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을 운영하는 한진그룹 계열 한국공항㈜의 제주 지하수 증산 동의안이 또 심사 보류됐다.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위원장 하민철)는 20일 제주도가 제출한 한국공항(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대표이사 김흥식)의 지하수개발·이용시설 변경허가 동의안을 심사 보류했다.
환도위는 "제주생명수인 지하수가 공공 자원이라는 특별법 기본 이념과 사기업의 기득권과 경제적 이익 등을 고려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판단된다"며 보류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동의안은 먹는샘물(제주퓨어워터) 생산·판매를 위해 지하수 취수량을 현행 하루 100t(월 3천t)에서 하루 200t(월 6천t)으로 2배 늘리는 내용이다
한진의 제주 지하수 증산 시도는 이번이 세번째다.
지난 6월 신청량을 당초 월 9천t에서 6천t으로 낮추고도 심사가 보류됐었다.
한국공항은 1993년 월 6천75t의 먹는샘물 취수 허가를 받았다가 1996년 5월 월 3천t으로 자진 감산한 뒤 현재까리 이르렀다며 최근 세 차례 증산을 요청했다가 지역사회 반발 여론에 부딪쳐 무산됐었다.
하지만 이번에 재상정되면서 가결이든 부결이든 결론이 날 것으로 예견됐다.
하민철 위원장은 "어떤 결론이 날 지는 알 수 없지만, 부결이든 가결이든 매듭을 짓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도의회가 심사보류된 사안을 6개월만에 재상정해놓고 처리를 미룬 것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공항 임종도 상무는 "하루 100t으로는 대한항공 기내 음용수 제공 등 그룹 내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연간 10% 이상 증가하는 항공여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증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임 상무는 "판매 수익금으로 연간 최대 5억원까지 기금을 조성해 제주 지하수 보전·보호활동에 관한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논란의 쟁점은 한국공항이 현재 하루 취수량의 4% 정도를 인터넷을 통해 주문 판매하고 있다는것.
김승하 의원은 "인터넷 시판을 하기 때문에 제주 공공자원의 사기업 사유화 시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추궁했다.
김명만 의원은 "인터넷 판매를 중단하고 기내용 부족분은 제주삼다수로 보충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문했다.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신현오 대한항공제주지역본부장은 "항공사 입장에서 최고 상품과 서비스로 고객 만족을 시켜줘야 하는데 기존에 제공하던 브랜드를 바꾸는게 쉽지 않다. 고객과의 약속 때문에 힘들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한국공항 임종도 상무는 "시중 판매가 아닌 제한된 공간인 기내에서 통신판매하고 있다. 고객 관리 차원으로 봐달라"며 "시장 점유율이 0.1%도 안되기 때문에 사유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민철 위원장은 "지난 6월 동의안이 심의 보류된 뒤 상황이 달라진 게 없다"며 "도민들을 이해시킬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김명만 의원은 "도민 친화기업인 지 의심스럽다. 지난 6월 동의안 심사를 보류하자마자 국내선 항공료를 인상했다"며 "또한 신선채소 수송을 중단했다가 환원시킨 것도 대한항공의 작전이라고 본다. 신선채소가 육지로 못나가면 (제주도가) 사정할 것 아닌가라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최근 대한항공 지창훈 총괄사장이 우근민 제주지사가 직접 찾아 와 제주지역 신선채소 운송을 위해 대한항공이 한시적으로 제주 노선에 중대형 항공기를 투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신현오 대한항공 제주본부장은 "지난 7월 국내선 요금 인상에 대해선 세계적인 불경기와 국내선 만성 적자 해소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중국인관광객 제주 유치와 편의를 위해 국제선 전용 환승 내항기 운항을 추진하고 도민 항공료 할인폭을 확대하겠다"며 "상생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 기회를 달라"고 증산안 동의를 요청했다.
대한항공 임원 중 유일한 제주 출신 김치훈 상무는 "서로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증량에 동의해 달라"며 "회사 차원에서 좋은 선물 내지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고 읍소했다.
한국공항 측은 "상생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 때가서 다시 감산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의원들은 동의안 심사 과정에서 한국공항과 대한항공을 압박했지만 얻은 것 없이 처리를 미뤘다.
애초 상임위 통과가 예견됐었다. 연내 처리를 위해 재상정한 점. 지난 6월 증산 계획에 제동을 걸었던 소관 상임위원회 의원 6명 중 5명이 바뀐 것도 동의안을 제출한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상임위는 새누리당 하민철 위원장과 한국공항 소재 지역구 의원인 김도웅 의원, 그리고 김승하·신관홍 의원과 민주통합당 김명만·김진덕 의원으로 구성됐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참여환경연대, 탐라자치연대는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한국공항㈜에 대한 지하수 증량 허가 동의안을 부결처리할 것을 제주도의회에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도의회 환경도시위원회 의원 대부분이 지난 6월 논란 속에 의결 보류됐던 '한국공항 지하수 개발·이용시설 변경허가 동의안'을 재상정해 가결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며 "이는 도민의 공공재산을 팔아 민간 기업 배 불리기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 환경도시위원회 내부 원칙에 따라 만장일치가 아닌 1명의 의원이라도 반대 의견이 있으면 상정을 보류하는 관례로 볼 때 이번 상정은 대부분 의원이 찬성의견으로 조율된 것이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며 "또한 모 의원은 오는 26일 있을 본회의에서 처리될 문제로 접근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볼 때 동의 처리 방향으로 사전 의견조율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지난 11월 제주도에 제출한 '수자원관리 종합계획' 수립 용역 중간보고서에서 지하수 수요 급증으로 10년 안에 생활용수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한 점을 들며 만일 민간 기업에 증량을 허용한다면 지하수를 팔아먹은 도의원으로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농업인조직인 제주도 농업인단체협의회는 한국공항㈜의 지하수 취수량 증량 동의를 건의하는 진정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대한항공의 제주노선 중대형 항공기의 투입과 유찰 송아지 매입 사업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