 얻었다. 거지가 된 불의한 무리도 아무 때나 자신들의 추악한 형상을 만들어내면서 세상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던 거지로 전락한 사람에게 가엽게 여기는 인상을 바꾸어버렸다. 그렇지 않은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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