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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2) 거지와 공안(公案) ④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거지가 있는 반면에 물에 빠져 죽은 거지의 시신을 부친과 남편으로 오해하여 상복을 입고 효경을 다한 경우도 있다.

 

이 이야기는 청나라 때 남정원이 『녹주공안』에 기록한 내용이다. 남정원 본인이 광동 보녕(普寧) 현령으로 있을 때 친히 경험했던, 숨겨져 있던 일을 밝혀내어 고발했던 살인사건이다.

 

현민 정후추(鄭侯秋)의 처 진(陳) 씨가 어떤 사람이 자기 남편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현아(縣衙)에 고발하였다. 진 씨의 말은 이랬다 :

 

남편이 남동방(南董坊)의 보장1)을 담당하고 있을 때에, 소방무(蕭邦武)가 계약서를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숨기자 남편이 그것을 따지니 앙심을 품고 있었다. 소방무는 11월 13일에 폭도들을 데리고 정 씨 집으로 몰려가서 재산을 강탈했다. 남편은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중상을 입고 피할 데가 없어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시체는 지금 협산(峽山) 개천에 있다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죽은 사람의 아들이 배를 타고 가서 시신을 싣고 와서 현령에게 검시해 달라고 했다. 죽은 사람의 손톱에 진흙과 모래가 잔존한 것을 보니 익사한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상흔 하나 없는 몸에 얼굴만 식별하기 어렵게 변해 있었다. 진 씨 모자는 상복을 입고 애통하게 울면서 현령에게 소방무 등의 목숨으로 보상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자료와 의혹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후추가 평상시에 도적들의 범행을 내버려둬서 백성에게 해를 끼친 까닭에 관부의 추문이 무서워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처자는 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모함하고 있었다.

 

삼일도 지나지 않아 부근 혜래(惠來)현에 숨어있던 정후추가 체포되면서 사건이 해결되었다. 진상이 확연하게 밝혀지니 칭찬이 자자했다. 마지막에 남정원이 말했다.

 

“그 시체는 어디에서 가져온 것이냐 물으니, 물에 빠진지 오래된 주인 없는 거지 시체를 실어왔다고 한다. 지금 가짜 아들, 가짜 처가 남편을 위하여 상복 입고 효를 다하며 상장을 짚어 입관하고 장사를 지내니, 체통이 어찌 서겠는가. 그 거지도 웃음을 머금고 구천으로 갔을 것이다.”

 

『의옥집』에 기록된 무참하게 머리를 잘리어 증거물로 변한 억울한 거지와 비교하면 물에 빠져 죽은 배고픈 거지는 행운인 셈이다.

 

그러나 거지로 전락하면 결국 배고픔과 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갈 데 없게 된다. 종국에는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운명은 어쨌든 처참하지 않은가. 이러한 무고의 살인사건이 아니더라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가련한 벌레처럼 조용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거짓 장례식이 거행된다하여도 무슨 필요가 있을까? 살아있을 때 그에게 보잘 것 없는 음식이라도 실컷 먹게 하여 편각이라도 인생 여정을 연장시키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가. 생활이 곤궁해 초라하게 되어 죽는다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손면(孫沔), 거지를 혹형으로 다스리다

 

거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도둑질하기도 하고 사기 치기도 하고 강탈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다.

 

『절옥귀감』 권5의 기록을 보면 송나라 때에, 추밀부사 손면(孫沔)이 항주지사를 담당할 때 왼쪽 손은 없고 오른쪽은 두 손가락만 있는 거지가 가난뱅이 집의 솥을 훔치다가 싸움이 붙어 법정에 서게 되었다. 거지는 손이 잘린 왼쪽 팔을 들고 울면서 말했다.

 

“가난뱅이가 저를 모함하고 있습니다! 손도 없는 거지가 어찌 솥을 훔친다는 말입니까?”

 

손면은 곧바로 동의하면서 가난뱅이를 책망하며 쫓아냈다. 그런 후 부드러운 말로 거지를 안위하고는 솥을 건네주었다.

 

거지는 처음에는 받지 않자 손면이 몇 차례 더 안위하였다. 그러자 거지는 손면의 속셈을 모르고 남아있는 두 손가락으로 솥을 들고 팔을 이용하여 천천히 들어 머리에 얹혔다. 가만히 보고 있던 손면이 사람을 시켜 다시 잡아오게 한 후 그의 손가락을 잘라 대중에게 보였다.

 

그런 판결에 대해 손극(孫克)은 평했다.

 

“간악한 일을 징치하는 것은 중용의 도에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 부득이한 경우에만 그렇게 한다. 여공작(呂公綽)이 병사에게 특별히 사형을 판결한 까닭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 군인의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의 관계가 중대하니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 간악한 무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도리 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다.

 

거지가 솥을 훔친 일은 지극히 하찮아서 말할 가치도 없다. 사실을 밝혀내면 그뿐이다. 법을 넘어 혹형으로 처벌했으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세속에서는 칭찬받아 명예를 드높일 수는 있지만 군자가 행할 일은 아니다.

 

특별히 여기에 그 일을 기록하고 그 뜻을 판별하여 분석해 놓으니 간악한 사람을 징치하는 데에 경계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극은 손면이 솥을 훔친 거지에게 남은 손가락마저 잘라버리는 참형을 내린 것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양형이 과중하다고 보고 ‘법의 정도를 넘은 혹형’이라고 단언했다.

 

사실 너무 과했다. 잔인하다 아니할 수 없다. 달리 생각해보자. 훔친 것이 맞다하더라도 남은 삶은 또 어떻게 꾸려나가야 한단 말인가. 거지의 처지가 불쌍할 뿐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옛날 보갑제도(保甲制度)의 보장이다. 청대(淸代)에는 ‘보정(保正)’, ‘지보(地保)’, ‘지방(地方)’, ‘지갑(地甲)’, ‘리서(里胥)’라고 하였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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